1.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절기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신 날입니다. 성령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시고, 이제 성령을 통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사실 세 본문 말씀은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인 구약 말씀과 구원자이신 성자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 희생, 그리고 부활 승리의 복음서, 마지막으로 성령 하나님을 통한 교회의 역사인 서신서로 구성이 됩니다(물론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이 있지만, 이 역시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을 통하여 성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행하신 사역과 고난, 그리고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절기로 성령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살펴볼 것입니다. 세상 절기도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으로 접어듭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역기가 성령의 열기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을이 시작되는 9월, 창조주 하나님의 절기인 창조절로 다시 새로운 한 해의 절기가 성부로부터, 성자, 성령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서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상에 파송하시는 말씀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겪을 것이나, 성령께서 할 말을 가르쳐 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따라서 구약 말씀은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이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희생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함께하시며 향기로운 희생을 통해 만들어진 교회 공동체는 어떠해야 하는가? 서신서인 로마서 말씀은 교회 공동체의 삶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타적인 공동체’입니다.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2. 성령께서 할 말을 주시리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6-20)

제자들이 하나님 사랑을 증거하는데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을 채찍질한다고 합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부활 신앙의 사명인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위해 개인적 차원에서는 마음의 변화, 곧 개심(改心)!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의 변화인 개혁(改革)! 그리고 국가와 지구공동체 차원에서는 혁명이 바로 부활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만들어 낼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반대자와 적대자들이 끊임없이 존재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구약 말씀을 통해 우리는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을 잘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께서는 실망하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새롭게 재창조의 역사를 펼쳐나가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고, 또 성자 예수님께서 그 사명을 다 감당하고 부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회당에서 채찍질한다고 하죠? 여기서 회당은 유대인들의 회당이고,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교를 파괴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은 공동체의 파괴자입니다. 물론 기존 공동체가 부패하고 썩었기에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따라서 반대가 심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그렇습니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21-23)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은 미움받는 이름이 됩니다. 온전히 자신을 불태워 죽여야 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말씀을 볼까요? 번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3.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레 1:1-3)

번제는 히브리어로 ‘올라’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올라가다, 치료받다, 넘치다, 기도하다’라는 뜻의 알라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이 태워져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번제의 연기는 성도들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 기도가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번제는 모든 제물을 불태워드리는 제사입니다. 따라서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상징합니다. 번제를 통해 온전히 죄 사함 받고 성령 충만 받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끝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JTBC)는 해방을 꿈꾸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해방은 존재감 없이 살아온 한 사람이 사라짐(죽음)으로 모두에게 찾아옵니다. 죽음으로 오히려 큰 존재감을 보여준 -이것을 우리는 ‘부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 기독교적인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속 서울 살이를 갈망하던 세 남매는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서야 지긋지긋한 산포시를 떠나게 됩니다. 해방이 됩니다. 이들의 아버지는 아내와 사별하고 중풍에 걸리고 나서야 싱크대 만드는 일에서 손을 놓게 됩니다. 해방이 되는 것이죠? 엄마 역시 죽음으로 말미암아, “땡볕에서 밭일하다가도 집에 들어와서 밥을 차려야 하는 팔자”에서 해방됩니다.

▲ <나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엄마

이렇게 해방은 존재감 없는 호모 사케르(Homo Sacer), 곧 엄마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모두의 해방으로 돌아옵니다. 새로운 세상은 이렇게 존재감 없는 이들이 사라짐으로 만들어 가는 세상일까요? 너무 비극적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빈무덤’을 통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듯, 그렇게 새로운 세상은 비극적이지만, 희망적인 역설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볼까요?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1:4-9)

▲ 번제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번제를 드릴 때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한다고 하죠? 이것은 죄를 전가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기쁘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제물에 자신의 죄가 전가되었을 때입니다. 따라서 죄인이 제물에 안수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제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속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온전히 번제로 불살라져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고 그 놀라운 기쁨을 만민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때 새로운 공동체가 시작됩니다. 옛것은 가고 새것이 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 새 공동체의 비전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4. 이타적 공동체의 삶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9-13)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이타적인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장대한 탐구 여정의 시작 하나로 『인간의 위대한 여정: 빅뱅에서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21세기북스, 2017)라는 책에서 인류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에 관해 배철현 교수(전 서울대 종교학과)는 이렇게 말합니다.

▲ 『인간의 위대한 여정』> 표지

“이타심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빗댄 은유적 표현을 쓰자면, ‘이타적 유전자’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위대한 혁신의 원동력은 이타심이다. 600만 년 인류 역사는 이런 영적인 유전자를 스스로 발견하고 발휘하는 여정이었다.”

이 책은 137억 년 전 빅뱅부터 농경이 본격화하는 1만여 년 전까지의 역사를 다룹니다(1만 년 전부터 3,300여 년 전 문자의 등장까지를 다루는 후속작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서울대 사직 후 아직 나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배철현 교수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이나 도킨스의 이론이 인간을 이해하려는 과학의 위대한 이론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로 가서 의료봉사를 하며 일생을 보낸 슈바이처나 40여 년간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며 헌신한 오스트리아 수녀들의 행위를 단순히 ‘호혜적 이타주의’의 소산으로만 볼 수 있을까?”

인간의 이타적 행동도 결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호혜적 이타주의론’에 의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배철현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 본성의 핵심은 이타적 유전자다. 공감, 배려, 친절, 정의, 희생, 정직 등은 이타심이라는 씨앗에서 피어난 꽃이다. 그 열매가 바로 컴패션(compassion)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passion)을 자신도 함께(com) 느껴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마음과 행동’이다.”

그렇습니다. 컴패션을 한자로 표현하면 자비(慈悲), 아랍어로는 ‘라흐민’(rahmin·알라의 별칭), 히브리어로는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하는 ‘레헴’(rehem)입니다. 앞서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를 소개해 드렸는데, 바로 어머니의 자궁인 레헴이 이타성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타심의 씨앗은 인간 탄생과 성장 과정에서 뿌려집니다. 100만 년 전 고기를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뇌가 두 배로 커진 인간의 태아는 엄마의 좁은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미성숙한 상태로 세상에 나옵니다. 이 때문에 탄생 즉시 일어나 걷기 시작하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태어난 지 1년이 지나서야 겨우 혼자 걷기 시작합니다. 아기는 누군가의 헌신적인 도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게 되고 공감, 배려, 친절, 정의, 희생, 정직을 익히고 배웁니다.

사실 짐승과 다를 바 없던 백만 년 전 유인원에게도 인간만의 고유한 정신이 있었습니다. 사냥한 동물을 먹어 치우기 바쁜 짐승과 달리 인간은 식량을 공동체와 함께 나누어 먹으며 ‘식사’라는 문화와 예절을 만들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위협적인 무기를 만들면서도 자신의 폭력성을 경계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동시에 키웠습니다. 사냥한 동물이 죽어갈 때는 그 아픔을 공감하며 눈물도 흘렸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와 죽음 및 부활에 대한 상상, 예술과 종교를 추구하는 영성의 발현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어의 발명 이전에 이미 우리는 ‘영적인 인간’이었으며, 문명의 탄생 이전에 이미 우리는 ‘더불어 사는 인간’이었으며, 종교의 기원 이전에 이미 우리는 ‘묵상하는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목적’을 묻는 존재입니다. 이 근원적인 물음은 우리 내면에 잠재된 ‘이타적 유전자’를 깨웁니다. 그리고 이 이타심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듭니다. 따라서 배철현 교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인류의 위대함은 남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기적인 전략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대결에서 비롯됩니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그 마음이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걸어온 위대한 여정은 우리가 가진 위대한 DNA를 발견하고 지켜온 노력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보내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교회 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이타성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이타성의 ‘타’에 다른 사람, 곧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까지 확장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환경주일인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던 모든 피조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공동체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 교회로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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