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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는 교사에게도 성소수자 청소녀/소년들에게도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셔터스톡 |
1.
“공교육 멈춤의 날”이라는 익숙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뭔가 심각한 느낌을 주는 날이 지난 월요일에 지나갔습니다. 정부에서 징계를 하네 마네 하다가 결국 꼬리를 내리는 걸 보니 잘못 건드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잘못 건드리면 안 되겠다는 상황까지 이르는 발단이 된 초등학교 교사 자살 사건이 7월 중순이었는데 지금까지 계속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요.
거의 두 달 가까운 기간 동안 교권이란 단어가 참 많이 나왔습니다. 어떤 단어가 사회적으로 많이 쓰일 때는 고정되고 정확한 의미로 쓰기보다 그 말을 쓰는 사람 각자가 각각의 의미대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교권이란 단어도 마찬가지였지 싶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교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학생인권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어쩌면 교권이란 말의 뜻이 무엇이냐라고 하기보다 그 뒤에 침해를 붙여서 교권 침해라고 하면 사정이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교권 침해라고 해도 각자가 각각의 의미를 담아서 쓰겠습니다만, 적어도 이런 말을 하고 싶다는 공통점은 있을 것 같다는 거지요. 교사로서 제대로 일하고 싶은데 그걸 방해, 아니 심지어 억압하는 요인이 너무 많고, 그 억압을 견디다 못해 사람이 죽어나가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 말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이 그만큼 억압으로 가득차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2.
서울신문 기자 3명이 공동으로 쓴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오월의봄)란 책이 있습니다. 이 칼럼의 독자분들이라면 이 질문이 여성 또는 남성이라고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란 걸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청소년 트랜스젠더에 관한 서울신문 보도기사의 후속작으로 나온 책입니다. ‘교권 침해’ 이야기로 시작해 놓고 왜 다른 데로 빠지느냐라고 하실 법도 하지만, 앞에서 교권 침해 이야기가 학교라는 공간이 억압으로 가득차 있다는 뜻도 될 거라고 말씀드렸으니 학교라는 공간과 관련된 다른 억압을 이야기하는 것도 영 뜬금없는 건 아니지 않을까 이런 변명을 해 봅니다.
대다수의 청소년에게 학교라는 공간은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일 터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온 트랜스젠더 청소년들 중 상당수는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이 이들에게 그만큼 억압적인 공간이었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학교에서는 또래를 만날 테고 교사를 만날 텐데, 또래고 교사고 모두 이들에게 억압적이었다는 이야기겠죠.
어느 트랜스 남성 청소년은 부모님이 트랜지션을 반대하면서 갈등이 심해져 우울증을 겪어서 자퇴를 하려고 했는데 이 때문에 학교 상담교사와 상담을 하게 되었답니다. 두발과 복장이 비교적 자유로운 학교에서 짦은 머리에 바지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상담교사 왈, 그렇게 하고 다니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라며 여성성을 되찾도록 머리도 기르고 치마도 입어 봐라고 했다네요. 그러니 뭘 어쩌겠습니까. 자퇴 결심만 더 굳혀질 뿐이고 결국 자퇴를 했지요.
다른 트랜스젠더 청소년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특수 목적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학생 자치 활동이 많아서 소수자에 포용적이지 않을까 기대를 했답니다. 그래서 입학한 직후 학교에 성소수자 동아리를 만들어 볼 사람을 구하는 오픈채팅방을 열었는데, 온갖 혐오 발언이 쏟아지고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아우팅해 버리겠다는 협박도 받았답니다.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계속 당한 끝에 이 분도 결국 자퇴를 했다구요.
남자고등학교에 진학한 트랜스 여성 청소년은 머리를 기르는 걸 교사들에게 계속 지적을 당하고, 급우들과 어울리려고 해도 노골적으로 음담패설을 늘어놓곤 하고 교사들도 끼어들기 때문에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생각만 늘게 되더라고 합니다. 그러니 학교에 있을 의욕을 찾지 못해 아침에 학교 가려고 일어나기가 죽도록 힘든 상황을 겪다가 결국 부모님이 먼저 자퇴하라는 이야기를 꺼내셨다고 합니다.
또다른 트랜스 남성 청소년은 바지 교복을 입을 수 있었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걸 드러내기를 꺼려서 치마 교복을 입었는데 이게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학교에서는 “보이시한 여자 친구” 대접을 받고 “네가 남자였으면 사귀고 싶은데”라는 말도 들었는데 그런 말을 듣는 게 오히려 힘들었다고요.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지만 2학년 때 결국 자퇴하는데, 가장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가 화장실이었다고 합니다. 남자인데 여자 화장실에 계속 가야 한다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고요.
학교가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 곳인데 가정조차도 이들의 편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도 그런 예가 나왔지요. 그래서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탈학교에 이어 탈가정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많은 경우 성별정정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일찍 노동시장에 뛰어들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건 당연하고 성별에 관해서 이런저런 뒷이야기도 들어야 하고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게 드러나면 해고 위협도 더 크게 느낀다구요. 앞에서 나온 화장실 문제 역시 어김없이 등장하게 마련입니다.
물론, 어떤 트랜스젠더 청소년에게는 교사가 희망을 주기도 하고, 다른 청소년에게는 부모가 희망을 주기도 하고, 또다른 청소년에게는 또래가 희망을 주기도 합니다.
3.
교사가 당하는 억압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 이렇게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청소년이 당하는 억압의 이야기를 보태게 되면 보통 “봐라 교사만 억압당하는 게 아니잖아” 또는 “교사도 성소수자 청소년에겐 억압자네”라는 식의 이야기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물론 이 칼럼의 독자분들이라면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면 안 된다라는 생각은 다들 하실 법 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사가 당하는 억압과 성소수자 청소년이 당하는 억압은 어느 수위에서 보면 같은 뿌리를 갖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말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같은 뿌리를 논할 수 있는 수위는 우리가 지금 학교라는 것을, 즉 교육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것 같네요. 사람과 사람이 동료 시민으로 만나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만드는 게 교육이고 그 장소가 학교여야 할 것 같은데,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말입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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