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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퀴어나라, 너와 나를 구별하지 않는 나라큰아이와 즐겼던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돌아보며
정리연 | 승인 2023.07.06 00:17
▲ 차별과 혐오, 배제가 사라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펼쳐진 을지로 일대는 그야말로 자긍심과 사랑이 넘쳤고 해방의 장소였다. ⓒ정리연

올해로 24회를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주최 측은 ‘피어나라, 퀴어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다. 행사를 주최한 서울퀴어문화축제 양선우 조직위원장은 “우리는 성소수자가 사람답게, 인간답게, 내가 나인 채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그런 세상을 꿈꾸기 때문에” 이렇게 슬로건을 결정했다고 했다.

을지로퀴어나라

“엄마, 어디 가?”
거울 앞에서 이거 입었다가 저거 입었다가, 패션쇼 하는 나를 보고 큰아이가 물었다. 혼자 가기 심심했던 나는
“오늘 퀴어축제가 있거든~ 같이 갈래? 니가 좋아할 만한 예쁜 굿즈도 무지 많아!”라는 말로 아이를 유혹했다. 날이 더워서 집에 있으려고 했던 아이는 결국, ‘굿즈’에 마음을 뺏겨서 동행하기로 했다. 나는 빨간색 미니원피스에 무지개 팔찌와 머리띠로 평소보다 과한 멋을 부렸고, 사춘기인 아이는 그냥, 평소처럼 무채색으로(흐흐).

서울 퀴어퍼레이드는 2015년부터 작년까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개최됐지만, 올해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를 불허했다. 퀴어 집행위원회 측은 “서울광장 사용이 불허됐을 때 공원이나 경기장에서 행사를 진행해도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자긍심 행진의 의미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므로 을지로 일대에서 개최하겠다고 했다.

이 뉴스를 접했을 때 작년 암스테르담에서 봤던 풍경이 떠올랐다. 운하를 중심으로 도시를 걸으며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도중이었다. 창문 가에 무지개 깃발이 꽂혀 있거나 무지개 천을 늘어뜨린 상점과 주택이 많이 보였다. 큰 건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지개색으로 페인트칠한 건물도 있었는데, 너의 그대로를 사랑해, 니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어, 라는 문구가 적혀 있기도 했다. 국립미술관 외벽에도 커다란 무지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알고 보니, 이십여 일 후에 퀴어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골목의 작은 기념품 가게에는 다양하면서도 예쁜 굿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거리에서도 동성 연인을 자주 마주쳤다. 주변에서는 전혀 거리낌도, 이상한 시선도 주지 않았고, 도시 전체가 퀴어축제를 환영하면서 준비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특별할 것도 없이 그냥 여러 축제 중 하나일 뿐이라는 듯, 즐겁게 즐기자는 듯. 그런 모습이 떠오르면서 우리나라는 언제쯤 아니, 과연 그럴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했다.

을지로역에 도착해서 지상으로 올라가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아스팔트 열기에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반대와 혐오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모이지 않았나! 거리를 누비는 수많은 사람의 표정은 ‘신난다!’ 최고치였다.

우리도 곳곳을 둘러보며 금세 분위기에 푹 빠졌다. 무지개 깃발이 여기저기 펄럭이고 자기 개성을 한껏 살려서 차려입은 사람들(에 비하니 나는 너무 평범했다), 동성 연인과 이성 연인이 어우러져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 부스마다 알록달록 예쁜 굿즈와 이벤트가 가득했다. 퀴어인지 아닌지, 나이가 몇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구별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너와 내가 존재 자체로 평등한 곳, 퀴어나라는 그런 나라였다.

▲ 부스 곳곳에는 굿즈들로 넘쳐났다. ⓒ정리연

연대하는 마음들

“오늘, 1년에 딱 한 번인 평등의 축제에서, 우리 안에 감춰둔 유쾌함을 최대한 꺼내 보십시오. 이러한 유쾌한 에너지를 모아 혐오와 차별을 함께 없애나갑시다. 어느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 평등한 삶을 함께 누립시다. 혐오와 차별을 넘어, 모두가 마주 볼 수 있는 그날까지.” - 염형국(국가인권위원회 차별 시정 국장)

아이와 나는 걸으며 부스를 구경했다. 정말 다양한 기관과 단체에서 함께 하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다들 센스가 좋은지, 부스를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우리 가방은 책, 엽서, 스티커 등으로 꽉꽉 채워지고 있었다. 튀는 게 싫다던 아이의 얼굴에는 무지개 페인팅이 그려졌고 팔에도 무지개 리본이 예쁘게 묶여 있었다.

어디를 가든지 환대받는 기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너와 내가 평등한 곳이었다. 소수라는, 나랑 뭔가 다르다는 이유로 불평등하고 차별 받고 있는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이 평등이 실현되는 퀴어축제,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 

걷다가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소리가 나왔다. 나랑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살기에, 평소 선망하던 분들, 조용히 기도만 하실 것만 같았던 수녀님들과 스님들이 너무 앙증맞은 무지개 머리띠를 착용한 채! 발랄한 모습으로 부스 앞에 서서 찾아온 이들에게 무지개 스티커를 붙여 주고 계셨다. 너무 귀여워서 또다시 반하고 말았다.

“더워서 힘들지?”
“덥기는 한데, 괜찮아! 근데 엄마, 퀴어축제라는 게 인터넷 정보랑 많이 다르네. 이상한 게 아니야. 재밌어!”

평소 같았으면, 덥다고 진즉, 짜증모드였을텐데 웬일이람! 아이는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어딘가에서 쉬고 싶었다. ‘아, 얼굴에 기미가 더 늘겠네. 피부 다 타겠네’ 속으로 걱정하면서. 하지만 그림에 관심이 많은 아이가 눈을 반짝이면서 이곳저곳,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 더 걷자! 놀자!

웅성웅성. 뭐지?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하고 있었다. ‘무지개축복단’의 축복식이었다. 무지개색 스톨을 목에 걸고 ‘축복기도로 함께합니다’라는 피켓을 든 개신교 목회자들이 원하는 이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주었다. 곳곳을 누비며 차별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목회자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커플을 위한 기도’, ‘싱글을 위한 기도’, ‘일상을 위한 기도’, ‘반려동물을 위한 기도’, ‘애착 물건을 통한 기도’ 등 기도문 내용도 다양했다. 그중에서 가장 끌렸던 건 반려동물을 위한 기도! 내년엔 우리 댕댕이를 데리고 와서 축복기도를 받자고, 아이와 약속했다.

“무지갯빛 사랑인 하느님, 이 시간 그 사랑과 은총에 의지해 서로에게 놀라운 선물이자 다르기에 축복이 되며 매일의 용기와 기도로 서로를 내어 준 OOO 님과 OOO 님의 멋진 동행을 축복하나이다. ... 서로에게 숨 쉴 틈과 디딤돌이 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그 누구보다 OOO 님과 OOO 님을 사랑하며 편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나이다.” (무지개축복단 ‘커플을 위한 축복 기도’ 중에서)

불교,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여러 부스를 마련하고 있었다. 우리가 축제장에 도착했을 때는 퀴어퍼레이드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라서 조금씩 정리하는 분위기였지만, 여전히 열기는 가득했다. 자신의 종교 내에서 혹은 종교가 없더라도 상처받고 지친 마음에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성소수자들이 찾아와서 기도와 평안을 받고 있었다.

진정한 종교가 이런 거 아닐까? 사회에서 온갖 구정물에 휩쓸리고 혐오 발언으로 총질 당해도 내가 믿는 종교 안에서는 보호받고 안전하다는 평온함을 누리는 것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이리 오라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겠다고.

무지개예수·성공회무지개네트워크·여름교회 부스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8)가 적힌 카드를 나눠주고 있었다. 우리는 카드를 받아 들고 ‘너는 하나님 작품’, ‘난 네가 자랑스러워’ 문구가 적힌 판에 무지개색 실을 연결하는 놀이(?)를 했다. 각각의 실이 자기만의 빛깔을 내면서도 다른 색깔의 실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마치, 너도 이렇게 살아라, 너의 개성대로 살면서 다른 이와 어우러지면서, 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로뎀나무그늘교회·무지개신학교·큐앤에이 부스에서는 배지, 무지개 컵. 포스터 등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무지개예수가 2017년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성소수자 기독인 사례집’을 구하고 싶었는데, 준비한 수량이 모두 소진되고 없어서 아쉬웠다. 또 만들어주실 거죠?

“제가 믿는 하나님은 오히려 퀴어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반대하실 것 같아요. 하나님은 성경에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좋다’고 하셨어요. 왜 태어났냐고 묻지 않으셨죠. 좋다는 건 ‘최고의 아름다움’, ‘충만하다’라는 표현이에요. 어떻게 감히 누가 누군가를 단죄할 수 있나요?” 한 기독교인 참가자의 말이다. 비기독교인들은 많은 기독교인이 성소수자를 반대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혐오와 편견 없이, 특별히 다르다고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너와 나로 여기는 기독교인 역시 많다. 여기에 이렇게 모이지 않았나.

하지만 무대에 오른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한국교회가 차별과 혐오를 버리고 사랑과 환대와 평화의 공동체가 될 때까지 저는 수십 번의 재판을 받게 될지라도, 항상 여러분 곁에 함께하겠다.”는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의 발언과 대조적으로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집회가 반대편에서 열리고 있었다. 찬송가를 엄청 크게 틀어 놓고. 그러는 그들이 오히려 혐오스럽고 짠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느끼기에 그러는 걸까? 저런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동성애를 죄라고 하니까, 성소수자들은 교회 안에서 상처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거겠지.

▲ 자신의 자녀들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들과 함께 하는 성소수자 부모모임도 퀴어문화축제에 함께 했다. ⓒ정리연

날아라, 무지개 망토!

“응. 내 자식 퀴어” 성소수자부모들이 들고 있던 피켓이 아직도 잔상이 남는다. 혐오 세력 앞에서 자녀를 위해 “그런데 어쩔래?”라는 태도로 당당하게 나서는 부모님. 사랑만으로도 가능할까?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질문 하나가 늘 맴돌고 있다. “어느 날 아이 중 하나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난 어떻게 반응할까?” 지금은 당연히 “~~~~하니까 너는 소중하고, 네가 어떤 사람이든 그대로를 사랑해!”라고 얘기하면서 아이를 안아줘야지, 특별히 달라질 건 없어, 생각하지만 막상 그날이 온다면?

아이들에게도 가끔 이야기하곤 한다. 혹시 너희가 성정체성이 혼란스럽거나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관심이 가게 되면 엄마에게 꼭, 이야기해 달라고. 엄청 열린 엄마인 것처럼 말했지만, 실은 자신이 없다. 그래서인지 관련 다큐나 책을 찾아서 보게 된다. 그럴수록 성소수자를 둔 부모님들이 정말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럽다. 옆에 있는 아이의 손을 한 번 더 꽉 잡아본다. 네가 어떤 존재이든 언제나 ‘너’인 것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예수님은 매력적이거나 아름다운 것을 쫓아가신 적이 없다. 언제나 천한 것, 소외받는 것을 향하셨다. 사회에서 가장 멸시받던 이들,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하셨고 ‘사랑’을 말씀하셨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예수님, 고통스러워하는 이의 곁에서 아파하면서 밤새 함께 있어 주시는 예수님, 그런 예수님이기에 퀴어축제에도 함께 하셨을 거다. 저기, 무지개 망토를 두르고, 무지개 머리띠를 착용하고 성소수자들과 함께 웃고 있는 예수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예수님을 따르는 한국교회가 이들과 함께해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퀴어축제는 평등한,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는 인권의 현장이었다. 35도 가까이 되는 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웃었고, 걸었고, 노래 불렀고, 응원했다. 늘 숨어 있던, 혐오와 차별 때문에 투명 인간으로 살아야 했던 성소수자와 가족들이 밖으로 나왔다. 무겁고 답답한 투명 망토를 벗어 던지고, 찬란한 무지개 망토를 걸쳐 입고 해방의 자유를 맘껏 누려도 좋을 날이었다. 다양함 속에서도 개성과 존재감을 오롯이 누릴 수 있는 날이었다. 오늘을 지나 내일도 그 다음날도 무지개 망토가 펄럭이기를, 퀴어가 눈부시게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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