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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 유감이승만에 대한 기계적인 균형이 가능할까
이정배 교수(감신대) | 승인 2024.02.25 03:26

내가 위 영화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은 <길 위에 김대중>를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상영 일주일 만에 후자의 관객 수를 능가했다는 놀라운 소식도 들려왔다. 고교동창들 카톡 방에서는 <건국전쟁>을 보고 감격했다는 이야기가 넘쳐났다. KBS 뉴스에서는 우리 역사를 잘못 알았다며 성토하는 중학교 3학련 여학생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급기야 이승만을 이제는 국부로 여겨도 좋겠다는 어느 지인의 글도 접했다. 오랜 세월 농촌문제에 관심하며 민주화 진영에 몸담았던 분이었으나 그는 어느 순간 사회의 좌편향을 걱정하며 운동권 논리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위 영화이야기와 함께 이승만 국부론이 거론된 것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당초 <건국전쟁>을 입에 담고 싶지 않았으나 이런 상황에 처하고 보니 이 땅의 미래마저 걱정되기 시작했다. 기후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역사인식 차로 다음 세대가 더 힘들어 질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이런 역사관을 대형 교회 교인들이 단체관람을 통해 확산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함께 느끼며 부족한대로 이 글을 써야만했다.

1.

마침 TV조선에서 <건국전쟁>을 제작한 김덕영 감독과의 인터뷰 동영상을 봤다. 이승만 국부론을 언급한 지인이 전도(?)를 목적하여 내개 보내 준 것이다. 이승만을 주제로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가 너무도 상세히 언급되었기에 굳이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영화성격을 가늠, 판단할 수 있었다.

일견할 때 <길 위에 김대중>과 달리 <건국전쟁>은 ‘다큐’ 장르로 분류될 수 없을 만큼 사실을 빙자한 왜곡(해석)의 산물이었다. 예컨대 앞의 영화에서는 양김-김대중/김영삼-의 분열책임을 여실히 밝혔으나, 나중 것에서는 오로지 한 인물을 미화, 침소봉대시켰다. 검증받은 새로운 자료를 언급하며 그에 기초하여 본 영화를 제작했다고 강변했지만 내 보기에 같은 취향의 소수 학자들 견해일 것이라 생각한다. 공개적인 비판과 토론 없는 사실은 결코 사실일 수 없다.

하여 그런 그를 다큐감독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후에 제작할 영화에서 ‘인간 이승만’을 다루겠다니 걱정이 크다. 사실이란 미명으로 왜곡과 편파성과 마주할 것이니 말이다. 감독이 ‘사실’을 강조할수록 우리는 그를 더 의심해야만 한다. H. 아렌트의 말대로 그에게는 의견을 사실로 둔갑시키는 악마적 재주를 지녔기 때문이다.

감독은 영화 속에 법무장관 시절의 한동훈을 깜짝 등장시켰다. 권력의 힘을 빌어서 영화 속 자기주장을 역사를 넘어 법적 사실로 둔갑시키고자 했던 까닭이다. 한동훈, 그가 도대체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를 모르지 않는바 감독은 어찌 그에게 기댈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2.

김덕영 감독은 <건국전쟁> 제작의 변을 이렇게 말했다. 지난 70년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써 긍정적인 면을 다뤘다고 말이다. 결국 해방 전후 그리고 한국전쟁 전후 공간에서 종래의 이승만 평가가 사실 왜곡에 기초했다고 강변한 것이다.

역사를 다룰 때 과연 ‘기계적인 균형’이란 말이 가능할까? 특정- 임정에서부터 해방까지의- 시기를 논외로 한 채 건국에만 초점을 맞춰 이승만을 조명한 것은 전형적인 뉴 라이트(New Right)적 발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분단국가의 탄생을 오히려 축복이고 은총이라 역설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국제상황에서 통일을 말하는 것은 정신병자거나 유아기적 발상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하여 국가위상이 높아 진 것은 분단을 통해 서구(미국)적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이라 거듭 말했다. 이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친 친일파들이 논리의 재현일 뿐이다. 단지 일본이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그 정신적 실체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를 정당화 할 목적으로 본 영화는 김구를 악마 시 했다. 우익 민족주의자 김구를 김일성에 동조하는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던 것이다. 외교에 능한 이승만에 견줄 때 김구를 국제정서에 무지한 자로서 대한민국의 건국에 방해거리로 치부했다.

지금껏 우리는 김구가 분단을 거부했다고 알고 있으나 영화는 그가 김일성의 적화통일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논리를 폈다. 이 역시 감독은 새롭게 발견한 자료에 근거했다고 말했으나 김구 기념 사업회 측의 즉각적인 반발에 직면했다. 그 자료를 통해서 김구의 이중성, 거짓을 폭로했다고 자부했지만 지금껏 결코 공론화된 적도 검토, 토론된 바도 없다. 우리가 아는 바 상해 임정에서부터 김구는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서는 거리를 크게 두었던 인물로서 그것이 오히려 그의 한계였다. 그가 ‘좌우 합작’론을 펼쳤던 몽양 여운형과 불화했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일이다.

그런 그에게 자기 정치적 야욕을 위해 김일성 정권과 손잡을 생각을 했다는 것은 반쪽짜리 건국을 정당화하려는 뉴 라이트 역사관의 억지 투영이다. 어떻게 김구를 그토록 부정, 악마시 할 수 있을까? 물론 김구 역시 그간 미화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김구 청문회》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그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가 사회주의와 공조할 야심을 지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3.

감독은 이승만의 최대 공적으로 토지개혁을 과도하게 강조했다. 토지개혁을 통해 근대화, 산업화의 기초를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리 있는 지적이나 이 역시 따져 볼 대목이 없지 않다. 주지하듯 무산자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토지개혁은 북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당시 동학교도를 중심한 청우당에서는 토지개혁에 찬성했으나 조만식을 중심한 조선(기독교) 민주당 측에서는 반대했다. 이 일로 기독교 세력들이 남쪽으로 대거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쪽에 자극 받은 이승만은 당시 죽산 조봉암을 옹람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소작농 비유를 급격히 줄여가는 방식으로 토지개혁 작업-경자유전의 원칙-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토지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던 조봉암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제거(사형)했다. 민중의 신망을 얻은 그를 정적이라 여긴 탓이었다. 주지하듯 토지개혁에 대한 생각은 사회주의 사조에 익숙했던 조봉암에게서 비롯한 것이었던바, 이승만은 그것을 자기 공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듯 토지개혁만을 근대화, 산업화의 동력으로 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 물질과 정신이 동전의 양면, 새의 두 날개처럼 함께 가야하는 것이나 이승만은 민중의 정신을 계도할만한 인물이 못되었다. 종교 사상가 다석 유영모의 이승만 비판이 《다석 강의》 속에 잘 적시 되어있다. 그는 정신적 근대화를 망친 장본인이었다. 4.19혁명이 그래서 비롯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4.

<건국전쟁>을 두고 진중권과 감독이 앞서 토론을 했던 적이 있었던가 보다. 진중권이 모처럼 뼈있는 말을 했다. 이 영화는 4.19 정신을 부정한 것으로 국가의 기강을 해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틀리지 않은 비판이라 생각한다. 이승만이 4.19혁명을 통해 부정되었고 4.19혁명 정신이 헌법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점을 다루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괴변을 일삼았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사사오입에 대한 민중과 학생의 분노, 그 실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없었고 오히려 자신의 영화가 4.19정신과 가치를 옳게 실현했다는 거짓 사설을 늘어놓은 것이다. 왜곡된 이승만을 실대로 복원시키는 것이 4.19정신이자 그 실현이라는 억지를 부렸으니 감독이란 사람의 의식이 참으로 가관이다. 백성들에 의해 부정되고 퇴출된 이승만을 논외로 한 채로 이승만의 가치(사실)회복을 4.19 정신의 근간이라 여길 수 있는 만용이 부럽기(?)까지 하다.

이런 식으로 이승만이 옳다는 이야기가 영상을 통해 회자되면, 무엇보다 다음 세대 청년들이 이렇게 역사를 배워 이해할 경우 민족과 국가의의 기틀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헌법 자체가 부정될 여지도 크다. 이미 친일파들이 안면몰수 하고 활보하는 세상이 이미 눈앞의 현실이 되었으니 더더욱 이른 시기에 그리 될 것이다. 이렇듯 이승만의 긍정과 회복은 움츠렸던 친일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반증이다.

5.

감독은 TV조선과의 대담에서 북한이 이승만 정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반세기도 훨씬 지난 과거 정부인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북한 측 반응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아마도 감독은 이승만에 대한 이 땅 좌파들의 부정적 시각이 북쪽의 이승만 평가와 무관치 않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승만은 우리민족의 해방사에 있어서 원죄적 측면을 지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이승만을 국부로 삼겠다는 말에 피가 거꾸로 솟을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감독은 한국전쟁 연구자인 부르스 커밍스를 역사 수정주의자로 비판했다. 한국전쟁을 민족 간 내인설로 봤다는 것도 커밍스를 부정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커밍스는 새로운 자료가 발견될 때마다 이론을 더욱 정교화했고 국제적 이념 전쟁의 성격을 지닌 것 역시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한국전쟁 발단의 내인적 차원도 있음을 첨가했을 뿐이다. 만주국이 세워진 1930년을 기점으로 일제에 대한 민족의 세력화된 양분-저항(Resistance)/협력(Collaborate)-이 전쟁의 한 요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권을 위해 미국과 손잡고 친일파들을 대거 기용한 이승만 정권을 북쪽에서 거듭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뉴 라이트 입장을 대변하는 감독이 브루스 커밍스를 거부하는 이유는 이승만 정부의 친일적 특성과 결코 무관치 않다. 이점을 드러 내놓고 홍보하는 영화를 어찌 기독교인들이 눈물 흘리며 보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기독교와 민족주의가 하나였음을 한국교회가 자랑했기에 더더욱 말이다.

6.

<건국전쟁>보다 10여 년 전에 민족문제 연구소가 주관하여 <백년전쟁>의 이름으로 이승만의 친일 행각을 밝힌 영상-두 얼굴의 이승만-이 있다. 배우 권해요의 음성으로 소개되었다. <건국전쟁>에서 다뤄지지 않은 해방 전의 공간에서 드러난 이승만의 행적을 문제 삼았다. 이 영상은 CIA문서에 담긴 다음 물음을 갖고 이승만을 조명했다. “이승만 그는 자기 권력을 추구한 자인가 아니면 독립 운동가인가?”

후자라는 것이 당시 미 정보부의 판단이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출세를 위한 방편이라 했다. 하와이에 머룰 때 미국 눈치 보며 일본 편에 섰다. 러시아 견제를 위해 미국이 일본과 손잡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가 반일 항전투사가 된 것은 태평양 전쟁이후의 일이다. 그것도 일본이 패망할 것을 눈치 채고서 말이다. 임정 초대 대통령 시절 독립 자금을 움켜쥐고 사사 화했던 경력도 있다. 이런 이승만을 기호지방사람들과 기독교인들이 지지했던 것은 부끄러운 일로 기억되어야 한다.

오죽했으면 상해 임정원에서 이승만을 탄핵했을까? 그 때문에 이동휘를 비롯한 안창호 등이 상해 임시정부를 떠난 것을 아프게 기억해야 옳다. 일본에 머물던 맥아더에게로 날아가서 권력을 구걸한 것도 기록에 남아 있다. 권력을 위해 친일을 용납한 반공주의자가 되었고 수많은 백성을 반공의 이름으로 집단학살했다.  

7.

주지하듯 한 인간의 삶은 연속(통전)성을 갖기 마련이다. 과거가 미래로 이어지는 법인데 <건국전쟁>은 기계적인 균형이란 말로 이점을 애써 부정했다. 상세히 소개할 수 없어 유감이지만 이 영상을 통해 이승만의 존재가 더 객관적으로 알려질 수 있을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이 영상조차 죄파편향적인 것으로 매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해방 전후 공간에서 같은 뜻을 품었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지 않았는가?

<건국전쟁>을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 기독교인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역사를 다시 알았다는 순진한 젊은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아리다. 최소한 <백년전쟁> 영상도 함께, 다시 보면서 김덕영 감독이 말하는 ‘사실’의 의미가 뭔지를 다시 깨쳐 알기를 소망한다. 지금 이 땅에서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큰 사상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독교가 잘못된 판단으로 역사왜곡에 힘을 보탠다면 항차 우리 역사가 기독교를 내칠 수도 있음을 두렵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2024년 2월 23일 한 밤 중에...

이정배 교수(감신대)  ljbae2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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