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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 필리핀 이주노동자들 추방, 다시는 비극 되풀이되지 않길”대구 논공필리핀교회 라프 앙겔로 루마바스 목사, 열악한 노동환경에서도 고향 가족을 위해 기도했던 이주노동자들에게 관심‧연대 부탁
임석규 | 승인 2023.04.15 22:56
▲ 장시간 저임금 등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필리핀 이주노동자 형제들을 바라보며 사태의 심각함을 새삼 깨달았단 라프 목사는 한국교회에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관심과 연대를 부탁했다. ⓒ임석규

“필리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보니 우리 필리핀에서도 하지 않는 장시간 노동을 하는데도 제대로 휴식조차 하지 못하는 동포(필리핀인)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추방당한 9명의 필리핀 이주노동자) 그들은 고국에 있는 가족들과 한국에 와 함께 일하며 사는 이웃 필리핀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추방당한 것은 남아있는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는 가족의 죽음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에큐메니안은 지난 11일 대구이주민선교센터(대구평화교회, 예장통합 대구서남노회)에서 예배 도중 이주노동자 신도 9명을 경찰에 의해 빼앗긴 라프 앙겔로 루마바스 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차분히 그 당시를 설명하는 라프 목사의 눈동자는 하루아침에 눈앞에서 수년간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신도 9명을 잃었다는 슬픔과 불투명한 미래로 인한 괴로움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라프 목사는 2014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로 한국 땅을 밟았다. 라프 목사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도 한국에서 수년간 일해 본국 필리핀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귀국한 뒤 익힌 기술로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을 품으며 한국 땅을 밟는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21일 고용노동부(장관 이장식)의 발표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를 통한 ‘외국인근로자(E-9)’ 2022년 입국 인원이 8만 4천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공단에서 저임금·장시간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린 필리핀인들을 본 라프 목사는 선교에 대한 순수한 꿈이 현실과 다르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어떤 필리핀인은 본국(필리핀)에서도 해 본 적 없는 주7일 근무 하고 있다고 라프 목사에게 털어놓았다. 한국인들은 노동법을 통해 주 48시간 일하지만, 이들은 한국인이 아니란 이유로 노동법 사각지대에서 사실상 착취당해 온 것이었다.

열악한 노동환경 외에도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을 괴롭힌 것이 있었다. 이들은 장기간 타향살이하다 보니 상당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특히 일하다 병나거나 다칠 때 그 서러움은 누구보다 더 컸다. 마침 대구에 한국 내 PMCC(Pentecostal Missionary Church of Christ [4th Watch]) 교단에서 설립한 교회가 없었기에 교단에서 라프 목사에게 목회를 요청했고, 한국 내 필리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며 목회의 소명을 다짐한 라프 목사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2018년부터 본격적인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곁에 직접 찾아가 “깊은 외로움에 빠져 있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힘을 냅시다.”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라프 목사의 선교로 위로받고 힘을 얻은 필리핀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였고 이를 기반으로 필리핀교회 공동체가 형성됐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나기 전 신도의 수가 늘어나 등 공동체는 가시적인 성장에 신도들 모두 한껏 고무(鼓舞)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의 소박한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3월 12일 라프 목사와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는 와중에 갑자기 경찰이 교회 안으로 들이닥쳤다. 먼 고향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건강을 지켜달라던 신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함께 직장과 교회에서 동고동락했던 신도, 지난 1년간 바쁜 업무 사정 때문에 참석을 못 했다가 오랜만에 교회에 나왔던 신도, 교회 공동체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먼저 나서서 해결사로 활약했던 신도 등 9명의 신도가 경찰에 의해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됐다.

▲ 대구 논공필리핀교회의 예배 유린과 이주노동자 9명 체포와 추방은 한국교회 이주노동자 선교의 새로운 의제가 되었다. ⓒ임석규

이 사건으로 인해 라프 목사와 신도들에게 결코 지워낼 수 없는 공포와 트라우마가 남겨졌다. 그러나 체포되어 한국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신도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지역에서 결성된 대책위원회(대구경북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대구이주민선교센터 등 지역 교회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 이하 대책위)의 도움으로 대구달성경찰서 앞에서 규탄기도회 겸 기자회견이 성사됐다. 이들은 함께 모여 경찰의 사과 및 재발 방지대책 수립, 미등록이주민의 인권 및 종교 활동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이어 예장통합‧기장 등 교단의 이주민선교협의회 등 기관들이 합류한 ‘대구 논공 필리핀교회 예배 유린과 교회침탈에 저항하는 범기독교연대’도 29일 서울 서대문구 소재 경찰청 앞에서 규탄기도회를 열고 성명을 발표했다. 라프 목사는 현장 증언 시간을 통해 힘든 일상을 살아온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잠시라도 예배 시간을 통해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와중에 교회에 들어와서 강제로 연행한 것은 신앙에 대한 탄압이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혐오가 깔린 인권 탄압이라고 호소했다.

이후 김수영 대구지방경찰청장이 지난 4월 6일 대책위를 찾아와 예배 도중 단속 및 연행에 대한 사실을 사과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지시했음을 설명했다. 그러나 라프 목사와 대책위는 29일 서울에서의 규탄기도회가 있기 하루 전에 신도 9명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의해 필리핀으로 강제 추방당한 사실을 듣고 충격받았다.

머나먼 한국으로 와 5년 이상 타향살이하면서 끈끈한 정을 나눈 신앙공동체의 동지가 추방당한 사실은 교회 공동체에게는 가족의 죽음과 같은 비극이었다. 그러나 일단 김 청장이 직접 방문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며, PMCC 교단에서도 한국-필리핀 간 평화적 외교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승적(大乘的) 차원에서 경찰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후 필리핀교회는 기존 예배 장소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다시 예배 처소를 마련했다. 한동안 온라인 화상 회의 프로그램으로 예배를 드렸던 신도들은 다시 새로운 신앙의 터전을 마련했다는 작은 안도감과 경찰이 또 예배 중에 들어오지 않겠느냐는 두려움이 섞인 상태다.

라프 목사는 이번 사건이 교회 공동체에게 닥쳐온 ‘고난’이라 평가하며, 언어가 다르나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지역 교회들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또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울수록 하나님을 의지하며 선교와 지역사회·필리핀인 동포를 위해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 더 내딛는 성숙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겠다면서, 본국 필리핀에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며 기도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관심과 연대를 호소했다.

임석규  rase21c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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