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유동식 교수

누구에게나 그 사람을 특징짓는 별칭이 한두 개쯤은 있기 마련이다. 마치 인디언식 이름처럼 말이다. 나의 스승 유동식(柳東植) 교수님에게도 그러한데, 몇 개 소개하면 이렇다. 우선,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금’(素琴)이라는 자호이다. 이것은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싯귀 “樂琴書以消憂(낙금서이소우)” 곧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시름을 달래련다”라는 말에서 거문고 ‘금’(琴) 자를 따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스스로 겸손히 낮추어 ‘없다’는 의미의 ‘소’(素)를 붙여 “줄 없는 거문고”인 ‘소금’으로 자신을 표현하였다. 말하자면 소금이란 말 속에는 책과 예술을 가까이하며 평생을 소박하게 산 한 멋진 예술신학자의 삶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로 소금 선생님에게 따라붙는 또 다른 말은 ‘풍류도’(風流道)이다. 현재 학계에서, 그것이 신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인문학 및 예술계를 모두 포함해서 풍류도를 논할 때 유동식 교수를 제외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만큼 풍류도와 유동식은 거의 동의어로 쓰일 만큼 풍류도는 이제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사실, 그는 한평생 초지일관하게 한국신학을 정립하는데 온 힘을 다 기울였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무교 연구를 통해 그것이 단순히 미신이 아니라 한국사상의 원천임을 밝혔고,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유불선’(儒佛仙)을 아우르는 ‘풍류도’를 기반으로 한 ‘풍류신학’을 창안하였다. 이것은 명실상부한 최초의 한국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비록 민중신학이나 토착화신학으로 불리는 몇몇 한국적 신학들이 있지만, 그 어떤 한국적 신학도 풍류신학 만큼 한국사상에 깊이 뿌리를 둔 체계적이고 독창적인 신학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소금 선생님은 풍류신학을 ‘체(體)-상(相)-용(用)’의 동양학적 구조로 해명하면서 그 핵심에 해당하는 본질인 ‘체’를 ‘예술성’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풍류신학을 ‘예술신학’으로 새롭게 재정립한 뒤, 한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예술신학에 근거한 ‘예술목회’를 강조했다. 이것은 현재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교회에게 하나의 빛줄기 같은 가르침으로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귀담아 두면 좋을 것 같다.

셋째로 소금 선생님을 특징짓는 또 다른 말은 ‘하늘 나그네’이다. 그 말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 곧 본향을 향한 소금 선생님의 깊은 신앙심과 순례자적인 삶이 고스란히 잘 녹아 있다. 그는 1922년에 태어난 일제 식민지 백성으로서 나라 잃은 백성의 슬픔을 처절하게 경험한 분이다. 그래서 그는 종종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가장 기쁘고 감격스러웠던 일은 다름 아닌 ‘815 해방’이었다고 말하곤 하였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사건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출애굽 사건처럼 그에게 있어서도 구원의 ‘원체험’(root experience)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 원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삶을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삶으로 고백하면서 그것을 일컬어 ‘하늘 나그네’의 삶으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그는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가사가 담겨진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의 은총 입어”를 아주 좋아하였다. 그리고 손수 자신의 그런 삶을 ‘하늘 나그네’로 고백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는데, 이 시야말로 그의 신앙과 삶을 특징짓는 가장 멋진 표현이 아닌가 싶다.

고향을 그리며
바람 따라 거닐다가
아버지를 만났으니
여기가 고향이라
하늘 저편 가더라도
거기 또한 여기거늘
새 봄을 노래하며
사랑 안에 살으리라.

어제 소금 선생님은 누구나 한번 반드시 가야 할 본향을 향해 하늘 나그네로 먼 길을 떠나셨다. 아마 지금쯤 하늘 고향에 당도하여 그가 사랑했던 이들과 더불어 새봄을 노래하고 계시리라. 선생님을 멀리 떠나보낸 다음 날 아침이라 그런지 평소 사랑받아온 한 제자로서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한 멋진 삶이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복음적 실존”(요14:20)이라 말씀하시며 몸소 그렇게 살아낸 소금 선생님을 사제의 연으로 만나 인생을 한바탕 더불어 잘 즐겼다고 생각하니 홀연히 큰 기쁨이 밀려온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늘 나그네로서 새로운 삶을 사시는 선생님의 영정 앞에 삼가 두 손을 모은다.

손원영 교수(서울기독대학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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