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간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여는말을 전하고 있는 이은선 소장 ⓒ홍인식

1.

‘이렇게 추석 명절을 앞두고 열린 북 토크에 몸소 찾아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 말은 제가 이번 북토크 저자 말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쓴 첫 마디인데, 이 말 속에 지금 인류세와 더불어 씨름하고 있는 인류, 그 문명, 그리고 거기서의 우리 구체적인 사람들의 처지와 딜레마가 또한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추적 명절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감사, 함께 함의 축제 등과 연결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명절’은 많이 퇴색했고, 그럼에도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그 전통과 권위에 대한 부담이 있으며, 그에 대한 여러 차원의 고민과 갈등이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제가 ‘몸소’ 찾아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오늘 우리 주변 많은 행사가 그러하듯이, 오늘 이곳 공덕동에 ‘몸소’ 안 오실 수도 있었고, 대신, 줌이나 유튜브 등, 나중에 무한히 반복되는 여러 매체를 통해서도 함께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여기 ‘몸’으로 ‘직접’ 오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고, 또한 얼마나 귀한 일인지요?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이와 같은 일을 얼마나 더 계속할 수 있을런지요?

2.

오늘 주변에서 잘 보는 바이지만, 전철을 타고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스마트폰에 머리를 숙이고서 몰두해 있습니다. 전철 안에서뿐 아니라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의 자리에서도, 심지어는 생동하는 어린아이와 함께 하는 자리에도 바로 옆의 아이보다는 스마트폰 속의 다른 사람 이야기, 더 먼 곳 이야기가 더욱 궁금합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우리 몸이 깊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 주변의 사물(事物, things and facts)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며, 더 크게 말해보면 우리 지구와 그 생태 환경, 우리 가족과 이웃, 공동체, 그리고 ‘과거’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인간 문명의 종말이라고도 할 수 있고, 오늘 우리는 그것을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저는 그 인류세라는 말로 오히려 참된 인간세와 선하고, 아름답고, 복된 인류세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거기에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묻는 물음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물론 오늘 이 자리가, 그리고 저의 처지가 그것을 지금 인류 문명의 꽃이라는 여러 과학의 언어로 논하는 자리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인류세 문제라는 것도 오늘 여기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 보기에, 모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제 미시사의 차원에서 잠깐 말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제가 인류세에 대해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信), 어떻게든 오늘의 상황에 맞서 제 주변과 세상이 ‘빈집’과 ‘쓰레기장’이 되지 않도록 다시 정돈하고(理), 차례를 주고자 하고(禮), 생명과 삶의 온기가 지속되도록(生/活) 하는 일에 관심하고 염려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저의 그 지속하고자 하고, 항상 다시 새로 시작하려는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는 생각해 봅니다.

4.

가장 적나라하고 직접적으로는 바로 제가 어떤 경우에도 그 ‘선재성’을 의심하려야 할 수 없는 과거 부모님과 윗사람들의 낳아주심과 보살펴주심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지금까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하며 판단할 수 있는 제 자신의 ‘사유(思)’의 힘이 있으며, 그리고 또 바로 내 몸 밖의 또 다른 나의 심장, 자식들과 손주들, 제자들, 다음 세대의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염려와 관심입니다. 물론 저도, 오늘 저희 북토크의 또 다른 책 이야기에서도 들으시겠지만, 평범하지 않은 아버지 李信과 가족적 삶으로부터 많은 아픔과 고통도 겪었습니다.

또한, 지금도 반복적으로 가족을 비롯한 주변과의 갈등에서 저의 생각이 얼마나 짧고, 이기적이고,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도 받으면서 절망도 합니다. 그 가운데서 막 자라나는 손주들의 환경과 미래,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정치 현실, 제 종교의 모습 등을 보면서 많은 실망과 더불어 그래도 크게 어쩌지 못하는 모습으로 많이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는 이런 것들을 뚫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힘을 저는 가장 가깝게는 부모님과 전 세대에 대한 감사와 은혜에서 얻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그런 저의 생각들을 더 자극하고, 더 깊이 생각하도록 하는 여러 주변 자극으로 그것들을 ‘사유’하고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한 시인의 말처럼 “사람이 먼저 집을 비우고/ 소나무도 모두 산을 비울 것이다/ 그깟 소나무 죽는다고 먼저 걱정하지 마라/ 사람 없는 빈 곳에 소나무도 살기 싫을 것이니 (변경섭 시집, 「빈집 2」, 『다시 사람에게 묻다』, b판시선 063, 2023, 76쪽)”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인간 보편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을 일찍이 조선 땅에서 『정역(正易)』으로 후천개벽의 새로운 인류세를 꿈꾼 김일부(金一夫, 826-1898) 선생은 “천지는 (지구의) 해와 달이 없으면 빈껍데기요, 그 (지구의) 해와 달도 그 안의 (노력하는) 인간(至人)이 없으면 헛 그림자다”(天地匪日月空殼, 日月匪至人虛影)”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까운 몸적 반경(身/精)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 마음을 키우는 일, 자유로운 사고와 사유(思)를 통해서 새 세계를 창조하고 시작하고자 하는 용기와 실천력을 키우는 일, 그런 인간적인 영(靈)과 정신(理)의 표본이 없이는 어떤 지구적, 우주적 미래도 없다는 것, 저는 이 세 가지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보았습니다.

5.

저의 이번 책은 바로 이 세 가지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저는 지구 땅 동북아시아 조선 문명의 유교 또는 신유교 전통에서 잘 영글었다고 보고, 오늘의 사람들에게 나름으로 밝히고 싶었습니다. 위의 일을 위해서 자신들 삶을 바치고, 다음 세대에 그와 같은 진실을 넘겨주기 위해 헌신한 선대들의 남겨진 전승들이 이후 그들은 상상도 못 했던 서구 기독교 문명의 세례를 받은 오늘의 우리가 다시 긴요하게 필요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국사상사에서 가장 최근에 은혜로 받은 기독교 신앙은 이전 선조들이 경험한 어떠한 사유체계보다도 우리 모두를 훨씬 간명하게 神과 靈의 사람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神이 창조주인 것처럼 오늘 우리도 또 다른 세계, 가상세계(virtual world)와 AI라는 인공지능의 세계를 창조하도록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모두가 보듯이, 우리 몸의 인간이 너무도 그 가상세계, 탈사물의 세계에 빠져들어서 그 세계가 어떤 토대와 근거에서 창조되었는지를 점점 망각해가고 있습니다. 그 세계를 있게 한 神과 靈이 바로 여기 지금의 ‘몸’을 통한 존재라는 것, 여기 지금 세상의 선하고 정의로운 생각과 사유, 판단과 상상이 그 가상세계의 ‘사물적’ 토대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또한 그 사실을 지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오늘 세계와 우리 관건은 바로 그와 같은 여기 지금의 몸과 사실, 사물과 이곳의 인간적, 세계 사물적 이웃을 돌보고 살리는 일이 되어야겠습니다. 즉 과거 이 땅 물질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 경주하던 시대에는, 그 물질 창조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하늘과 정신의 神에 관한 관심을 요청하던 신학(神學)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그 시간을 지나서 새로운 가상과 영의 세계를 창조하는 시간이므로, 그 일이 어그러지지 않고 생명과 큰 하나됨(大同)의 세계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여기 이곳 세상의 물질과 사실, 몸의 각 사람이 곧 神이고 하늘이라는 것(侍天主)을 간파하고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신학(信學)’, ‘믿음의 학’이 관건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이 세상의 사물들과 동반자들과 좀 더 잘 소통하고, 신뢰와 인간적인 말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 서로 믿고, 돌보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6.

예전 경천(敬天)의 일처럼 이 세상 사람과 사물을 그렇게 존숭(敬人, 敬物)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나쁜 결과물에 집중해서 목욕물을 버리기 위해 아기까지 버리는 형태로 비판하는 인류세의 최근 시간이 하던 대로 무조건 창조해서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거나, 그 어마어마한 양의 축적과 사재기 속에서 치여 사는 모습에서 벗어나서 이미 창조된 것이면, 아니 그 이전에 참되고 선한 것만을 창조해서 그것을 아끼고, 정돈하며 자기 자리를 찾아주어서 그 사물도 생생한 인격이 되게 하여 그와 더불어 신뢰와 우정의 관계를 쌓는 것, 또한 이 땅의 모든 인간 몸이 땅의 선한 창조물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각자 나름으로 최선의 창조자가 되도록 하는 일, 우리 공동체와 정치와 교육과 문화가 그런 일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의 이 조그마한 책은 이제 기독교 문명까지 받아들인 한국 문명이 인류의 미래와 지구 문명의 앞길에서 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여성들이 그 오랜 인고의 전통으로 그와 같은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보는 바입니다. 그 일을 기독교 신학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고, 더 포괄적으로는 미래 ‘지구종교’로서의 보편적 ‘진교’(眞敎)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일을 위해서 요즘 제가 믿는 세 가지 것을 말씀드리고 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 각자는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그것이 다시 새롭게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선한 믿음과 행위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소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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