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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을 향한 다음 단계로있는 힘을 다하여(시편 34:9-1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2.08.28 22:25
▲ Kues, 「Man Climbing Starirs to Heaven」 ⓒFreepik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지난 4년간 매 주일 주중에 평안을 누리셨는지에 대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한주도 빠짐없이 주중에 평안을 누리고 오셨는지를 질문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안’은 성도가 누려야 할 가장 큰 하나님의 선물 중 하나이기도 하거니와 일상에서 평안을 누렸느냐 누리지 못했느냐는 스스로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았는가?’ 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가?’라는 신앙의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누리겠다는 결단은, ‘이제 다른 곳에서 평안을 찾지 않겠다.’와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다른 곳에서 평안을 찾지 않겠다는 말을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자면, 이제 더는 세상 사람들이 평안이라고 말하는 것들, 욕망하는 것들을 좇으며 살아가지 않고, 나를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의 방식과는 다르게 살아가겠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별되게 살겠다가 성경이 말하는 ‘거룩’의 의미입니다. 거룩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룩은 너무 성스러워서 뭔가 이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삶,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레위기 19:1-2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거룩해지라고 명령하시면서, 이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레위기에서 거룩해지기 위해 명령하신 말씀들을 다시 되새겨보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아주 구체적인 명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거룩’은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쳐다보면 눈이 부시는 어떤 거룩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내려야 하는 어떤 선택의 순간들에서 하나님을 택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주중에 문자로 보내드렸던 레위기 말씀들 읽어보셨나요? 거룩에 관한 말씀을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레위기 18:30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지키라고 한 것을 꼭 지켜서, 너희보다 앞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저지른 역겨운 풍습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따라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런 짓들을 하여, 너희가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레위기 19:18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

레위기 19:33-34 “외국 사람이 나그네가 되어 너희의 땅에서 너희와 함께 살 때에, 너희는 그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함께 사는 그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그를 너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 살 때에는, 외국인 나그네 신세였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레위기 20:7-8 “그러므로 너희는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한 규례를 지켜 그대로 하여야 한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한 주다.”

방금 읽어드린 레위기 말씀의 핵심은 ‘내가 말한 것을 지켜라.’입니다. 이렇게 명령하신 것들을 지키는 것이 거룩한 백성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성도도 바로 이런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선택의 순간들에 어떤 선택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인지를 ‘있는 힘을 다하여’ 고민하고 기도하고 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몇 주 전부터일까요, 아니면 지금까지 저의 모든 설교가 그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도님들께 늘 자신을 비워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야 믿음의 다음 단계, 성숙의 단계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에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을 통해 성도님들께 드린 말씀이 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기 위해’, 먼저 여러 번 하나님을 의심하며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세 번의 요청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세 번의 증거를 본 기드온은, 이후 전쟁을 치르기 위해 필요한 군사를 남기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요구에 아무 말 없이 순종했습니다. 

군사를 삼만 이천 명에서 삼백 명까지 남기는 과정에서 성경 어디에도 기드온이 두려움에 떨었다거나, 하나님의 요구를 거부했다거나, 전쟁에 나가기를 주저했다는 기록이 있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 즉 개인적인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로, 성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시는 것일 뿐입니다. ‘내가 하나님임을 이제 네가 알지어다. 그러니 이제 너는 나의 말에 순종하며 살아라.’를 하시기 위해 지금 성도가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기드온처럼 그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도록, 오늘날의 성도에게도 자신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도록 요청에 응하고 계실 뿐입니다. 믿음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시는 과정입니다.

요한복음 20:24-29 에 이런 믿음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7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28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29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예수님은 도마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하나님처럼 예수님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의 요청에 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이런 모든 부차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믿음의 성숙한 단계로 가는 이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요구를 하지 않고 바로 성숙한 믿음의 단계로 들어가는 이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바로 믿음의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할지라도, 이제는 ‘어떻게 해야 내 삶이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요?’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를 있는 힘을 다해 구해야 합니다.

주중에 ‘오셔서 다스리소서’라는 찬양이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 찬양의 후렴 부분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주 오셔서 통치하소서. 헛된 나의 꿈 어둠 거두사 내 모든 것 다 드리니. 오셔서 다스리소서. 주 오셔서 통치하소서. 헛된 나의 꿈 어둠 거두사, 다시 한번 나의 주님, 오셔서 다스리소서. 오셔서 다스리소서. 오셔서 다스리소서.”

이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인했음에도 또다시 확인하고자 하는 젖을 먹는 아기와 같은 낮은 믿음의 단계로 돌아가려 할 때 이 찬양과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헛된 나의 꿈 거두사, 주 오셔서 통치하소서.’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요청하시는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저와 성도님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그리고 오늘날 성도를 통해 보고자 하시는 모습이 평화를 이루는 것이니,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9-10절 말씀입니다.

시편 34:9-10 “9 야훼의 거룩한 백성아, 두려운 마음으로 그를 섬겨라. 두려운 마음으로 그를 섬기면 아쉬울 것 없으리라. 10 맹수들은 먹이 찾아 배고플지 모르나 야훼를 찾는 사람은 온갖 복을 받아 부족함이 없으리라.”

마치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와 같은 말씀입니다. 먼저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요청합니다. 

여기서 거룩은 바로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백성입니다. 다른 이방의 율례와 규례를 따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이 거룩한 백성입니다.

이런 구별된 삶을 사는 백성, 거룩한 백성은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시편 34:11-14 “11 젊은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들어라. 두려운 마음으로 야훼 섬기는 길을 가르쳐 주마. 12 즐거운 날을 보내고 싶으냐? 좋은 일을 보며 오래 살고 싶으냐? 13 혀를 놀려 악한 말을 말고 입술을 놀려 거짓말을 말아라. 14 못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여라.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우리는 어떻게 해야 거룩한 길로 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깊은 믿음의 길, 성숙한 길로 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즐거운 날, 좋은 일을 오래 보고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시편 34:13-14 “13 혀를 놀려 악한 말을 말고 입술을 놀려 거짓말을 말아라. 14 못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여라.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혀를 놀려 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 입술을 놀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못된 일을 하지 않는 것, 착한 일을 하는 것. 여러 사람과의 만남들 속에서 또는 상황 속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평화를 이루는 일이고, 즐거운 날, 좋은 일을 오래 보고 살 수 있는 비결이라고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얼마 전, 제가 속해있는 한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 모임 자리에서 꼭 보아야 할 영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어서? 본 것으로 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이런 진행방식을 보고 있으면서도, 당시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내가 이 모임에 속한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내가 뭐라고 한들 달라질까 싶어서. 지금 모임을 이끌어가는 이들이 나한테 도움을 준 사람들인데 내가 반대하면 불편해지니까.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침묵했습니다.

저는 거룩한 백성이었습니까? “있는 힘을 다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있는 힘을 다하여’ 평화를 이루라는 이 말씀은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무엇을 이루어가라고 요청하시는 말씀인가요? ‘있는 힘을 다하여’ 더 성숙한 믿음의 길로 나아가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남들은 알지 못해도, 스스로 아는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부끄러움마저 아십니다. 이제는 우리 안에 이런 부끄러움마저도 남기지 않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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