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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위해 무례하지 않은 교회로코로나 팬데믹을 넘은 최윤철 시온성교회 목사를 만나다 (2)
정리연 | 승인 2023.09.10 02:34
▲ 최윤철 목사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에 주저함이 없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소양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문제로 교회 구성원과의 마찰은 없었다고 한다. ⓒ정리연
“옛날 시골에서는 어지간한 그늘에만 있으면 피서가 되었습니다. 마을마다 동구 밖 정자나무는 마을의 전통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듯 의연히 그곳에 서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모시적삼에 부채 하나 들고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의 풍경은 농한기의 유유자적한 일상을 그려주는 한 폭의 동양화와 같습니다.
우물가에는 아낙네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소였습니다. 물 길러 와서 가벼운 빨래도 하고, 새댁들은 시집 얘기도 나누는 유일한 대화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냉방시설이 없던 시골에서 여름날의 우물가는 어지간한 냉방 시설보다도 쾌적하고 시원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우물가에 남정네들이 기웃거리는 것은 우스갯거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한낮에 시냇가는 남자아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저녁에 엄마나 언니를 따라 멱을 감으러 가야 했습니다. 어쩌다 어린 남자아이들이 엄마를 따라 나섰다가는 논총을 받곤 했던 곳이 바로 시냇가였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인간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은근히 특정인만 사용해야 하는 관습을 만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누구나 환영하는 장소가 있다면 그것은 곧 예배당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끊기고 답답한 현실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은 교회입니다. (중략) 교회는 지치고 곤한 영혼에게 언제나 누구든지 와서 쉼을 얻을 수 있는 영혼의 쉼터입니다. 66년 전 세워진 우리 시온성교회가 오늘도 우리 마을의 정자나무와 같고 우물가와 같은 쉼과 나눔과 생명력 있는 장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 목양칼럼 중에서

▲ 듣기로는, 시온성교회가 지역 사회에서도 뭔가 하는 게 많다던데요. 요즘 욕만 먹는 교회와는 다르게 지역에서 엄청난 미담이 쏟아지고 있다고요? 어떤 것들을 하고 있나요? 또 한국교회는 지역 사회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엄청난 미담까지는 아니지만(웃음), 교회를 지역에 개방해서 함께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성장 위주로 나아가면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았어요. 리처드 마우가 쓴 <무례한 기독교>에 공감하는 게 있어요. 저자가 한국교회를 보면서 너무 무례하다고 느꼈대요. 예의가 없고 사회의 공중도덕을 지킬 수 있는 기본 소양이 안 돼 있는 교인이 너무 많다는 거였어요. 건물만 크고, 헌금 많이 하면 1등 교인은 물론 직분까지 줘요. 이렇게 교회가 성장 위주로 걸어왔죠.

그에 대한 열매로 교회가 지금 공격당하는 거 아닐까 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교회가 해야 하는 게 뭘까. 우리 교회를 예로 들면, 교회는 마을 속에 존재한다는 거였어요. 다른 말로 하면 마을을 위해 교회가 있지, 교회를 위해 마을이 있다는 거죠.

저희는 가을에 노인 축제를 열어요. 여러 행사를 하면서 선물도 드리고, 하루를 즐겁게 보내실 수 있게 힘써요. 옛날 시골에는 마을마다 정자나무가 있었잖아요. 나무 그늘에 쉬기도 하고 평상에 눕기도 하고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는 곳. 저는 우리 교회가 이 당산동 지역의 정자나무였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요. 아무나 와서 쉴 수 있는 곳이 교회, 마을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죠.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고 안 나오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마을을 섬기자. 그런 측면에서 우리 교회가 마을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죠.

지역의 놀이터가 된 교회

일단 여기 주민센터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교회 본당과 이음 건물 사이에 공간이 하나 있어요. 원래는 그냥 맨땅이었는데 이음 건물을 사면서 두 건물 사이에 공간이 생긴 거죠. 그곳 이름을 실로암이라고 붙이고, 테이블이랑 의자도 갖다 놨어요. 여기를 주민센터 사회복지사들이 거의 매일 이용해요. 독거 노인들에게 갖다줄 것들 준비도 실로암에서 해요.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120가정 어르신들 무료 반찬 나눔을 하는데 거기 사회복지사들이랑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같이 반찬 만들어요. 교회에서 좋은 일 하는구나, 하면서 와요. 사업은 교회에서 시작했고 비용도 다 우리 교회가 감당하고요. 동에서 지역 어르신들 섬기는 모든 일은 거의 실로암에서 이뤄지고 있어요. 사무실 같은 거죠(웃음). 우리 교회의 건물이지만 그분들이 와서 그냥, 자유롭게 사용하는 거예요. 허락받을 필요도 없어요.

그리고 마을 목회 차원에서 문화 접촉점이라고 한다면 몇 가지 사역을 잘해왔는데 코로나 이후에 멈췄어요. 관현학 교실이 있었어요. 아이들에게 1만 원씩 받고 우리 교회에서 1년에 한 1~2천만 원씩 출자해서 운영했어요. 전문 강사 섭외해서요. 많을 때는 80명까지 모였어요. 지역 초등, 중등 학생들 정말 엄청났어요. 토요학교도 있었고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문이 닫혀있는 상태죠. 코로나 이후에도 하고 있는 건 탁구 교실이에요. 탁구방에 탁구대가 5개 있어요. 교인들이랑 지역 주민들이 모여서 해요. 80명 정도 모였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한 40명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성탄절에 쌀이나 이불 나누는 건 다른 교회들도 많이 하는 거고, 성탄 선물로 매년 하는 게 하나 더 있어요. 이 지역의 관공서, 주민센터나 파출소 또 주변의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성탄 선물을 보내요. 제가 사는 아파트만 해도 관리사무소 직원이 한 56명이에요. 보통 한 사람당 1만 원 예산이 들어가는데 교회에서 1천만 원 정도 지출을 합니다.

우리 교회 나오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거 받고 교회 나온 사람도 없고요. 그렇지만 그냥 계속하는 거예요. 우리 교회가 마을을 섬긴다는 취지로요. 부활절 같은 때 떡 하잖아요? 한 2천 개씩 쫙~ 지역에 나눠요. 지금은 작은 스티커를 붙이긴 하는데 처음에는 교회가 너무 생색내지 말자면서 교회 이름을 안 썼어요.

옆에 ‘이음’이라는 건물이 있어요. 지역의 청년과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에서 만들게 되었죠.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스튜디오가 4개, 소규모 문화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있어요. 청년들에게는 무조건 무료에요. 거기에도 일체 교회 흔적을 안 남겼어요. 스튜디오 대관 건물인데 교회 이름 붙이면 요즘 젊은이들은 선한 의도로 해도 안 오거든요. ‘교회? 뻔하지’라고 생각해요. 교회는 속 보이는 일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이름 넣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했지요. 그래도 거기에 ‘교회 전도지라도 둬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웃음).

하지만 ‘제가 그러지 맙시다’라고 해서 화장실이랑 모든 스튜디오 방을 무료로 개방하는데 교회 십자가나 이름 하나 없어요. 모르는 사람은 지금도 교회인지 모를 거예요. 스튜디오 관련 홈페이지도 독립되어 있거든요. 아마 눈치 빠른 사람은 연결 통로가 있으니까 교회에서 하나? 생각하겠지만요. 그게 선한 일이라고 봐요. 절대 내색하지 않고요. 장로님들과 교인들이 공감해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바로 이거, 공간 공유가 우리 교회가 지역을 위해 가장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어디에서든 자랑하고 싶어요.

상반기 때 공간 대여 정리한 걸 보니 매일 있었더라고요. 구립 영등포 노인복지, 시각장애인협회, 구립 신 가사노동자협회, 노동자 협회, 시니어합창단 등 저도 모르는 일정이 많아요(웃음). 한 번은 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용 택시를 타고 왔어요. 무슨 일인가? 봤더니, 시각장애인 요가를 하러 오셨더라고요. 저도 몰랐어요. 교회가 자유롭게 돌아가고 있죠. ‘이음’에서 스튜디오 대여하고 있는 건 김성욱 목사가 따로 설명해 줄 거예요. 거기 담당이니까.

교회 건물처럼 비효율적인 공간이 없지 않아요? 예배 말고는 비어 있잖아요. 좋은 건물 지어놓고 왜 그런가 몰라. 그런데 우리 교회는 사람들이 매일 와서 이용해 주니까, 저는 너무너무 기뻐요. 장로님들도 전부 알고 인정해 주셔요. 아, 우리 목사님은 교회는 개방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계신다 라는 걸요. 그래서 지금껏 민원이나 불만이 올라온 적 없어요. 적어도 저한테는요(웃음).

▲ 시온성교회에서 운영하는 스튜디오 ‘이음’

​사회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교회

“지난 16일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에는 수학여행 가는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일반인 73명 및 승무원 등 476명이 탑승했는데 사망 및 실종자는 3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피우지도 못한 꽃이 떨어지는 아픔에 하늘도 울고 바다도 통곡합니다. 그 또래의 자녀를 둔 한 아버지로서 지켜주지 못한 잘못과 슬픔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침몰하는 배를 보면서 한 목사로서 예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이기주의와 성공주의에 물들어 가는 한국교회가 침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부끄럼과 참회의 마음으로 무릎 꿇습니다. 이 고통을 통해 이 민족과 한국교회를 향한, 아프지만 달게 받아야 할 사랑의 매를 드신 뜻을 온전히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중략)
어김없이 대형사고 때마다 반복되듯이 이번에도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일어난 사고나 대응방식도 후진국형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사고 소식에 울고 한숨짓습니다. 직접적으로 내 가족이 아니어도 그런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의 심정은 모두 같은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침몰하는 배를 보고도 자녀를 찾지 못한 부모들은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며 통곡합니다.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입니다. 슬픔 가운데 비통에 빠진 가족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목양칼럼 중에서

▲ 네, 이런 게 지역 사회와 함께 숨 쉬는 교회가 아닌가 싶네요. 주변에서 시온성교회 욕하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하나님의 몸으로 여기면서 정작 물질적인 부요함만을 드러내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직접 찾아가고 소통하며 지역과 사람들을 품는 게 진짜 교회의 사명이 아닐까 해요. 시온성교회 같은 교회가 더 많아지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런데 목사님, 시온성교회는 이런 지역 사회와 사회의 아픔을 나누고 동참하신다고요? 예를 들어 광우병이나 세월호 사건, 이태원 참사 같은 거요. 전통 있는 교회에서는 그런 발언들을 좀 부담스러워하기도 하잖아요.

교회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예수님처럼 이웃의 아픔, 소외된 이웃과 함께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해요. 마땅히 교회는 그래야 한다고요. 마을 속의 교회라고 했던 것처럼 세상 속의 교회니까요. 목회자의 설교는 텍스트를 읽어주고 해석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진정한 설교는 콘텍스트 안에서 텍스트는 뭘 말하고 있는가, 이게 설교거든요.

그러니까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반드시 짚어야 하는 거예요. 요즘엔 대부분 권별 설교를 하고 가끔은 주제별 설교를 하는데 같은 본문으로 다른 시기에 설교해도 지금의 사회 이슈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문제들이 나와요. 반드시 목회자가 짚어줘야죠. 세월호도 마찬가지고 이태원 참사도요.

사회적인 반향이 일어나고 있는 것들인데 침묵하는 게 교회일까요? 우리 기독교는, 성경은,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걸 들려주는 게 교회라고 봐요.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교회

“자연재해가 아니었습니다. 교통사고나 화재도 아니었습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갑작스런 땅 꺼짐이나 건물 붕괴도 아니었습니다. 100% 사람들의 잘못으로 발생한 인재였습니다. (중략)
조금만 빨리 대처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사태였음을 생각하면 답답함의 눈물이 나옵니다. 사태 발생 네 시간 전부터 여러 차례 경찰에 압사 위험을 알리는 신고사례 접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당국은 팔짱만 끼고 있었던 셈입니다. 현장 파출소의 인력만으로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안전요원이 투입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중략)
참사 발생 후에 보여준 당국자들의 반응에 눈물이 나옵니다. 장관도 경찰청도 서울시장도 사흘 후에야 사과했지만 너무 늦은 대응이었습니다. 경찰이 많았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던 주무장관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태도가 분노를 자아내게 했습니다. 국가 위기관리와 경영능력이 없는 지도자의 태도입니다. 세월호 당시 주무부서 해수부장관은 취임 한 달 만에 세월호 참사를 겪었고 그는 문책 0순위였으며, 유족들이 “너 때문이다”라며 울부짖을 때마다 장관은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욕받이를 자처했습니다. 장관은 무려 136일 동안 진도 팽목항 현장을 지키며 유족들을 위로했으며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김밥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초췌한 얼굴,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정치적 쇼맨십’이라는 비판도 받았으나, 묵묵히 팽목항을 지키는 그의 모습에 진정성을 느낀 희생자 가족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던 사실이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도 이번 참사를 대하는 당국자들의 태도와 확연히 대조되기 때문입니다.“
- 목양칼럼 중에서

그래서 그런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설교를 통해서 또 기도 제목으로 제시하고 주보 칼럼으로도 교인들에게 알려줘요. 왜냐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라는 궁금증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거든요.

제가 신대원 시절, 87년도에 중고등부 교육전도사 할 때였어요.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가 있었어요. 제 생각엔 청소년들이 예민할 때니까 궁금할 거 아니에요. 뉴스랑 신문에서 보도하고 난리니까. 그래서 제가 성경적인 입장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봐야 할 건가, 설교했어요. 담임목사님한테 불려 가서 엄청나게 혼났죠(웃음).

교회에는 여러 당파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으니 예민할 수밖에 없어요. 조심하지만 박근혜 때는 탄핵 같은 거 설교 단골 주제를 올렸어요. 우리 교회에는 태극기 부대도 있어요. 태극기 집회 다니고 그래요. 그런데 감사한 건 박근혜를 탄핵해야 한다는 설교까지 했는데도 개인적으로 와서 목사가 왜 그래요? 설교 시간에 정치 얘기나 하고? 말하는 사람이 아직까지 없었어요. 은혜라면 은혜지요. 그때 두 가정이 교회를 떠나긴 했어요. 그렇지만 저한테 와서 따지거나 소리치진 않았어요.

교회는 지역을 위해 존재한다는 목사님 말씀이 와닿았다. 몸집만 부풀리고 오히려 지역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역 사회를 위해 돈을 많이 지출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진심을 가지고 지역의 필요와 아픔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함께 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거다. 예수님이 아프고 가난하고 소외 받는 자들 곁에서 함께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위로 받고 살아갈 힘을 얻었듯이, 때로는 그냥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시온성교회와 최윤철 목사님을 보면서 교회가 왜 여전히 필요한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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