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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꿈꾸었던 나라임시정부의 좌우합작의 삼균주의와 중국의 국공합작
허호익(대전신대 퇴임 교수) | 승인 2023.09.05 01:46
▲ 조소앙(趙素昻) 선생. 조소앙 선생은 1918년부터 정립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에 포함된 기초 이념으로 삼균주의를 내세웠다. ⓒhttps://sblib.tistory.com/851

지난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습니다.”라며,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공산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마치 반공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독립 운동을 한 것처럼 주장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어서 홍범도 장군이 러시아 공산당과 협력한 이력을 빌미로 삼아 육사 교정에 세운 흉상을 옮기겠다고 한다. 이 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이 어떤 나라를 꿈꾸며 목숨을 바쳐 독립 항쟁에 앞장섰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임시정부는 13년[1931년] 4월에 대외선언을 발표하고 삼균제도을 건국원칙으로 천명하였다. 이른바 ‘보통선거 제도’를 실시하여 정치적 권력을 균등히 하고, 국유제도를 채용하여 경제적 이권을 균등히 하고, 공비(公費)로 학습권을 균등히 하자는 것이다. 1940년대에 전후하여 많은 국내의 지도층들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은 불가능한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친일로 변절할 때에도, 김구와 조소앙 등 민족지도자들은 언젠가는 국권을 회복하고 새 나라를 건설하리라는 희망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1941년 10월 28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좌우합작의 이념적 통합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삼균제도에 입각한 ‘대한민국건국강령’을 제정 공포했다. 총강에는 ‘모든 인간에게 널리 이로운 사회’를 만들려면 ‘모두에게 골고루 균등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삼균제도를 건국 정신으로 삼은 것이다.

제2조 우리나라의 건국정신은 삼균제도에 역사적 근거를 두고 있으니… 이는 사회각층의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가짐을 고르게 하여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전, 유지하려 함이니 홍익인간과 이화세계하자는 우리 민족의 지킬 바 최고의 공리이다.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건국 강령으로 채택한 삼균제도는 “정치적으로 인민이 균등히 참정권을 가지는 일이며, 경제적으로는 인민이 균등히 수익권을 가지는 일이며, 교육적으로는 인민이 균등히 수학권을 가지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삼균제도는 조선 왕조의 봉건주의를 극복하고, 일제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종식시키는 동시에 독립운동 주체들이 좌우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따라서 평등이라는 서구적 이념 대신 가능한 권력과 부와 교육기회의 양극화가 줄어들 수 있도록 ‘균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삼균제도를 건국 강령으로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민족과 민족 간에도 이러한 균등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삼균제도는 일본식민지제국과 달리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와 교육적 차별이 없는 그러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더 높은 이상을 담은 것이다. 일제식민지 지배로 인해 민족과 민족이 균등하지 못한 약소민족의 피압박과 피통치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식민지 침탈의 종식과 민족독립 항쟁의 당위성을 선언한 것이다.

삼균제도는 조선왕조의 봉건주의처럼 양반이나 노동자 농민과 같은 특정 계급이 권력을 독점하는 비민주적인 제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의 균등이 요청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한국이 일본에 의해 침탈당한 ‘중대한 원인은 조선 왕조 5백년을 통하여 존재하였던 소위 양반과 상인 간의 정치적 불균등’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민주적 참정권’을 통해 근대적 민주국가를 수립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 역시 소련의 경우처럼 노동자 농민을 주축으로 한 무산계급 중심의 공산당 일당 독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권력의 분산과 균등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삼균제도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서 계획경제와 경제적 균등을 주장하고 토지와 대생산기관의 국유화를 실천과제로 제시한다. <한국독립당 당의해석>에는  “현재 자본주의 국가 내에는 두 가지 대 모순이 있다. 이는 곧 생산의 집체적 무정부상태와 분배의 불합리 불균등성이다.”고 지적하였다. 소수 자본가나 지주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가자본 일체를 상품화하여 놓고 사회적 필수 여부를 불문하고 개인이익 중심에서 계획 없는 생산을 경행(競行)하고 있는 점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모순의 원인이 ‘생산과 분배의 불합리함’에 있으므로, ‘토지와 대생산기관을 국유로 하여 국민의 생활권을 균등’하게 할 것을 대안으로 주장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들은 1920년대 후반부터 좌우로 나눠지고 흩어진 독립항쟁 세력을 하나로 모아 일본을 몰아내고 ‘제3의 길’을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전제로 하되, 그 위에 약간의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좌우합작의 삼균제도를 건국강령으로 내세운 것이다. 자본주의가 정치적 평등만을 내세워며 경제적 교육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공산주의가 경제적 평등을 내세워 정치적인 독재를 합리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제3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임시정부의 좌우합작 정책은 중국의 국공합작 정책과 맥을 같이 한다. 1919년 10월 월 쑨원(孫文)을 중심으로 중국 국민당이 창설되었고, 중국 공산당은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출발했다. 이어 1924년 1월 국민당은 광저우(廣州)에서 열린 제1회 전국 대표 회의에서 공산주의 세력과의 협력을 선언했고,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에 3명의 공산당원을 참가시켰다. 이를 계기로 제1차 국공합작이 시작되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국공합작이 추진되었다.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협상이 이루어져, 양측의 국공합작 선언을 발표했다. 1937년 9월 23일 장제스도 공산당의 합법적 지위를 인정하며 이 선언을 수용했다. 이로써 제2차 국공합작이 성립되었다. 중국의 국공합작을 통한 항일투쟁은 일본이 패전 선언한 1945년까지 계속되었다.

중국에서는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내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힘을 모아 항일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제2차 국공합작을 8년 간 지속해 온 것이다. 일제 침략의 격퇴라는 국가적 실리를 위해 이념을 포기하고 협력하였던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활동 역시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실리보다 이념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철지난 반공 이념 몰이에 몰두하고 있다. 아마도 정권의 친일행각과 여러 정치적 퇴행과 낙맥상을 이념 갈등으로 희석시키려는 술수로 여겨진다.

윤 대통령이 만들어 가려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건국정신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헌법전문에 명시한 것처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려면, 삼균주의라는 강령에 부합하는 나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의 정치, 경제, 교육에 있어 균등한 사회를 역행하고 있으며, ‘양극화 심화 사회’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보태어 대통령이 나서서 이념의 양극화까지 부추기고 있으니, “원칙적 반공주의는 공산주의 그 자체 보다 더 나쁘다”는 칼 바르트의 경고를 들려주고 싶다.

허호익(대전신대 퇴임 교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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