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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것은 ‘오해의 해소’가 아닙니다”이훈삼 목사님의 오해의 해소에 대한 글을 읽고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 승인 2023.08.10 02:29
▲ 지난 8월3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진행된 NCCK 총회 개최 장소에서 청년들이 김종생 목사의 총무 선출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홍인식

이훈삼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목사님과 함께 기장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목사입니다. 교단 총회 파송 사회선교사로, 주로 성소수자/장애인 분야에 관한 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NCCK 총무로 김종생 목사가 선출된 이후 목사님이 페이스북에 올리신 두 편의 글을 읽었습니다. 목사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를 중심으로 김종생 총무 선출에 대한 반대 의견이 거세게 일어났었지요. 이로 인해 총무 선출은 끝났지만 에큐메니컬 운동 내에 이 선출 결정이 자본의 힘에 굴복한 것이라는 강한 비토의 분위기가 남아 운동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심각한 요인이 될 것이라는 걱정을 쓰신 글에 담으신 것으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왜 이 선출 결정에 찬성했는지, 그런 결정이 불가피한 현재의 NCCK의 구조적 요인이 무엇인지 등을 설명함으로써 위에 언급한 강한 비토의 분위기의 근원에 자리잡은 오해를 해소하고, 그 반대 운동을 주도한 여성, 청년, 현장(지역)활동가들이 앞으로도 에큐메니컬 운동 내에서 활동할 만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충정을 글에 담으신 것으로 읽었습니다.

저는 NCCK의 회원단체이기도 한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에서 기관목사 사역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말씀하신 NCCK의 구조적 요인에 대한 설명에 대해 다른 분들보다는 아마 조금 더 납득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쓰신 글에서 몇 번이고 강조하신 대로, 찬성한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대형교회의 자본 앞에 굴복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김종생 총무 선출에 찬성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목사님, 그렇게 이해를 하더라도 목사님의 글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김종생 총무 선출 결정을 두고 대형교회의 자본 앞에 굴복했다 혹은 아닐 수도 있다라고 평가한다면 그런 평가의 기본 대상이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그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러저러한 동기가 평가의 대상일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런 결정이 났다는 결과가 평가의 대상일 수 있을까요.

에큐메니컬 운동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만, 아마도 최소한 이런 점에는 다수가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통해 교회의 보편성을 구축하고자 하는 가톨릭과는 달리, 교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교회의 보편성을 구축하고자 하는 운동이라는 점 말입니다. 그렇게 구축된 교회의 보편성은 교회 구성원들의 사적인 이해관계를 앞세워 세계의 보편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게의 보편성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점도 당연한 것일 테구요.

그런데 김종생 목사의 그 동안의 활동은 이 교회의 보편성 구축이란 측면에서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사님이 쓰신 것과는 조금 다르게, 김종생 목사가 명성교회 세습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활동에 관여한 정황이 보도되었던 적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정황이 없다고 하더라도 김종생 목사가 명성교회라는, 교회의 보편성과는 정반대되는 교회 사유화의 길을 걷고 있는 교회의 외곽조직의 활동을 주로 해 온 분이라는 점과 이번 총무 입후보가 주로 그런 활동에 근거해서 가능한 점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명성교회가 NCCK의 부채를 갚아 주기로 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김종생 목사의 총무 선출은 교회의 보편성을 해치는 활동과 영향력을 쭉 끼쳐 온 명성교회라는 특정 교회의 영향 안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입후보한 인사를 NCCK 총무로 선출했다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결과를 두고 대형교회의 자본에 굴복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불가피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 결과를 낳은 찬성표에 이훈삼 목사님과 같은 선의가 몇 표나 들어 있든지 간에 말입니다.

2. 목사님의 글에는 이번 총무 선출 결정에 반대운동을 펼친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들이 앞으로도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확고합니다. 그리고 그 전제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여기서 짚어 볼 지점이 몇 개 있습니다.

우선 목사님이 말씀하신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의 상당수, 특히 이 영역들 모두에서 청년 활동가들의 상당수의 활동은 사실 기존의 에큐메니컬 운동, 특히 NCCK라는 교단 협의 기구 중심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영역 바깥에서 자생적으로 생겼고 지금도 자생적인 동력으로 움직이는 활동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 모든 활동가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활동이 교회의 보편성을 지향하는 활동이기도 하다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활동에 저런 활동이야말로 교회라는 조직이 보편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목사님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인/비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기에 그들의 활동이 “에큐메니컬 운동”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신 NCCK의 구조적 요인과 총무 선출 절차에 관한 설명들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그 설명들은 목사님의 찬성 결정의 선의를 이해하는 데에는 쓸모가 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현재의 NCCK의 구조적 요인 때문에 김종생 목사 같은 인사를 총무로 선출할 수밖에 없다면 바로 그런 구조적 요인 때문에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와의 거리가 더욱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번 총무 선출이 보여준 셈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3. 목사님이 쓰신 글에서는 이번 총무 선출에 관련한 “오해의 해소”가 이후 에큐메니컬 운동의 전개를 위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러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의는 알겠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번 총무 선출 결정은 그 결정에 찬성하는 데 이러이러한 동기가 작용했다는 점에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결정이 내려진 결과의 의미와 영향력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신 “오해의 해소”는 동기에 대한 해명일 수는 있어도 결과에 대한 설명일 수는 없다는 점을 일단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해의 해소”이든 무엇이든 간에 이번 총무 선출 이후의 상황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에 무엇인가 호전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는 점입니다.

목사님의 글에서 “오해의 해소”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적시하지 않으셨지만, “오해의 해소”라고 하신 이상 그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걸 “해소”해야 하는 것일 테니, 자연히 그 “해소”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번 총무 선출 결정에 반대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여성, 청년, 현장(지역)활동가”들이 대체 이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왜 더 해야 하겠습니까. 그들은 자기의 자생적인 활동을 충실히 하고 있고, 그 자생적인 활동이 앞에서 보았듯이 “에큐메니컬 운동”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을요. 그런 자생적인 “에큐메니컬 운동”과 NCCK가 괴리되어 있다는 징후가 이번 총무 선출 결정이라면, 해소되어야 할 것은 ‘괴리’이지 ‘오해’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 ‘괴리’를 해소하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 '괴리'를 만들어 온 사람들일 테구요.

방금까지는 ‘괴리’라고만 표현했지만 사실 괴리에 그치지 않는 배제까지도 존재했던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문제를 두고 예장 통합과 감리교가 NCCK에 걸어온 트집에 대응한답시고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이홍정 직전 NCCK 총무가 두 교단이 문제제기하는 그런 활동은 NCCK가 아니라 NCCK 인권센터가 한 거다라는 식으로 방패막이 삼았던 일이 대표적인 배제의 예이겠죠.

4. 목사님. 앞에서 계속 말씀드렸듯이 저는 목사님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번 NCCK 총무 선출로 인해 격한 분위기가 빚어진 지금은, 목사님의 선의는 이미 지나간 자신의 행동을 해명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그 격한 분위기의 근본 원인이 된 NCCK와 에큐메니컬 운동의 난맥상을 극복하기 위해 목사님과 같은, NCCK 총무 선출에 참여할 수 있는 ‘소수’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를 강구하는 데에 쓰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강구하기가 쉽지 않으시다면, 하다 못해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들의 목소리에 전폭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라도 해 주시는 것이 목사님의 선의에 더 걸맞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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