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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신학과 민중신학, ‘사건’의 신학으로 만나다카푸토의 ‘약한 신학’과 안병무의 민중신학 비교 연구 (5)
김민아 박사(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집행위원장) | 승인 2022.12.04 04:54
▲ Jacob Jordaens, 「Christ Driving the Merchants from the Temple」 (c. 1650) ⓒWikimediaCommons

‘약한 신학’의 ‘사건’

카푸토의 약한 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은 둘 다 ‘사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카푸토는 하나님의 이름이 곧 사건이라고 보았는데, 사건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건은 비함유성(uncontainability)을 특징으로 하는데 사건은 이름에 담겨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번역가능성(translatability)도 갖는다. 이름은 끝없이 사건에 이름을 붙이려고 하지만 사건은 수많은 이름으로 번역될 수 있다. 사건은 이름이 도달하고자 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바이다. 사건은 의미이지 이름이 아니라는 점에서 탈문자(deliteralization)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건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넘쳐흐른다(excess). 우리의 기대나 예상을 넘어서서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무도 궁극적인 사건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또한 사건의 발생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그 안에 악(evil)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건은 지켜져야 할 약속인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위협이 될 가능성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건은 존재를 넘어서는(beyond being) 것이다. 사건은 존재론적 질서로 제한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건은 진리(truth)를 구성한다. 마지막으로 사건은 일상의 규격화된 시간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다가올 미래의 열린 시간(time)이다.(1)

이상의 설명에 따르면 카푸토가 제기하는 사건의 신학은 불확정적이고 무한한 개방성을 갖고 있으며,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기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건이 궁극적으로 ‘선(goodness)’에 대한 요청이라는 카푸토의 지적이다. 하나님은 힘과 존재가 아니라 사건으로, 선에 대한 요구이자 간절한 호소의 방식으로 일한다.(2)

카푸토는 사건이 무한한 개방성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선’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그의 약한 신학이 약자를 위한 신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된다.

‘민중신학’이 말하는 ‘사건’

한편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사건은 ‘민중사건’이다. 먼저 안병무는 사건으로서의 예수를 강조하면서, “예수는 하나의 사건”(3)이라고 말한다. 이때 예수사건이 지칭하는 것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아니고 여러 기적이행도 아니다.

민중신학에서 주목하는 예수사건은 십자가 사건이다. 민중신학에서 예수를 하나의 사건으로 본다는 것은 예수 이야기가 2,000년 전 실존했던 한 인물로만 국한될 수 없으며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민중사건으로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병무는 민중사건을 거대한 하나의 화산맥에 비유한다.

하나의 화산맥이 여러 시대를 두고 흘러나오면서 각각의 역사적 상황에서 분출하는데, 그 화산맥이 예수시대에 거대한 활화산으로 터진 것이 바로 예수사건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민중사건들도 2,000년 전의 예수사건과 맥을 같이 하는 사건이다.(4) 예수사건은 이천년 전에 한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출애굽에서도 일어났고 고대 이스라엘의 부족동맹에서도 일어났고 예수시대 팔레스타인에서도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다만 그것이 결정적으로 터진,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확실한 거점이 된 것이 예수사건일 뿐, 안병무는 예수사건이 질적으로 고유하고 유일회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보지 않는다.(5) 예수의 부활에 있어서도 안병무는 사건이라는 틀로 해석을 시도한다. 예수의 부활은 자기초월의 사건 속에 예수가 자신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하고, 따라서 민중이 자기초월 속에서 이 세상 전체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건은 예수의 부활사건이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6)

안병무는 ‘말씀’이 있기 전에 사건이 있다고 말한다.(7) 이 사건을 말씀에 고정시키고자 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점은 카푸토가 말한 ‘이름’과 ‘사건’의 관계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개방성과 반복성

끝없는 개방성과 반복성이라는 측면에서 카푸토의 사건과 민중신학의 사건은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카푸토는 특정한 사건의 특권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민중신학에서의 사건은 예수사건에 어느 정도의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예수사건이 가지는 특권적 지위는 무한한 민중사건들 중에서 그것이 원형이라거나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이 시작된 거점이 된다는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다. 곧 예수사건이 민중사건이고, 역으로 민중사건도 예수사건인 셈이다. 따라서 이름 혹은 말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의미와 개념으로 무한히 발생하며 진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신학의 사건과 카푸토의 사건은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카푸토와 안병무가 말하는 사건은 어떤 것의 개념을 규정하고 그것의 의미를 명명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하고 움직이고 일어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는 점도 강조될 필요가 있다. 약한 신학은 체계적인 이론화나 개념화가 아니라 현장에서 예측불가능하게 발생하는 사건을 통한 경험을 강조하는데, 추방당한 이들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정치가 카푸토의 사건 이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8) 민중신학에서도 민중사건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강조한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현재 삶의 자리,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미주

(1) J. D. Caputo, The Weakness of God: A Theology of the Event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06), 2-7.

(2) Caputo, The Weakness of God, 53.

(3)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8), 25.

(4)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35.

(5)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59, 104.

(6)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338.

(7)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83-84.

(8) 이은주, 「사건과 해체: 존 카푸토의 사건의 신학」, 『신학논단』 68 (2012), 158.

김민아 박사(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집행위원장)  minahkim@i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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