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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그 자리빛과 소금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역할(마태복음 5:13~16; 에베소서 5:8~14)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 승인 2023.08.02 03:14

소금과 빛의 비유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씀입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거의 무의식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입에서 튀어나올 수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만큼 어떤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에게 너무 쉽게 다가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무 익숙해 자명하게 다가오는 이 말씀은 그 문맥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산상설교와 주기도문을 포함하고 있는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집약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산상설교에 이어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신 비유가 바로 본문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직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일깨워 줍니다. 그것은 곧 소금의 역할과 빛의 역할입니다.

소금은 맛을 내는 원천이며 썩지 않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부제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쉽게 연상할 수 있습니다. 맛이 없는 세상에 맛을 더하는 역할입니다. 그것은 의미를 더하는 일이요 재미를 더하는 일입니다. 삶의 의미와 기쁨을 더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 역할은 세상을 부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불의한 세상을 정의롭게 만드는 일입니다. 요컨대 소금의 비유는 세상에 의미를 더하고 세상이 썩지 않도록 하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일깨워 줍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소금의 비유(마가 9:50, 누가 14:34~35)와 빛의 비유(마가 4:21, 누가 8:16, 11:33)를 각기 다른 문맥에서 전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은 연이어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자가 팔레스타인 지역의 관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사해에서 나오는 소금을 이용해 화롯불을 지피는 데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소금의 비유가 자연스럽게 빛의 비유로 연결되는 것은 그 관습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직을 빛으로 비유하고 있는 말씀은 그 의미가 더더욱 분명합니다. 본문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빛의 의미를 제법 장황하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산 위에 세워진 마을이 숨길 수 없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산 위에 세워진 도성과 빛의 비유가 연결된 것은 도마복음(32~32)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자명한 진리와 그 진리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빛이 드러내는 세계의 명료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 등불을 예로 들며, 그것을 됫박 아래 감추지 않고 등경 위에 두어 온 집안을 환히 밝히는 이치를 말씀하십니다. 빛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그와 같은 장황한 설명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의미를 강조하는 뜻에서 설명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빛이란 한마디로 생명의 근원입니다. 빛은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천이며, 사물의 실체를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사리분별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는 원천입니다. 이 간결한 비유 역시 그리스도인의 제자직은 곧 빛의 역할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이 분명한 말씀의 의미에 어떤 해석이 더 필요할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분명한 말씀으로 우리를 일깨워주십니다. 한마디로 말해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꼭 있어야만 하는 존재, 어떤 자리에서든 꼭 있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방식입니다. 존재 그 자체로 소금과 같은 역할,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에서 더욱 놀라운 진실은,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제자들에게서 발하는 그 빛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곧 사람 가운데서 발하는 빛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뜻입니다.

에베소서의 말씀 역시 별다른 해석을 덧붙이지 않고도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빛의 역할을 새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은 그저 일반적 교훈으로서 빛의 역할을 상기하기보다는 특수한 권면으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기 삶의 진솔한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주의 빛에 비추어 자기 삶의 실상을 온전하게 파악함으로써 진정으로 주의 빛 가운데서 진리와 생명의 충만함을 누리라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의 본문말씀은 어둠과 빛을 대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사람들이 어둠이었다면, 그리스도인이 된 후 빛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빛으로서,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다”(6:9). 사도 바울의 서신은 ‘성령의 열매’라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인이 이뤄야 할 구체적 덕목들을 말하고 있습니다(갈라 5:22). ‘빛의 열매’라는 말 역시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훨씬 더 실감나는 표현입니다. 빛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소금으로 빛으로 의미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리스도인 ⓒGetty Images

그 빛의 열매로서 선과 의와 진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구체적 덕목입니다. 그 열매는 예언자 미가가 선포한 말씀과 그대로 상응합니다.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두 가지 덕목의 순서가 바뀌기는 하였지만, 에베소서의 본문말씀에서 말하는 덕목과 일치합니다. ‘선’은 이웃에게 사랑을 행하는 것을 말하며, ‘의’는 각자에게 정당한 몫을 부여하고 각기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올바름을 말하며, ‘진실’은 그 두 가지 덕목을 완성하는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삶을 저마다의 삶 가운데서 실현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둠 가운데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와 같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삶을 뜻합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은 열매 없는 어둠의 삶의 실상에 대해 다시 힘껏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여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십시오. 그들이 몰래 하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빛이 폭로하면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에베 5:11~13).

이 말씀의 의미 또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실감합니다. 신설하는 고속도로 나들목이 어째서 예정과 달리 특정지역으로 변경되었을까요? 검찰의 특수활동비 가운데 아무런 증빙자료도 없는 것도 상당액이고 있는 영수증마저 어째서 상호가 가려진 채 복사되었을까요?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모를까요? 권력자들의 카르텔에서 어떤 음험한 짓들이 벌여지고 있는지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열매 없는 어둠의 일은 밝은 빛 안에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어둠 가운데 벌어지는 부끄러운 일을 환히 드러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분별력을 갖고 살아가게 합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을 따르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곧 빛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미처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분별하게 하고 세상이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길잡이 역할을 맡는 것을 뜻합니다. 에베소서의 본문말씀은 극적으로 선포합니다.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서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어 주실 것이다”(5:14)

그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아마도 초기 교회 안에서 널리 통용된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에베소서의 저자는 그리스도인을 일깨웁니다. 말씀의 의미는, 이미 빛이 비추고 있으나 잠든 상태와 같이 그 빛에 의해 드러난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분별력을 지닐 뿐 아니라, 나아가 사람들로 하여금 분별력을 지닐 수 있도록 일깨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부패하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살맛나게 만드는 일, 진실을 밝혀 사람들이 그 진실을 따라 살아가게 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요?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다”(에베 5:9) 선으로 사랑을 나누고, 공평한 정의를 이루며, 이로써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고 그 진리 앞에 모든 사람이 진실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몫입니다.

그 길을 따르는 것이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밝은 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그 빛을 받아들이고 그 빛을 발하는 사람은 분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선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를까요? 공평한 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존재를 존중하는 입장에 서면 어떤 것이 정의로운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상대를 없는 존재인 것처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알 수 없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입장에 서면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이루고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은 온전한 빛 가운데서 그 실체를 드러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동시에 맛을 내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강대강 대결의 논리와 서로를 증오하고 분노를 부추기는 사회 가운데서 경험하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경험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꿈은 우리만의 구원을 추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살맛나는 사회, 진정으로 밝은 빛으로 가득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서 그 진실을 깨닫고 삶을 가다듬기를 바랍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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