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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조국’에서 그의 얼굴을 보다우리네 삶의 일그러진 얼굴은 아닐지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2.06.05 16:04

최근 수년간 한국 사회를 뜨거운 찬반논쟁으로 달군 사건은 많다. 그중에서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연관된 논란이 가장 뜨거웠다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나는 표창장 위조사건을 비롯한 자녀들의 대학 입학과 관련된 사항에 국한하여 말하고자 한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논쟁은 진보-보수라는 이념을 떠나서 우리 모두를 찬반 혹은 옹호-지지와 반대라는 양극단으로 몰고 간 논쟁이었다.

일명 진보라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조국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진보 진영에서는 조국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보이느냐가 내 편 혹은 네 편을 가르는데 상당함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조국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는 진보 인사에 대해서는 더욱 가열 찬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고 조롱하기도 했다. 최근 수년 동안 조국(曺國)은 조국(祖國)을 흔들어 놓았다.

얼마 전 “그대가 조국”이라는 영화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지인이-열렬한 조국 지지자는 아니었지만-조국 영화 텀블벅에 참여하여 몇 장의 초대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영화를 관람하였다. 상영 1시간 전에 영화관에 도착해서 입장권을 교환하고 상영시간을 기다렸다. 조금 있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정말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기 위하여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영화감독을 비롯한 스탭들이 무대에 올라 인사를 했다. 영화 관객들은 스탭진들의 인사에 환호와 박수로 환대의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영화 내내 관객들은 장면 하나하나에 몰입하였고 간간이 탄식 소리와 흐느끼는 소리도 들려왔다. 어떤 장면에서는 박수를 치는 관객들도 있었다. 영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객 전체가 하나가 되어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는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다큐멘타리 영화가 이토록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들 수 있을까? 무엇이 관객들로 하여금 이처럼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었을까? 조국이라는 한 사람이 겪은 일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반대하던 찬성을 하던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하였고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영화를 보는 시간 내내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조국,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단순하게 자녀들이 부모의 우월한 지위를 활용하여 특혜를 받아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또 이에 따라 특정한 직업을 갖게 되고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건인가? 그리고 그러한 특혜가 표창장 위조를 비롯한 허위 인턴 참가 확인서, 불법적인 학술논문 저자 참여라는 불법행위로 이루어졌고 사법당국(특히 검찰)에 의해서 처벌된 사건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나는 수십 년을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살아온 경험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 그리고 중장년을 거쳐 노년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50대 중반까지 근 35년 이상을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살아왔다. 그 후 2016년 한국으로 귀국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한국에서 살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삶과 이곳에서의 삶을 비교하면서 나로서는 생소한 몇 가지 현상들을 경험했다. 그 중의 하나는 나이를 불문하고 매우 성공 지향적이며 물질 욕망(부동산과 주식투자와 부자 됨으로 대변된다)이 상당하며 이와 더불어서 경쟁이 매우 심하다는 현상이었다. 물론 내가 살았던 라틴아메리카 지역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성공 지향적이고 물질욕망이 대단하고 경쟁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과 차이는 그러한 현상이 전(全) 국민적이냐 아니면 소수의 사람에게 해당되느냐에 있다. 나는 한국에서 살면서 위의 <성공-물질욕망-경쟁>이 전 국민으로 펴져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조국 사건은 한국의 독특한 현상, <성공-욕망-경쟁>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부터 이해된다. 나에게 있어서 조국 사건은 <성공-욕망-경쟁>의 유리한 자리에 서고자 부모찬스를 이용한 사실에 대하여 전 국민이 관심을 갖고 그리고 분노하였던 사건이다. 전 국민이 성공하고 싶고 부자 되고 싶고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그래서 최고의 자리에 서 있고 싶은 사회에서 조국사건은 우리 모두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조국 사건은 한국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그러나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지만 그렇게 하고 싶고 또한 그러한 능력을 갖는 자리에 있고 싶어 하는 우리 모두의 욕망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었지만 너는 할 수 있었기에) 우리 모두가 분노하였던 것이 아닐까? 그 분노는 그 사건 자체의 부도덕성을 향한 것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감춰져 있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는 데에 따른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분노는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공개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분노함으로서 자신 내면에 잠재해 있던 욕망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과연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국 사건이 보여주는 <성공-욕망-경쟁>의 구도에서 자유로운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국에 대하여 비난하고 있는 그의 자녀가 누릴 수 있었던 특혜 혹은 부모 찬스가 자신에게 주어진다면 거부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돌을 먼저 들어서 그를 칠 수 있을까? 조국을 향한 분노에서 우리는 내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과연 조국이 <성공-욕망-경쟁>의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모순적 상황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조국은 결코 대표적 상징이 아니다. 조국, 그 보다 더한 사람은 많았다. 그것을 이번 국무위원 청문회에서 경험했다. 아니 그 전의 청문회를 통해서도 우리는 무수히 그런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유독 조국에 대해서는 가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조국을 향하여 그렇게 큰 분노를 표출했던 것일까? 배신의 감정으로 인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과연 배신의 감정이 조국에 대한 분노를 지배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배반한 사람들은 많았다. 배반의 감정을 넘어서 오히려 그리고 역설적으로 조국에게서 발견한 특권층들의 자녀가 받은 특혜가 그 이전의 고위층들이 자행했던 ‘특혜 독차지’에 비해서 너무 평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국에게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 안에 있는  <성공-욕망-경쟁>의 얼굴이 보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대가 조국” 영화를 보면서 조국의 얼굴에서 그리고 분노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나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서 내가 조국이고 그대가 조국이 아닐까?

또 다른 측면에서 조국의 얼굴을 보자. “그대가 조국”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검찰의 행위이다. 아니 검찰을 비롯한 한국의 사법체계 그리고 언론의 적나라한 얼굴이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스탭진들이 무대에서 관객들을 향하여 인사말을 했다. 이승준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조국이 얼굴을 보세요.”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조국의 얼굴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미안함, 사과, 결의, 부끄러움, 안타까움, 슬픔, 잔잔함, 인내, 고통 등을 눈여겨봤다. 그의 얼굴은 수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검찰, 언론 그리고 사법기관의 어처구니없는 왜곡과 은폐 등에 의해 진실이 가려지고 또 피의자로서의 정당한 변호의 기회들이 무참하게 거부되고 무시되는 현실에 대한 고통과 아픔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견뎌야만 하는 참음을 보았다. 조국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그의 이러한 얼굴 뒤에는 한 사람의 아픔과 그 가족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에 대하여 무감각한 아니 어쩌면 그것은 죄의 결과라고 하면서 당연하듯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서로 다른 두 얼굴이 묘하게 중첩되어 보였다.  2017년의 영화 더킹에서 한 건물의 옥상에서 맥심봉지 커피를 종이컵에 타서 마시며 시청 앞에서 벌어지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를 비웃듯이 웃으며 내려다보는 검사의 얼굴이 문득 생각났다.

‘그대가 조국’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얼굴이 보였다. 애써 참으며 고통을 이겨내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담담하게 비쳐지는 조국의 얼굴 뒤로 그를 조롱하는 듯 한 검사와 언론 그리고 그에 편승하는 특권층들의 얼굴이 보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검찰과 언론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가족까지. 그러나 겉으로는 너무나 덤덤해 보여서, 그런 척 해서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나 같으면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그대가 조국”은 오늘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잘못되고 편향된 정보로 인해 왜곡되어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영화에 대하여 어떤 분이 “이 영화는 자기들이 보고 싶은 면만 짜깁기 하듯이 편집한 영화다”라고 비판하였다. 맞는 말이다. 우리 모두가 자기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정보에만 편향적으로 기울어져 있을 가능성이 많은 존재이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편향성이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이다. ‘그대가 조국’ 영화는 자신의 억울함과 혹은 변호를 위해 검찰이 제시하고 있는 범죄의 증거에 대한 반박 자료들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편향적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이런 의미의 편향적인 자료들이 증거로 채택되어야 하고 토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공정성이 보장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검찰과 사법부는 철저하게 피고가 내 놓는 자료들을 채택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는 편향성을 드러냈다. 과연 어떤 편향성이 비난 받아야 할 편향성인가? 나는 또 다시 ‘그대가 조국’ 영화를 통하여 공개된 우리 사회 권력의 매우 편향적인 얼굴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대가 조국’ 영화에서 안전한 사회, 평등한 사회를 향한 연대의 얼굴을 보았다. 사건이 벌어지지 조국과 가족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기사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검찰과 언론은 서로 공조(?)하면서 조국과 그의 가족에 대한 내용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국과 가족에게 사생활이 사라졌다. 심지어 한밤중에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찾아가서 나와 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기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과 가족의 인격과 존엄성이 무방비 상태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나마 이러한 거대 권력에 맞서 조국을 지지하면서 자료를 찾고, 모으고,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법부와 언론이 덮어버리고 다뤄주지 않았던 수사진행과 증거들을 새롭게 발굴하고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감당했다. 온 세상이 조국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 같았지만 그와 연대하여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대의 손길들이었다. 그런 연대에서 ‘그대가 조국’ 영화는 탄생했다. 이 영화를 통하여 우리의 연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 될 수도 있다.

상영 전 감독이 무대 인사를 통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다큐 영화는 무엇을 어떻게 하자든지 혹은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해결책이나 정답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런 일들이 있었고 왜, 어째서 우리가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하는 지,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안전할까 라는 질문을 던질 뿐이다.”

그렇다. 조국 사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해답을 찾아 지금도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다. 이렇게 ‘그대가 조국’ 영화는 우리를 고민하고 갈등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대가 조국’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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