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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운동의 발전을 위한 제언황용연 목사님에 대한 두 번째 답글
이훈삼 목사(주민교회/NCCK실행위‧신학위부위원 | 승인 2023.08.21 00:02
▲ 지난 8월3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열린 NCCK 총회에서 선출된 김종생 목사가 총무 취임식에서 선서를 준비하고 있다. ⓒ홍인식

1. 언론에 글을 쓰는 것이 훨씬 조심스러울 텐데, 현재 NCCK와 에큐메니칼 선교의 현실과 과제를 문제 제기하여 고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를 실현하는데 함께 고민하고 기도해야 할 내용을 거칠게나마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황 목사님의 바람을 읽습니다.

2. 제가 NCCK와 에큐메니칼의 발전을 위해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⑴ NCCK 실행위원들과 총회 대의원들이 명성교회가 부채를 갚아줄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으로 찬성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각 교단과 연합기관을 대표하는 분들을 너무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⑵ NCCK는 총무 선출 과정에 나름대로 민주적 토의과정을 거쳐서 결정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반대한 분들의 요구만큼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이전의 총무 선출 과정과 비교하면 인선위원회‧실행위원회‧임시총회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토의‧검토했다고 봅니다. 그러니 충분하진 않았지만 비민주적이라거나 토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했다는 말은 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NCCK 의결 기구가 돈에 굴복하고 민주성을 상실했다는 사실 아닌 소문이 퍼지면 이후 에큐메니칼 선교에 부정적으로 기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나아가 제가 이해를 구하는 것은 NCCK의 협의회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NCCK와 같이 총무 중심제인 기장 교단은 후보자가 총회 선관위에 직접 등록하고 운동과 검증 과정을 거쳐 총회의 투표로 선출합니다. NCCK는 기장과 같이 총무 중심제이지만 선출 과정은 좀 다릅니다.

특히 이번같이 특별한 경우에는 사전에 어느 교단이 후보를 낼 것인지 미리 합의했고, 그 합의에 따라 해당 교단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NCCK에 후보를 추천했습니다. 이러한 경우 회원 교단이 추천한 후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다수가 판단한 것입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교단이나 모두 권위 체계로 움직이는 조직이기에 자신의 권위가 부정당할 경우 회원으로서의 책임과 권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은 비단 이번의 예장뿐 아니라 감리교나 기장이나 모든 다른 회원 교단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니 회원 교단이 추천한 후보를 인정하는 것이 향후 NCCK 활동에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기장 교단의 위원으로서 저도 기장에 대한 실망감을 여러 곳에서 들었습니다. 정의라는 측면에서 가장 앞장설 것으로 기대한 기장이 오히려 침묵하고 동조한 것에 대한 비판입니다. 제가 기장을 대표하지는 못하지만, 기장은 과거 교단이 추천한 후보가 거절당하는 아픔을 기억하고 있고 어떤 이유든 같은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기장 총회장이 NCCK 회장까지 겸한 상태에서 NCCK의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동시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NCCK 총무 선출의 첫 단계 공식 조직인 인선위원회가 합의한 사항을 실현하는 것이 NCCK 회장의 책무고, 기장 위원들은 이런 입장에 대체적으로 동의한 것입니다.

5. NCCK의 구조적 한계는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현재 NCCK의 정체성은 1970~80년대에 형성된 것이고, 그때의 강인한 인상이 지금도 길게 남아 있습니다. 민주‧인권‧생명‧평등‧통일로 집약할 수 있는 NCCK의 정체성은 많은 고난과 희생을 통해 축적한 한국교회의 자산입니다. 앞으로도 이 선교적 가치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고 지속해야 나가야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선교가 일반 교회 현장과는 괴리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상적인 모습은 일반 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이 사회선교의 핵심 인자 역할을 하고 사회선교 자금도 교회가 만들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80년대까지 사회선교의 핵심 인사들은 교회 정서와 가깝지 않았고, 대부분의 활동 자금은 세계교회가 후원했습니다. 90년대 이후로 우리는 상당 부분 민주화를 성취했고 정치 권력에도 참여했으며, 국민 소득은 OECD에 가입할 수준이 되었고, 그래서 세계교회는 NCCK에 후원을 중단했습니다.

이런 중대한 변화 이후, 이전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자기 정체성 확립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생명‧평화‧정의로 요약되는 이전의 사회선교를 실현하는 중심체로서 NCCK가 제 역할을 감당하려면 회원 교회와 기관이 사람을 내고 재정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정서를 충분히 담보하지 않은 기존의 사회선교 주제와 활동은 교회의 공감을 받기 어려웠고, 교회는 공감할 수 없는 선교에 재정을 부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것이 지난 30년 동안 NCCK에서 발생하고 있는 구조적 한계입니다.

6. 앞으로 NCCK와 에큐메니칼 운동이 궁핍한 현실에서 생존하고 하나님의 선교를 온전히 감당하려면, 사회선교의 중심축을 지금보다는 조금 더 회원 교회와 기관으로 옮겨야 합니다. 회원 교회와 기관의 활동가들이 NCCK의 사회선교에 더 많이 참여하고 재정지원도 더 많이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연스럽게 사회선교는 선도성보다는 대중성에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진보적인 사회선교 그룹은 예민한 의제들을 NCCK에 제기하고 현상 유지에 매몰되기 쉬운 교회 중심의 사회선교를 자극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둘이 어떻게 철저하게 신뢰 관계를 형성하면서 내적으로 역할분담을 하느냐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래서, 현장활동가들이 에큐메니칼 운동에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는 하나 NCCK 갱신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더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합니다.

7. NCCK 인권센터는 근본적으로 인권 문제의 첨단에서 활동합니다. 당연히 일반적인 교회 현장과는 인식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근래 NCCK 최대과제는 수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감리교 일부의 탈퇴 움직임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보수적인 소수 연회의 주장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2년 이상 꾸준히 활동 반경을 넓혀서 이제는 감리교 평신도의 대세를 이룬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NCCK 탈퇴를 주장하는 핵심 논거 중 하나가 NCCK 인권센터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인권상을 수여한 것이었습니다.

이들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논쟁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기에 급한 불을 꺼야 하는 NCCK 총무입장에서는 인권상 수상 결정에 NCCK 총무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인권센터는 NCCK 총무의 지도를 받지 않는 완전히 독립 조직입니다. NCCK 창립 교단인 감리교 탈퇴라는 충격적인 가능성 앞에서 NCCK 총무는 당연히 온 힘을 다해 막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발언은 널리 이해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8. 한국 교회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자리 잡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NCCK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자세는 지금부터 객관적‧합리적 연구를 시작하고 그 성과를 그때마다 교회 현장에 전달하여 한국교회가 그릇된 정보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정말 신앙적‧과학적 인식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작업은 오래 걸릴 것입니다. 최소 5년~10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NCCK 전 총무는 이런 계획을 공포했고, 이제 곧 NCCK 신학위원회가 신임 총무와 협의하면서 이 작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할 것입니다.

저는 4~5년 전에 기장 총회가 ‘성소수자연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발의했습니다. 주민교회 당회가 경기노회에 헌의하고 우여곡절 끝에 노회가 총회에 헌의하도록 결의했고, 총회도 여러 찬반 논의를 거쳐 정말 어렵게 기장 총회 공식 조직으로 연구위원회를 설치했습니다. 다만 이후 기대한 만큼 총회 이름으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약 4년 만에 위원회마저 폐지한 것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신학적‧교회사적‧의학적 등 여러 분야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합니다.

9. NCCK는 회원 교회와 기관 등 교회 정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과 청년‧여성‧활동가 등 사회 개혁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이 공존합니다. 결은 좀 다르다 해도 우리는 차이를 넘어 일치를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제 100주년을 앞둔 NCCK가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걸음을 하나씩 복기하면서 장단점을 분석하고 미래를 구상한다면,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진정 새로운 전환점으로서 100주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마음의 에큐메니즘을 회복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10. 에큐메니칼 운동은 내 생각을 편하게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입니다. 이것은 서로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겪어야 했던 서구 교회가 끔찍한 전쟁 역사를 통해 습득한 뼈아픈 교훈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르지 않다면 일치 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기에 그 다름을 크고 작은 싸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뢰에 기반하여 평화롭게 하나를 이루어가자는 의식적인 운동이 에큐메니칼입니다. 그래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기초 여건은 ‘의사 표현의 안전한 공간 마련’입니다.

WCC 총회는 전통적으로 텐트에서 진행하고, 적어도 에큐메니칼 텐트 안에서는 어떤 사람도 자기 생각을 방해나 위협받지 않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무언의 표시입니다. 부자 나라 교회와 가난한 나라 교회의 이해관계가 달라도,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교회가 정반대 입장이라 해도, 교회사적으로 다른 전통을 가진 정교회와 장로교가 교리상 차이가 있다 해도, 우리가 에큐메니칼 동지로 만난 이상 자기 생각을 부담 없이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소중합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는 서로 다른 입장의 이야기를 경청하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으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고심하기 위해 그렇게 인내하지 않습니다. 제가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몇 번 이런 글을 쓰는 한 가지 이유는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텐트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무시당하거나 공격받지 않고, 편하게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훈삼 목사(주민교회/NCCK실행위‧신학위부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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