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박도식 신부, “루터의 종교개혁은 종교분열이었다”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오해 (3)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3.07.04 14:28
▲ 「Martin Luther at the Diet of Worms 1521」 ⓒhttps://www.luther.de/en/worms.html

가톨릭교회는 종교개혁을 어떻게 보는가? 박도식 신부는 “루터의 소위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그 각도와 측면이 엉뚱한 데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타락한 성직자들을 상대로 개혁을 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통교리를 자기 임의로 뜯어 고쳐놓고는 종교분열을 조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개혁이라고 하지 않고 종교분열이라고 표현합니다.”라고 말한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일부 몇몇 성직자들의 비행을 교회 전체에 연결시킨 것”이며 “가톨릭의 정통교리와는 전연 관계없는 일”이라는 것이다.(1)

‘루터’라는 인물에 대한 부정적 평가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을 정말 이렇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시대구분론에 따른다 할지라도 중세에서 근대에로 넘어가는 이런 전환을 가능하게 한 여러 사건들 가운데(이른바 지리상의 발견, 전통적인 봉건제도의 종말, 인쇄술 등)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하나가 바로 종교개혁이라는 점, 종교개혁이 독일에서만이 아니라, 영국, 스위스, 독일, 프랑스, 체코와 헝가리 등 유럽의 다수 지역에서 동시대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종교개혁이 16세기 유럽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친 것을 분명히 해준다.

종교개혁은 일부 몇몇 성직자들의 비행 때문에 시작된 것도, 또 그들의 윤리적 개혁을 지향한 사건도 아님을 보여준다. 분열된 교황청, 고위성직자들의 타락과 성직 매매, 성직중임제도, 성직자들의 궐석 제도, 성직의 세습 등 윤리적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 자체에 대한 비판도 개혁의 핵심이었다.(2)

인간 루터에 대한 박도식 신부의 평가도 부정적이다. 그는 “루터는 성인도 성자도 아닙니다. 고작 루터 선생으로 통하는 극히 평범한 인간이었고,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타락된 가톨릭의 한 신부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한다.(3) 필자가 장로교회에 속한 신학자라는 점이 다행스럽게 생각되지만, 루터에 대한 이런 평가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인간 루터가 극히 다혈적이고 장황스러운 사람이었으며, 특히 반대자들에 대해서는 참을성이 없고 빈정거리는 태도를 취했던 것은 사실이다.(4)

특히 그가 죽기 직전인 1545년에 쓴 “악마에 의해 세워진 로마 교황권에 대항하여”라는 글에서 그는 “천둥과 번개가 교황들을 때리고 지옥 불이 그들을 불사르고 역병, 매독, 간질, 괴혈병, 문둥병, 종기 등 각종 질병들이 그들을 공격하라고 저주하고 싶다.”고 가장 격렬한 어조로 가톨릭교회를 비판했다.(5) 또 그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서 나왔으며, 박신부가 지적하는 것처럼 “신성한 독신의 약속을 깨뜨리고 수녀와 결혼을 했다.”(6)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루터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그를 ‘교회의 통일을 파괴한 반란자’, ‘주님의 포도원을 짓밟은 산돼지’, ‘수도원주의의 기초를 파괴한 반항심에 가득찬 수도사’ 등으로 묘사한다.(7) 루터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19세기 말까지 가톨릭교회 역사학의 지배적인 입장이었다. 이런 부정적 평가는 주로 루터의 성품의 결함, 비정상적 심리상태에로 소급되는 것이었다.(8)

그러나 그의 인간성에 대한 평가는 그가 줄곧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는 사실과 말년에 여러 질병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하며, 루터의 ‘천재적 능력과 당시 교회의 급격한 변혁을 꿰뚫고 있던 일반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종교개혁이 가능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9)

루터의 신학에 대한 부정적 평가

루터의 신학에 대한 박신부의 평가는 더 부정적이다. 그는 루터가 신앙의 규범을 오직 성서에서 찾았고 성서의 자유해석의 문을 열어놓음으로써 가톨릭교회의 교도권을 완전히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성서해석의 자유가 개신교의 교파분열을 촉진한 것이 문제지만, ‘오직 성서’를 주장하는 개신교 안에서 성서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직책(권사, 명예직 등)이나 여러 형태의 헌금들을 허용함으로써 스스로 모순에 빠져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오직 믿음으로’라는 루터의 신학은 급기야 교회 무용론으로 평가받고, 모든 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평가된다: “낙태를 해도 괜찮고, 강간을 해도, 도둑질을 해도, 살인을 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진정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까? 말이 나왔으니 믿음만으로 구원이라면 교회에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집에서 개인적으로 믿음을 키우면 됩니다.”(10)

이런 시각은 종교개혁자들이 일종의 ‘도덕적 무정부주의’를 야기하여 그리스도교의 기본신조를 범한다고 보았고,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을 단죄한 당시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11) 그러나 루터와 다른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연구는 그들이 선행을 전적으로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은 ‘우리 편 사람들은 선행을 금지했다는 거짓 비방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루터 자신도 1520년에 ‘선행에 관한 설교’를 썼고, 1529년의 두 교리서에서는 십계명을 철저히 해석했다. 종교개혁자들은 결코 선행을 구원의 조건으로 보지는 않았으며, 그것은 오히려 조건 없이 주어진 구원의 결실이며 거기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고 보아야 한다.(12)

루터의 입장을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아무도 참회와 선행 없이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또 아무도 참회와 선행에 의하여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탁월한 그리스도인이라도 계속 불완전하고 유죄한 상태에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의존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3) 루터에 대한 가톨릭의 평가도 많이 달라졌는데, 이런 변화는 1970년 로마의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사무국장인 윌레브란즈 추기경이 루터교 세계연맹 총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루터를 신앙의 중심문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교 공동의 스승이라고 함으로써, 교황 레오 13세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부여한 존칭을 적용한데서 확인할 수 있다.(14)

미주

(1) 박도식, 『하나인 교회: 천주교와 개신교』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4, 개정초판 11쇄), 108.
(2) 후스토 L. 곤잘레스, 서영일, 『종교개혁사』 (서울: 은성, 1995), 12-13 참조; 조셉 폰타나, 김원중, 『거울에 비친 유럽』 (서울: 새물결, 1999), 112-123 참조.
(3) 박도식, Op.cit. 121.
(4) 헤이코 오버만, 이양호, 황성국 공역, 『하나님과 악마 사이의 인간 루터』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5), 441, 443, 483.
(5) 김주한, 『마르틴 루터의 삶과 신학 이야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214. 참조.
(6) 박도식, Op.cit. 113.
(7) 후스토 L. 곤잘레스, 『종교개혁사』, 23; 한스 큉, 이종한, 『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2002), 655. 참조.
(8) 가톨릭 이론가 요하네스 코크리우스는 루터의 성품의 결함이 그로 하여금 로마 가톨릭에서 등을 돌리게 했다고 주장하면서, 루터를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종교적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으며 자기 취향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로 묘사한다. 예수회 역사가 하르트만 그리자는 루터가 심리적으로 조화되어 있지 않았고, 선행에 대한 비정상적인 증오감에 시달렸으며, ‘오직 믿음으로만’이라는 교리는 루터의 통제할 수 없는 호색과 주벽과 탐욕을 신학적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참조: 데이비드 슈타인메츠, “종교개혁”,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학 사전’(II)』 (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02), 1261-1262.
(9) 칼 호이시, 손규태, 『세계교회사』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2004), 410.
(10) 박도식, Op.cit. 117.
(11) 서강대학교신학연구소, 한국신학연구소, 『새로운 공동신앙 고백서 - 하나인 믿음』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79), 541. 참조.
(12) Ibid., 541.
(13) Ibid., 542.
(14) Ibid., 630.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