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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종된 자유인(출19:1-6, 벧전2:4-10, 마16:13-20)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07.30 02:32
▲ Gerard Hoet, 「Moses speaks with God」 (1728) ⓒWikimediaCommons

1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로 나옵니다. 그들은 이제 시내 산이 있는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율법을 받고 십계명 돌판을 받게 됩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이 장면 외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어주시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창세기의 수많은 족장들과도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도 출애굽 시절뿐만 아니라, 이후의 왕정시대 때도 끊임없이 언약을 새롭게 맺어 주십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과 백성의 언약은 특정한 시기에 특별하게 맺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만세전에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일입니다. 백성들이 그 언약에 동의하거나 찬성하느냐 와는 아무 상관없이 이미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계획하시고 일방적으로 실행하시는 일입니다. 그 계획을 끊임없이 상기시기시고, 그 일에 당신의 백성들을 동참시키고 계실 뿐입니다.

시내 산으로 올라간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이미 보았다. 나의 이적을 보았고 나의 능력을 보았고 너희들을 향한 나의 사랑을 보았다. 다만 너희들이 할 일은, 그런 내가 너희들에게 약속하는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 말씀과 함께 십계명 돌판을 만들어 주시고, 온갖 율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의아해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위대하고 전능하신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보았는데,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하나님을 끝까지 믿지 못한 것일까?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들을 보았는데, 그런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경험했는데, 왜 하나님을 떠났던 것일까? 오늘날처럼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하시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믿음이 흔들렸던 것일까?’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가장 큰 주제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내 놓아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봐라.’ 그런 주장 앞에 우리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증거만을 제시하고 있으니 서로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이 과연 존재하시는가?’ 하는 내면의 회의감과 의심이 끝없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출애굽 때에 보여주셨던 것 같은, 하나님의 이적과 권능 같은 확실한 증거가 우리 앞에 있다면, 이런 의심은 금세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증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모든 이적과 권능으로 목격하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나버렸다는 사실은 우리를 매우 놀라게 합니다.

2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표현하는 말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 위의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보금자리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은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끝없이 전진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전진, ‘끝없는 전진’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합니다. 사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본능적으로 바라는 행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 되었든 자기에게 주어진 복을 소유하고 누리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 복이 올바른 정의로운 복인지 아니면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인지는 둘째 치고, 얻게 된 그 복을 내가 지금 누려야 복인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면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를 위한 끝없는 전진’이라는 사명은 우리를 그 복에 안주하지 못하게 합니다. 뭐라도 좀 누려볼라치면, 버리고 떠나라고 합니다. 안주하고 눌러앉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주시고, 구원을 주시고, 진리를 자유를 선포하시고는 막상 그 복을 얻은 사람에게 ‘돌아가서 그 복을 누리고 잘 살아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 복은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고 나누어 주고, 너는 나를 따라와라’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혹스럽고 원망스럽습니다. 이 복이 과연 내 복인가? 나는 복을 받은 사람인가? 구경만 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은 나에게 복을 주신 것인가? 복을 구경만 시켜 주시는 것인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과연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충만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는 그 복이 나에게는 오지 않고, 나를 비켜가고, 나를 지나쳐간다고 느껴지지는 않으십니까? 복은 충만하게 주어지지는 않으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신앙인이라고 수많은 의무와 억압이 짐 지워진다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3

그런 똑같은 당혹감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인간으로서 원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원하시는 것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하늘과 인간의 나라인 땅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 곳 땅에서 인간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 삶이 너무나 고되고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으면 우리는 이 곳 땅을 떠나서 하나님의 나라인 하늘로 들어가 살게 되겠지.’ 그리고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이 땅을 떠날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을 떠나 하늘에 들어가 버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가 이 땅을 떠나서 하나님 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가 여전히 그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그네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늘로 올라가버린 사람이 아니라, 아직 세상 속에 남아있는 사람입니다. 하늘에 속해 있으나,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그래서 하늘로 완전히 올라간 사람도 아니고, 이 땅에 완전히 속해 있는 사람도 아닌, 하늘과 땅 사이의 중간적인 운명,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우리의 운명입니다.

오늘 베드로는 여러 교회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는 것 아닙니까? 그 소망을 붙들고 살기로 한 것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얻어 보자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인 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일부러 이 땅에서 버려진 돌 취급받는 예수를 선택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그리스도인이 된 여러분이야말로 택함 받은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베드로의 피 끓는 호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 마음대로 사용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해 달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는 것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 곁에 있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세상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말의 뜻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거룩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우리가 특별하고 대단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위대함이고 전능함이지만, 인간이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아무런 위대함도 없고 뛰어남도 없는데 단지 하나님께서 구별해 주신 것입니다. 별것도 아닌 우리를 구별해서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속해서 세상과 똑같이 아무런 구별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에 의해서 세상 속에 들어와 살고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 뜻대로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거룩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을 통해서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나가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그 뜻을 전하십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를 연결지어주는 중간적인 존재입니다. 세상에 속하지도 않고 하늘에 속하지도 않는 존재입니다. 백성과는 분명히 구별되어 하나님의 뜻을 간직한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처럼 하늘에 계신 존재도 아닙니다.

시내 산에서 모세를 불러서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이다.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다. 너희는 내가 선택한 나의 소유이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해서 살아갈 수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하늘나라로 들어올 수도 없다. 이 땅에 속해서 내 뜻을 이 땅에 펼치는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 땅에서 그 열매를 얻고 누릴 수는 없는 하늘에 속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겠느냐?’ 시내 산의 말씀은 사실 이런 엄청난 결단을 요구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혹스럽습니다. 우리는 이 땅을 떠나서 하늘로 완전히 올라가 모든 고통 없고 아픔 없고 슬픔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 많고 아픔 많고 슬픔 많은 이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라고 말하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려면 이 땅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서 살지만 땅의 행복은 누리지 말라 하십니다. 그런 행복이 아닌 하늘의 행복을 누리라 하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구원받았으나, 하나님의 복을 받았으나, 정작 이 땅에서 아무런 복된 모습도 누릴 수 없는 운명, 그것이 우리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어도,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어도, 이 땅에서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이 땅에서 그 영광을 누릴 수 없으니 차라리, 헛된 복이라도 이 땅에서의 복을 한번 누려보자’ 하고 하나님을 떠납니다.

4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말하더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 중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의 물음은 두 가지입니다. 똑같은 물음이 아닙니다. ‘세상이 인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과 ‘너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 물음에서 ‘세상’과 ‘인자’는 객관적인 관계입니다. 서로 아무 상관없는 관계입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서로를 바라보면서 말하면 됩니다. ‘엘리야 같은 예언자구나’ 하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구세주이고 그리스도라고 하더라도, 그 예수님을 멀찍이서 관찰하는 한,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나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세상과 인자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인자’가, ‘나’와 ‘너’로 변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 세상에 속한 ‘내’가 저 하늘에 속한 ‘당신’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 세상에 속해있던 ‘당신’이 친히 ‘나’에게 오셔서 말 걸어 주시는 것입니다. ‘너에게 나는 누구냐? 너에게 나는 어떤 의미냐? 너에게 나는 어떤 존재냐?’ 하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너의 구원자가 되어 줄 것인데, 너는 나의 백성이 되겠느냐? 나는 이미 너를 구원했는데, 너는 나와 상관없는 삶을 살 것이냐? 아니면 내 백성이 되어서 내 제자가 되어서 나와 하나 된 삶을 살아가겠느냐? 내 운명을 함께 짊어질 수 있겠느냐?

베드로의 대답은 예수님의 물음에 대한 담대한 결단입니다. “당신은 나와 상관없는 예언자가 아니라, 나의 구원자이고 나의 그리스도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갈 내가 소망하고 바라볼 하늘의 진리입니다. 이 땅을 벗어나려 하지 않고 이 땅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서, 당신께서 가르쳐주시는 그 진리를 이 땅에 이루어갈 수 있는 토대가 되겠습니다. 이 땅에서 말하는 세상진리에 휘둘리지 않고, 하늘의 진리를 이 땅으로 가지고 와 이 땅에서 이루겠습니다. 하나님 뜻을 이 땅에 이룰 수 있는 반석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속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 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존재입니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운명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묶이지 아니한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과 철저히 구별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한 자유인, 그러나 하나님께 온전히 얽매인 하나님의 종!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하늘의 백성, 그러나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야만 하는 이 땅의 사람!

우리는 이 당혹스러운 운명을 담대히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그 운명을 담대히 살아갈 능력을 은혜로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소유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 너희는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가 이 땅에 세운 나의 제사장이다.” 이 운명을 감사함으로 담대히 살아내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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