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lliam Adolphe Bouguereau, 「The Remorse of Orestes」 (1862) ⓒWikipedia

죄에 대한 교리는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루터가 말한 바와 같이 “범죄하고 버림받은 죄인 인간과 그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 내지는 구원자”(1)가 신학의 주제라면, 인간의 죄에 대한 교리는 신학과 기독교의 중심적 내용에 속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사신은 우주의 비밀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구원을 알려 주고자 하는 것이고, 그의 구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약속된 구원을 죄된 인간이 실존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호소하고 지시해 주려는 것이다. 기독교 사신은 그렇게 선포되면서, 그것이 향하고 있는 청중들이 구원받을 필요가 있고 구속받을 필요가 있는 자, 곧 죄 가운데 있는 죄인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선포는 인간을 죄인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의 선포가 인간에게 말할 때는 언제나 그의 죄를 지목하고 있다.

우리 시대 죄에 대한 이해

그러나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기독교가 인간의 ‘죄’를 강조하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죄를 강조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인간의 활달한 기상을 꺾고, 삶에서 기쁨을 말살하려는 어떤 음모를 연상한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죄에 대한 기독교의 교리를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억누르고 착취하기 위하여 조작한 종교적, 도덕적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혐오했다.

기독교인들조차도 교회의 강단에서 인간과 인간사회의 죄와 불의, 악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설교보다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축복에 대해서 듣는 것을 좋아한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이 왜 죄인인가하고 항변하기까지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이 금지하는 범죄행위들을 저지르지 않고 양심적으로 살아간다.

또한 그들은 죄를 짓더라도 살인, 강도, 강간, 사기, 폭력과 같은 심각한 죄가 아니라 경범죄와 같은 대수롭지 않은 죄를 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런 그들에게 “회개하라”는 기독교의 선포는 무척 불쾌하고 역겹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학은 죄라고 하는 바로 그것의 본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변증해야 하는 과제를 갖는다.

전통적으로 참된 신학은 언제나 죄의 인식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끌어내며 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시켜 이해하고자 했다(CD Ⅳ/1, 360-61).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죄인인 까닭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죄는 자연계시를 토대로 하여 예감되기도 한다(롬1:18 이하, 2:14-15).

그러나 죄에 대한 자연적 인식은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달리 말하면 누구에게는 죄가 되는 것이 다른 누구에게는 죄가 되지 않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 현대의 윤리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계몽주의 이래 인간을 악하다고 규정할 때,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것, 인간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선한 것은 자연과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모호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자연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자연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자연이란 보기에 따라서는 백지와 같은 것이어서, 누구나 그 백지에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써넣을 수가 있다. 선한 것이 악한 것이 되기도 하고, 악한 것이 선한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 세상에 선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고, 악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는가? 과연 무엇이 윤리적이고 무엇이 비윤리적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윤리적 규범이 모호해짐에 따라 모든 가치들이 재평가되고, 이런 혼란 속에서 악의 개념은 매우 자주 새롭게 정의되고 채워지기 때문에, 악의 개념은 엉성한 빈껍데기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현대 윤리학은 선과 악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공통되는 답변을 주기에는 분명히 무력하다.(2)

성서의 죄에 대한 이해

그렇다면 도대체 죄란 무엇인가? 기독교 신앙은 죄를 무엇이라고 규정하는가? 성서에 의하면 죄는 단지 자연법이나 도덕 법률의 위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우리 관계의 단절, 혹은 분열이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죄은 죄가 언제나 내 앞에 있습니다.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시 51:3-4).

그런데 죄의 이러한 본질은 참된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이것은 마치 해가 비칠 때, 빛을 차단하는 벽의 위치와 색깔, 벽의 두께와 높이가 식별되는 것과도 같다. 베드로가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눅5:8)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때에만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를 밝히 보여주는 거울 속에서 우리의 죄가 낱낱이 드러난다.(3)

단지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서만 비로소 죄는 그 완전한 차원에서 온전한 깊이가 인식된다. 죄의 최종적 예리성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식된다. “오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 때, 우리는 정말로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과, 죄가 무엇이며, 이 죄가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CD Ⅳ/1, 389).

우리는 이 죄의 본질을 칼 바르트의 화해론을 통하여 해명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그가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 죄의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가장 인상적이고 설득력 있게 해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화해론에 앞서서 죄론을 취급하는 전통적인 조직신학의 방법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을 다루는 『교회교의학』 ‘화해론’(Ⅳ/1-3권) 가운데서 죄론을 다룬다. 그는 죄의 본질과 결과를 화해론의 각 세 부분과의 변증법적 관계로 논한다.(4)

이렇게 하여 바르트의 죄론은 화해론에서 다루어지고 화해론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를 이룬다. 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과 구별하여 죄의 교리를 독자적으로 다룰 때, 죄의 교리는 추상화되고 만다.(5) 참된 죄 인식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인식과 상관관계에 있을 때 가능하다.(6) 바르트의 신학의 방법론적 특징인 “그리스도론적 집중”은 이 죄론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관철된다.

우리는 이 글을 다음과 같이 진행시키려고 한다. 우선, 바르트의 화해론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것은 바르트 자신이 죄론을 화해론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비추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에 비추어 밝혀진 죄의 본질을 살펴보자. 그러나 우리의 주제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화해론 제1권에 제한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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