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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런 건 아니지만, 흑인을 혐오한다는 것을 느꼈어요”앙골라에서 온 보벳(Bobette)네 가족 이야기
정리연 | 승인 2022.09.15 08:37
▲ 왼쪽부터 보벳, 그라쓰, 실로, 레마, 로데, 롤렌도 가족. ⓒ정리연

전 세계 난민은 1억 명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7만여 명이 난민 인정을 신청했는데, 1.5%인 1,194명(2022. 4월)만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난민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태어난 나라에서 사는 우리 대부분은 ‘나하고 상관없다’라는 생각 때문에 주변에서 마주치는, (특히 백인 계열이 아닌) 외국인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혐오하곤 한다. 하지만 전쟁과 종교, 인종, 기후 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유로 세계 곳곳에서 난민은 계속 늘고 있다. 이대로라면 우리도 언젠가 이 부류에 속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룰렌도와 보벳은 앙골라에서 차별에 시달렸다. 콩고에서 왔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앙골라 내전이 심했을 때, 앙골라와 콩고의 접경 지역 주민 상당수가 콩고로 피난을 갔다. 룰렌도와 보벳의 부모님도 그 길을 택했다. 부모의 이주로 콩고에서 태어난 룰렌도와 보벳은 성인이 된 이후 앙골라로 돌아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콩고 정부가 앙골라 내전에서 반군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앙골라에서는 콩고 사람들에게 반감이 높았던 것이다.

9월 3일, ‘보벳’네 집에 놀러 갔다. 지난 12월에 아이들과 함께 성탄 파티를 한 게 마지막 만남이었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여섯 식구(룰렌도, 보벳, 개구쟁이 4명)가 사는 빌라에 우리 가족까지 들어가니 거실이 꽉 찼지만, 아이들이 놀면서 떠드는 소리와 흥겨운 가스펠을 들으며 춤을 추던 보벳의 밝은 모습이 깊게 남아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궁금했었다. 이 땅에서 난민이자 여성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텐데 그녀가 이토록 밝은 에너지를 간직하며 살아가는 힘은 뭘까? 종교의 힘일까? 공항 생활을 접고 난민으로 사는 삶은 어떠할까? 종종 카톡으로 연락하면서 안부는 전했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방문을 기회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제2의 고향을 꿈꾸며 도착한 나라, 한국

▲ 오랜만이에요. 에큐메니안 독자들을 위해서 가족 소개를 간단히 부탁해요!

우리 가족은 나와 남편 룰렌도(Lulendo), 레마(Rhema), 로데(Rhode), 실로(Shilo), 그라쓰(Grace) 6명입니다. 레마는 13살, 로데와 실로는 12살(쌍둥이), 그라쓰는 10살이에요..

▲ 이미 언론에도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분이 있을 수도 있어요. 원래 살던 곳을 떠나서 한국으로 오게 된 이유는 뭐예요? 

2018년 11월 16일,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Luanda)에서 남편이 택시 기사로 일하다가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어요. 남편은 운전을 하던 중에 급하게 길을 가로질러 건너 도망치는 노점상인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경찰에 쫓기고 있었죠. 남편은 충돌을 피하려고 오른쪽으로 방향으로 택시를 틀었지만 그곳에 주차되어 있던 경찰차를 들이받았어요.

그러자 갑자기 경찰이 남편을 폭행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남편은 온 힘을 다해 상황을 설명하고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지만 경찰은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요. 그때 불행하게도 앙골라 경찰들은 남편의 왼팔에 있는 결핵 백신(앙골라인은 맞지 않고 콩고인들만 맞는 주사인데 흔적이 평생 간다고 함)과 구사하는 언어를 듣고 콩고에서 온 사람인 것을 알아보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즉시 경찰서로 데려갔고 곧바로 감옥에 수용되었죠. 남편은 재판도 받지 못하고 범죄자처럼 심문을 받았고 무수한 고문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2018년 11월 24일~25일 밤, 어떤 경찰관이 와서 남편을 다른 경찰과 함께 차에 강제로 타게 했다고 했어요. 남편은 그것이 인생의 끝인 줄 알았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밤에 강제로 데리고 가서 죽이곤 했기 때문이었죠.

팔랑카라는 지역에 도착했을 때 어떤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찰이 남편에게 빨리 자기들 앞에서 사라지라고 명령했다고 해요. 마침, 그 지역은 우리가 다니던 교회 근처였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지만, 남편은 온 힘을 다해 달렸고 교회로 가서 숨었다고 하네요.

몸이 많이 약해진 남편을 교회 목사님이 간호사를 불러서 돌봐주셨습니다. 다음날 남편에게 전화가 왔을 때에야 남편이 살아있는 걸 알았어요. 나는 남편에게 몸이 좋지 않다고 얘기했어요. 남편이 감옥에 있는 사이에 집에 찾아온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은 우리가 앙골라에서 도저히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총 6식구는 한국에 도착했다

룰렌도 가족은 가능하면 빨리 앙골라를 떠나고 싶었다. 유럽으로 가려고도 했었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런데 마침, 교회 근처에 한국대사관이 있었고 교인 중 한 명이 한국 비자를 받아서 떠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고 한다. 다행히 한국대사관에서 비자를 바로 발급해주었다.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지만, 앙골라 보다는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온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입국이 막혔다. 룰렌도 가족이 난민 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앙골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288일, 10개월 동안 억류되는 등 고통의 기간을 보냈다. 평생 처음 겪는 추위와 먹을 것도 없이 공항에서 살아야 하는 지옥의 삶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신기하다는 듯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을까! 그러나 룰렌도와 보벳은 어린 아이들(당시 5살, 7살 쌍둥이, 8살)을 무사히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가장 컸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 공항 생활 10개월 만에 여러 단체의 지원으로 난민 인정을 받았고 지금은 안산에서 살아가고 있다.

▲ 고국을 떠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낯선 나라를 향할 때 기분은 어땠는지? 출국 전 당했던 아픔이 있는데 건강은 어떤지?

처음엔 매우 슬펐어요.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는 기분, 이해하실지 모르겠네요. 다른 가족을 떠나 먼 나라로 가야 했기 때문에 더 그랬어요(앙골라에는 보벳의 여동생이 한 명 남아있었는데 얼마 전에 병으로 죽는 슬픔을 겪었다). 언어가 다른 것도 너무 걱정되었죠. 하지만 지금은 앙골라에 있을 때보다 안전하고 평안한 느낌이 들어요. 건강도 많이 좋아졌어요. 한국에 도착해서 많은 분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해요.

▲ 어려움 중에서도 마음이 평안해서 참으로 다행이에요. 그래도 한국에서 지내면서 외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힘든 게 있을 것 같아요.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뭔가요?

한국의 많은 사람이 흑인을 싫어한다는 점이에요. 지하철을 탔을 때 자리가 비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았는데 먼저 앉아 있던 한국인들이 일어나서 다른 데로 가버리더라구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고 혐오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모든 한국인이 그러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대부분 한국인이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과 대하는 행동이 그리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일자리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남편은 지금 가구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매우 열악하고 고된 노동이에요. 나 역시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어서 구해보기도 했었는데 언어 소통이 어려워서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돌봐야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어려움도 있습니다.

▲ 아, 그런 일들을 겪었군요. 제 마음이 다 아프네요. 그럼, 아이들은 어떤가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되었는데 잘 적응하고 있나요?

실은,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어렵고 힘들어요. 어른들이야 이런 저런 일들에 버틸 수 있지만,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까 상처를 많이 받고 있어서 걱정이에요. 이제 한국말은 어느 정도 하지만 학교에서 친구들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공항에서 거의 삼백일 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정착 후 학교에서도 스트레스 받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친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종과 피부색이 다르다 보니 친구들과 지내는 데 힘들어해요.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어려워요. 그저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밖에...

그럼에도 감사와 찬양을 할 수 있는 건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 밝고 잘 놀아서 그런 아픔이 있는지 몰랐다. 우리 아이들과 같은 또래여서 궁금했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마음을 나눌 시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니 부모로서 아픈 마음이 공감이 갔다. 단순한 이사로도 친구 관계가 힘든데 나라와 언어, 인종이 다르니 주변 친구들의 반응이 어떨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 기독교인인 걸로 알고 있어요. 한국에서도 교회를 다니고 있죠? 당신에게 기독교, 교회는 어떤 의미인가요? 

콩고에서 태어날 때부터 기독교인이었어요. 교회에서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존재, 하나의 커다란 가족임을 느껴요. 예배를 드릴 때는 한국인, 앙골라인, 콩고인인지 상관이 없죠. 하나님이 여기에 함께 계시고 모두 한 가족이고 모두 평등한 사람임을 느껴서 좋아요. 동네에 있는 교회에 다니는데 다른 외국인들도 있고 설교는 영어, 프랑스어로 통역이 됩니다.

▲ 좋아하는 성경 구절 있나요?

시편 23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외워왔어요. 주님은 나의 목자요, 우리 가족의 목자임을 항상 고백해요.

▲ 보벳 가족의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 항상 지켜주시기를 저도 기도할게요. 마지막으로 개인과 가족의 가장 큰 소망이 있다면?

우선은 모두의 건강이에요. 그리고 역시 아이들이죠.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적응하면서 자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성인이 되어 한국에 잘 정착해서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이라는 더 큰 가족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

상상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지만, ‘보벳’네 가족은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큰 가족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라고.

예수님은 언제나 변두리, 차별받는 자, 어떤 존재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눈길과 손을 내미셨다. 누구든지 자신에게 오는 자를 막지 않으셨다. 우리가 그런 예수를 따르는 자라면 지금 이 시대에 손과 눈을 둬야 할 곳이 어디일까? 예수님이 지금, 그런 곳에 그 모습으로 계신다면?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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