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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완성, ‘요시야가 사는 날 동안’(대하 34:22-33 약 5:7-11 막 12:9-12)창조절 열째 주일(11월5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3.11.03 03:55

1.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지난주 종교개혁주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종교개혁이 그 당시 종교는 물론, 정치와 경제, 문화와 사상의 대변혁, 곧 천지개벽 혁명이었던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예후의 혁명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예후는 정치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종교개혁을 완성하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서 말씀에서 포도원 농부들의 혁명도 보았습니다.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는 반역입니다. 이것은 불의한 혁명입니다. 이렇게 개혁과 혁명은 좋은 방향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불의한 길로 나가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서 말씀은 지난주 복음서 말씀에 이어 이렇게 불의한 자들과 그들의 혁명을 심판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포도원 농부들을 진멸한다는 말씀이죠? 그러나 깨닫지 못한 불의한 이들은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듣고 오히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따라서 야고보 사도는 불의한 세상에,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강림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인내하며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오늘 말씀은 참된 개혁을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개혁의 기본을, 구약 본문 말씀은 여선지자 훌다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선포, 언약의 갱신, 곧 종교개혁에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바로 요시야의 종교개혁입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 포도원 농부들의 반역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막 12:9-12)

여기서 농부들은 예수님 당시, 유대교 교권주의자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불의한 정치인과 결탁한 종교 기득권자들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종교를 이야기하지만, 철저히 정치적인 무리인 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버림받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으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결국 영광된 부활의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을 깨닫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서신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불의한 이 세상에서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2.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5:7-8)

야고보 사도는 말세를 사는 성도들에게 고난 중 인내를 강조합니다.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이, 참고 인내하며 주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형제간에 서로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욥처럼 인내하고 믿음으로 참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한다고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9-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의한 종부를 심판하기 위해 포도원 주인은 반드시 다시 옵니다. 이와같이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우리 주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종말론이라고 하죠?

3. 천년왕국은 말씀을 통한 혁명의 상징입니다!

종말론 신앙의 대표적인 내용 가운데 ‘천년왕국설(Millenarianism)’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10절을 해석하기 위한 기독교의 신학 이론 중 하나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22장 18-19절을 보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을 더하거나 제하지 말라’라고 했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말씀입니다.

사실 이 천년왕국 개념은 다른 신약 성서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 예언서인 이사야와 에스겔서에 비슷한 개념이 있습니다. 먼저 이사야 24-27장은 하늘의 권세들과 세상의 왕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고, 심판받은 세상의 왕들이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이 온 민족을 시온산으로 불러 사망을 멸하시게 되는데, 그것과 별개로 그 이후에 하느님의 죽었던 백성들이 부활하고, 하나님이 땅과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는 큰 짐승을 심판하시며,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이방 땅에서 고생하던 유대인들이 시온산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예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에스겔 37장에서는 마른 뼈들이 부활하여 회복된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고, 38-39장에서는 흩어졌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다시 세운 나라를 마곡의 왕 곡이 침략하려다가 실패하는 장면이 나오며, 40-48장에서는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해당하는 세상이 펼쳐집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에서는, 마귀와 세상의 권세자들이 심판을 받은 다음, 첫째 부활과 함께 천년왕국이 열리고, 천년왕국 끝에 곡과 마곡의 전쟁이 일어나고 사탄이 완전히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다른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으며,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전천년설

천년왕국에도 여러 가지 이론이 있는데, 먼저 ‘전(前)천년설(Historic premillennialism)’은 예수님이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 문자 그대로 1000년 동안 세상을 직접 다스린다는 내용입니다. 시간 순서를 나열하면, ‘①7년 대환난→②그리스도의 재림→③성도의 부활→④휴거→⑤천년왕국→⑥최후의 심판→⑦새 하늘 새 땅’ 순입니다.

‘후(後)천년설(Postmillennialism)’은 천년왕국 기간 이후에 예수님이 실제로 재림한다는 것입니다. 시간 순서를 나열하면 ‘①현재→②예수 1차 재림→③유대 천년왕국→④전 인류의 큰 배교→⑤예수의 2차 재림→⑥최후 심판→⑦새 하늘 새 땅’ 순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두 번 재림한다는 것으로 문제가 있고(물론 1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재림이고, 2차 재림이 실제라고 변론하지만), 나아가 후천년설의 핵심이 인간들이 계몽과 발전, 개혁을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든 후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의미를 지니기에, 인본주의적인 낙관론에 기초하여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 무천년설

‘무(無)천년설(Amillennialism)’은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천년 통치에 관한 언급은 실제로 미래에 지상에서 이루어질 ‘천 년 동안의 통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합니다. 문자 그대로 미래에 천 년 동안 이루어질 통치는 없고,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은 단순히 예수를 믿고 죽어 천국에 간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말합니다. 시간 순서를 나열하면 ‘①그리스도의 초림→②대환난→③그리스도의 재림→④성도의 부활→⑤최후의 심판→⑥새 하늘 새 땅’ 순입니다.

천주교는 위 3가지 중 어느 설도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정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감리교는 무천년설의 입장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칼뱅,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등도 같은 입장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대환난의 시기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이 쓰인 시점부터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당시 불의한 권력이었던 짐승 바벨론과 같은 로마 제국은 지금 다른 이름으로, 다른 제국으로 그 권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했듯이 불의한 권력과 세력은 반드시 심판받을 것입니다.

▲ 세대주의 전천년설

1992년 다미선교회의 휴거 소동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에 기반을 둡니다. 이단 사상인데, 시간 순서를 보면 ‘①그리스도의 공중 재림-휴거→②7년 대환난→③그리스도의 지상 재림→④천년왕국→⑤최후의 심판→⑥새 하늘 새 땅’ 순으로 “몇 날 몇 시에 휴거가 일어난다.”거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니 많은 재산을 교회에 갖다 바쳐야 한다.”로 성도를 미혹합니다. 구원받는 사람을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수학적인 숫자로 이야기하는 신천지도 이단입니다.

특히 한국 교회 교인들 대부분이 빠져드는 이단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전 세계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시온산에 제3 성전을 세우고, 이를 계기로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며, 신자들이 휴거되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재림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말씀에 기초합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차후 이란, 사우디, 중국, 러시아와 이스라엘과 미국이 성전(聖戰)을 펼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휴거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단 사상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예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믿기에, 참된 이스라엘이자 아브라함의 자손은 바로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와 에스겔의 예언은 궁극적으로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시온산에 세워지는 유대인들만의 성전이 참된 성전(시온주의)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이 진정한 성전이자 새 예루살렘(예수 중심주의)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제물로 희생하여 세상이 화목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천년왕국설의 핵심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잘 보았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린도후서 5:17-19)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로 화목하지 않고, 전쟁을 일삼는 자가 마귀요, 혐오와 미움을 퍼뜨리는 자가 사탄입니다.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내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마귀를 내쫓고 주님의 심판을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야 합니다.

불의한 세력을 몰아내고 적그리스도를 내쫓는 참된 개혁, 천지개벽의 혁명을 완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천년왕국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혁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구약 말씀은 요시야 왕 시대에, 성전 수리 과정에서 율법 책을 발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갱신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인내하고 새로운 세상을 이루기까지 참아야 합니다. 구약 말씀을 볼까요?

4. 요시야가 사는 날에

“이에 힐기야와 왕이 보낸 사람들이 여선지자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하스라의 손자 독핫의 아들로서 예복을 관리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1)에 살았더라. 그들이 그에게 이 뜻을 전하매, 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라 하시니라.”(대하 34:22-23)

▲ 8세에 유다의 왕이 된 요시야와 훌다 선지자

배경은 유다의 16대 왕 요시야 때입니다. 요시야의 조부인 14대 왕인 므낫세는 55년간이나 왕위에 있으면서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하다가 말년에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나라에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범한 죄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우상 숭배하던 백성들의 마음은 좀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므낫세의 아들 15대 왕인 아몬도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악을 행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2년 만에 부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따라서 요시야는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즉위 8년째부터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정을 펼쳤고, 즉위 12년에는 모든 이방 우상을 파괴하고 거짓된 이방 종교의 예배를 폐하였습니다. 또한 즉위 18년에는 제사장 힐기야가 백성들이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내다가 모세의 율법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왕과 힐기야는 이 일로 인해 여선지자 훌다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때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훌다가, 발견한 말씀의 뜻을 풀어 줍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그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의 노여움을 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노여움을 이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대하 34:24-25)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거짓 신, 다른 신을 섬겼기에 심판할 것이라는 여 선지자 훌다의 해석입니다. 따라서 훌다는 요시야 왕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합니다.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전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들은 말을 의논하건대, 내가 이곳과 그 주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네게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과 그 주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에 사신들이 왕에게 복명(復命)하니라.”(대하 34:26-28)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기에 심판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이후 요시야 왕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갱신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왕이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으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 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려주고,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이 다 여기에 참여하게 하매,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니라.”(대하 34:29-32)

결국 거짓된 우상, 불의한 혁명, 불의한 정치와 결합한 종교 기득권자들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간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입니다. 그러자 새로운 세상이 왔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대하 34: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요시야가 사는 날 동안’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2), 참된 개혁이 완성되어 백성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개혁과 혁명의 완결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뤄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는 날 동안 이렇게 말씀을 통해 개혁을 완수하고 불의한 사탄, 마귀를 내쫓고 하나님 나라의 전진 기지인 교회를 바로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미주

(1) 둘째 구역은 히브리어로 ‘미쉬네(משׁנה)’, 말 그대로 ‘두 번째’라는 뜻입니다. 아시리아 침공 당시 예루살렘으로 유입된 난민(북 왕국 난민 포함)을 위해 건축되었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의 한 구역이었기 때문에 관리자와 책임자가 거주하였습니다. 따라서 이곳에 북 왕국 이스라엘 난민들도 정착했다면, 여선지자 훌다도 북왕국 출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요시야는 북쪽의 바벨론과 남쪽의 이집트 사이 전쟁에 끼어들었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습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9세였습니다. 이집트의 바로 느고 왕이 앗시리아 왕을 도우려고 유프라테스 강 쪽으로 올라갈 때, 요시야 왕은 그를 맞아 싸우려고 므깃도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느고에게 죽고 말았습니다. 이후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됩니다. 이후 유다는 몰락의 길로 나갑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요시야 왕의 죽음에 대해 ‘슬픈 죽음’이라 표현하며 애가를 지어 애도하기도 했습니다(대하 35:25).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남 유다가 종교개혁을 통해 부흥했지만, 어리석은 외교 정책으로 인해 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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