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통일 칼럼
한국교회, 북한을 벗으로 삼아라한국전쟁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3)
정종훈 교수(연세대학교) | 승인 2023.06.07 10:46
▲ 고 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남북 간에 친구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라

1988년 2월 25일 제6공화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고, 세계인의 대축제인 ‘88 서울 하계올림픽’(1988.9.17.-10.2)이 개막하기 두 달 전인 7월 7일 노태우 정부는 소위 ‘7.7 선언’을 발표했다. ‘7.7 선언’의 중요한 의미는 북한을 적대적 상대가 아닌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상호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선의의 동반자’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7월 16일에는 “북한이 유엔의 모든 산하 기구와 전문기구, 정부 간 지역 협력 및 개발기구 등에 참가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히면서 전향적인 ‘외교 시책’을 발표했다. 7월 19일 0시를 기해서는 휴전선 지역의 대북 비난 방송을 전면 중단하고,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지양하며, 북한 및 공산권 자료를 개방하는 조치를 실행했다. 그리고 10월 7일에는 민간 상사의 북한 물자 교역 허용, 경제인의 직접 접촉 및 방문 허용 등 물자의 교역은 물론 인적교류에 대한 제약요인을 제거하고 남북 간의 경제교류를 확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노태우 정부는 7.7 선언과 그 이후의 입장 선회에 머물지 않고, 남북화해를 위해서 북한과 실질적인 접촉을 시도했다. 그 결과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를 주장하던 남북한 각각의 정부는 세계 냉전체제 해체의 분위기에 편승하면서, 남북고위급회담을 거쳐 1991년 9월 17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 동시에, 그리고 각각 160번째와 161번째로 유엔 회원국이 되는 한반도 평화의 대장정에 이르게 되었다. 그동안 남한은 북한에 대해서, 북한은 남한에 대해서 하나의 국가로 전혀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서로 인정하며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13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1972년 7.4 남북공동 성명서가 천명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확인하며, 남북 간의 화해 및 불가침, 교류 협력 등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그리고 12월 31일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하여 핵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조국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마련하자.”는 취지 아래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이처럼 1988년과 1991년은 남북관계의 험악했던 상황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만들어낸 특별한 해였다.

1990년 6월 4일, 노태우 대통령과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 사이의 정상회담에서 한소수교의 원칙이 합의되었고, 9월 30일 한소 양국의 외무장관은 수교를 합의하는 의정서에 서명했다. 1991년 12월 26일, 한국은 소련의 붕괴 이후 그 지위를 이은 러시아와 다시 수교했다. 1992년 8월 24일, 한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도 국교를 수립했다. 이처럼 북한의 동맹이자 유력한 지지자였던 중국, 러시아와 한국이 국교를 수립했다는 것은 이데올로기 냉전의 한 가운데서 열전까지 경험한 한반도에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과 긴장의 관계를 해소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원수관계에서 친구관계로 전환하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군사정권의 연장선 위에 있던 노태우 정부가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적절히 활용해서 친구관계를 지향하는 남북관계와 국제관계를 만들어낸 것은 갈지자를 긋고 있는 현재의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친구관계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인격적인 주체로 함께 서 있을 때만 가능하다. 자기나 상대가 주체적이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종속된다면, 그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이지 친구관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남북한이 유엔에 같은 날 각각 가입한 것은 남북한이 두 개의 다른 국가임을 세계에 선포한 것과 다름이 없다. 하나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으로 분단된 남북한은 주변 국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것이 틀림없지만, 서로 하나의 국가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특수관계에 있는 두 개의 국가 남북한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남북한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인식 아래서 좋은 친구관계를 맺어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한은 원래 물보다 진한 혈연의 형제자매 관계가 아니었던가. 한편 한미관계 역시 사대주의를 떨치고, 전시작전권을 회수하고, 대등한 친구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한미 간의 동맹관계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 평화가 안보인 것은 맞지만, 안보가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한복음 15:13)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북한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로 인해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변화무쌍한 국제사회에서 ‘불량국가’, ‘악의 축’ 또는 ‘영원한 적’으로 취급당하며 계속해서 고립무원의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주체적인 각각의 국가임을 인정하고, 국가 간의 우정과 협력을 도모하며, 친구관계를 유지하도록 제안해야 한다. 대한민국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영토와 국민을 불법으로 점거한 적이라고 더 이상 취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친구가 어려울 때는 관심을 갖고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처럼, 남북교회 간에 협력창구의 일원화를 마련해서 생존 자체가 쉽지 않은 북한에 대해 생필품 지원을 비롯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 1989년 방북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난 문익환(사진 오른쪽) 목사. ⓒ사단법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남북 간에 평화공존번영의 관계를 구축하도록 하라

진정한 평화는 전쟁이 없음(不在)에 있지 않고, 평화공존번영의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 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맺은 정전협정의 핵심은 전쟁 상태를 일시적으로 중지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일시적인 중지가 곧 전쟁의 끝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정전의 상황이란 말 그대로 전쟁을 쉬는 것이기에 여전히 전쟁의 지속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을 쉬는 기간은 언제나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그러므로 전쟁을 쉬는 당사자들은 당장에는 소극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지만, 적대적인 관계의 지속으로 인해서 군비경쟁의 체제에 머물러 무기개발과 군비확장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정전협정 이후 70년을 지나는 동안 대한민국이 세계군사력 6위의 국가가 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핵보유국가가 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고, 상호불가침을 보장하며, 군비와 군사훈련을 축소하고, 다방면으로 교류하며 공존번영할 때 도래한다. 비록 늦어지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언해야 한다. 한국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할 때만 전쟁 당사자 국가들은 적대적인 관계를 공식적으로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의 모색을 향해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전선언은 일시적이고 상징적인 정도의 의미만 있기에 보다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전협정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해왔다. 그러나 남한 정권들은 문재인 정권 말고는 이점에 대해서 매우 소극적이었음을 반성해야 한다. 이제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맺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세계평화의 초석이 될 것이고, 남북한에 대해서는 서로 공존번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전쟁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원치 않는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대립, 갈등, 긴장의 분단체제가 유지되어야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국가적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세력일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보수우파 정치인들과 그 아류들이다. 이들은 안보 논리와 반공을 국시처럼 여기며 북한과의 대립, 긴장, 갈등 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성하기까지 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미국의 네오콘 정치인들과 군산복합체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세계정세의 안정과 평화, 신자유주의의 경제성장을 위해서 미국이 경찰국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고, 중동문제나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세계 도처의 국제 분쟁에 대해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는 간과할 수 없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일본의 정치, 경제, 교육, 법률 등 국가조직이 전쟁을 할 수 있도록 일본 헌법 9조의 전쟁포기 조항을 변경하고,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국가적 제반 사항이 군사에 종속되어야 함을 당연히 여기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 ‘평화를 만드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태복음 5:9)고 말씀하셨다. 한국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스스로를 고백한다면,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파트너로 해서 남북한 간에 평화를 만드는 일에 다각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 시점에 평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일로써 한국교회가 북한에 나무심기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황폐한 북한 전역에 나무를 심는 것은 첫째는 북한 주민들의 삭막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둘째는 방수림의 역할을 하는 숲으로 조성되면, 홍수를 막아서 농산물의 증진을 도와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셋째는 좁은 한반도 지역의 방치된 환경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넷째는 기후위기 가운데 있는 인류를 살리며 탄소배출을 줄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더욱이 북한지역에 나무를 심는 한국교회의 운동과 지원활동은 유엔의 제재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김정은의 국가통치 자금이나 핵무기를 확충하는 비용으로 전환할 수 없는 강점도 있다.

현재 남한은 8개의 도와 1개의 특별자치도에 총 75개의 자치시와 82개의 자치군이 있고, 특별시와 6개 광역시에는 총 69개의 자치구가 있다. 남한 전체에 226개의 시군구 행정구역이 있는 것처럼, 북한 역시 평양 직할시와 나선, 개성, 남포 3개의 특별시와 9개의 도에 210여 개의 행정구역이 있다. 한국교회는 남한의 행정구역마다 교파를 초월한 ‘지역교회 연합회’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각 지역의 ‘교회연합회’가 북한의 행정구역 한 곳과 연결해서 나무심기를 위한 협약서를 체결하고, 묘목장의 설치나 씨앗 보내기 관련한 지원활동을 책임있게 실행하면, 한반도에는 평화공존번영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북한지역 나무심기운동’, 한국교회가 평화를 만드는 주체로서 남북의 평화공존번영을 주도하는 좋은 기회가 됨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민간역할을 다해야

남북한 각각의 정부가 정부 차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거나 못하고 있을 때, 한국교회는 민간 차원의 한 축으로서 자기 몫을 제대로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동서독 분단 시절의 독일교회로부터 배워야 한다. 독일교회는 이념이나 정부 정책에 좌우되지 않고, 복음 위에 굳건히 서서 평화를 일관되게 추구했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가 종전선언캠페인을 전개하다가 몇몇 인사들과 단체가 비판하자 곧바로 사과하고 캠페인을 멈춘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공교회의 결정을 번복함으로써 교회의 공교회성을 포기한 것이고,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선교적 책임을 방기(放棄)한 것이며, 시대를 선도하는 예언자적인 노력을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는 교계 내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에 빠지기보다는 복음 위에 서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함께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찾아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 좋은 가치를 지켜내자는 보수와 나쁜 제도를 개혁하자는 진보는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 각각은 서로를 보완하고, 서로를 필요로 한다. 새의 양 날개가 새를 온전히 날게 하는 것처럼, 보수와 진보가 서로 협력할 때, 우리 삶의 질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은 보수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아니시다. 보수나 진보 어느 특정 진영과 특정 이념을 지지하지도 않으신다. 오히려 보수나 진보에 속한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서 순종해야 하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사해동포적인 차원에서 다른 나라들의 교회와 효율적인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모든 교회는 교파와 국적을 떠나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주님의 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특정 국가의 시민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나 특정 지역이 하나님의 나라를 부정하거나 대항할 때, 모든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은 연대하여 시민불복종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세상 권력의 말을 듣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적으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 WCC 제10차 한국의 부산총회에서 세계교회는 한국교회와 연대하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을 공동으로 선언한 바 있다. 행동강령의 핵심이 북한에 대한 경제 및 금융 제제의 철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군사훈련 중단과 군사개입 중지와 군비축소,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한반도 문제개입 금지, 전 세계의 핵무기 억제 등이었는데, 이러한 행동을 주도해야 하는 한국교회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정종훈 교수(연세대학교)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종훈 교수(연세대학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