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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과 역사 왜곡이념 절대화와 집착은 역사 왜곡과 공동체 분열의 원인
김경재 명예교수(한신대) | 승인 2024.02.29 04:27
▲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에큐메니안

토마스 쿤은 자연과학의 발전사를 명쾌하게 밝힌 명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보통 사람들이 불변적이고 항상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연법칙도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했다. 과학적 패러다임은 특정 시대 특정 기간 동안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고 받아드린 자연관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자연 해석의 집합을 ‘정상과학’이라고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고, 그러한 패러다임이 보여주는 자연만을 우리들은 보면서 살아간다.

줄여 말하자면, 저기 창밖에 펼쳐져 있는 ‘객관적 자연’이란 것도 ‘해석된 자연이요, 특정 시대 자연과학적 패러다임 그물에 걸러지고 규정된 ‘해석된 자연’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어부가 “내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은 물고기가 아니다”라는 말이 독단적인 것처럼,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성을 중요시한다는 자연과학자들도 “나의 자연과학적 패러다임에 걸리지 않은 것은 실재가 아니다”라는 말이 독단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의 양날 검과 같이 위험한 것

연구하려는 대상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공동체들의 삶의 경험과 현실일 경우, 그 복잡하고 다양한 가치와 의미 지향적 삶의 집적물을 ‘역사’라고 부른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 중에서 기록으로 남겨놓고, 역사 편찬의 목록 속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는 일을 보통사람들보다 신중하게 하는 지식인 집단들을 역사가라고 부른다. 역사학을 전공한 역사학자들의 역사서술 자체가 이미 어떤 가치 기준을 가지고 선별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서술 자체가 가치판단이요 해석이며 ‘사관’(史觀) 자체가 결단이다.

그렇게 기록물로 남겨진 지난날 역사를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늘 삶의 상황 속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은 까딱 잘못하면 주관적 독단 독선에 빠져드는데, 그런 위험에 빠져들게 하는 가장 무서운 함정이 특정한 정치경제적 이념에 집착하거나 절대화하여 맑고 밝은 눈을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특히 극좌, 극우파 정치-경제-문화집단이 빠지는 유혹이다. 그들은 입으로는 국민, 국가, 서민생활, 인간 존엄, 공정과 상식, 자유와 평등을 위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눈엔 편견과 독단과 독선이라는 ‘백태’(白苔)가 덮여 있어서 역사를 왜곡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사탄의 가시’로서 역기능을 한다.

상대적이고 제한적인 특정 시대 어떤 가치 지향성이 ‘시대정신’ 혹은 ‘세계사 이념’이라는 완장을 팔뚝에 두르고서 인간 공동체를 괴롭힌 예를 20세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독일 히틀러 시대 나치당, 중국 마오 정권 말기의 홍위병, 북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과정에서 백두혈통을 신성시하고 정적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 남한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시대의 반공주의 선두행동대원 서북청년단의 무자비한 동족 살상, 전두환 신군부 집단의 삼청대 훈련소와 5.18 광주시민 학살을 예로써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정치적 이념 절대주의가 권력 집단에 의해 인간성 말살이라는 광기에 빠져든 사실을 또렷이 목도하는 것이다.

▲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4.19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국립4.19민주묘지

삼일절 105주년 기념 예배, 4.19혁명 기념 묘소공원, 영화 <건국전쟁>의 불협화음

보도에 의하면, 지난 2월 25일 수원원천침례교회의 105주년 삼일절 가념예배에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윤 대통령이 예배에 참석하고 짧은 기념사를 하였다.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칼럼자는 윤 대통령의 기념사를 영상으로 보고 들으면서 모처럼의 대통령의 메시지에 정작 ‘삼일독립선언서’에 분명하게 밝혀있는 핵심적 메시지가 들리지 않고 ‘자유와 번영’을 강조하는 내용을 듣고 매우 유감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1919년 3.1 만세운동의 기본 정신은 <3.1독립선언서>에 명확히 밝혀있고 역사적 문서로 보관되어있다. 그 핵심 정신은 4가지다. 첫째, 조선은 독립국이요 자주하는 국민의 나라요 민족자존의 정권(正權)임을 선언한다.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다. 둘째, 독립선언과 주장은 하늘의 명명(明命)이요, 세계 대세의 흐름이고, 전 인류 공존동생권(共存同生權)의 발로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억제하지 못한다. 셋째, 조선 독립선언은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대한 종언의 선언이요, 아시아와 세계 문명의 새로운 전환을 강렬히 주장하고, 제국주의와 군사력을 앞세운 ‘약육강식의 식민주의 시대 청산’을 주창한다. 넷째, 최후 한 사람까지 최후일각까지 투쟁하되 평화로운 비폭력 저항 투쟁을 원칙으로 한다.

위에서 언급한 4가지가 독립선언서의 핵심이다. 물론 그 정신 속에 윤 대통령이 말한 ‘자유와 번영’을 지향하는 뜻도 담겨있지만,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닌 전 인류 공생동영권의 비전, 일차적으로는 민족 자주권의 확립,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식민지배철학의 철폐, 그리고 비폭력 저항을 골자로 하는 생명과 평화를 중요시하는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다. 칼럼자는 모처럼, 기독교 교회의 3.1절 기념예배에 참석한 윤 대통령이, 독립선언정신의 4가지 핵심 주장을 언급하지 않고, ‘자유와 번영’에만 방점을 찍는 기념사를 접하고 맘이 편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소위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경제 중심 이념’에 편향되어 있고 선열들의 숭고한 3.1독립선언서에서 밝힌 비전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여겨져 모처럼의 기독교 3.1절 기념예배 참석의 진의마저 의심스럽고, 대통령실의 ‘정치적, 정무적 판단에 따른 정치 행위의 일부’가 아니었나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요즘 극장가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삶을 다룬 <건국전쟁> 영화 평론과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이념적 갈등도 같은 맥락에서 깊이 성찰해야 할 문제이다. 초대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의 삶과 행적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빛과 그림자, 선정과 악정, 자유민주주의 확립의 공헌자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그 이후 한국 현대 정치사를 병들게 만든 정치권력 야심가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밝히면서 영화를 제작하든지 기념관을 건립하던지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21세기 민주 주권국가에서 시대착오적인 소위 ‘국부론’(國父論), 건국 영웅론, 영도자론 따위는 그 옛날 왕조시대의 케케묵은 곰팡이 핀 두뇌를 가진 속물인간들의 검은 속내만을 드러내놓게 될 것이며, 우리 사회 공동체는 분열과 대립의 골을 더 깊게 할 뿐이다.

칼럼자는 정치평론가는 아니지만, 나의 삶 과정의 상당 부분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선정과 악정에 필연적으로 관련되기 때문에 분명히 증언할 수 있다. 이승만 씨는 초기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자리매김할 때 이전부터 정치적 안목과 세계 동향에 눈뜬 정치적 거물임에 틀림없다. 그는 감리교인이었고 반공주의자였기에 38선 분단 이후 남하한 대부분 한국 기독교계 지도자들과 기존 남쪽의 교회들은, 콘스탄틴 대왕의 치적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여 그를 무조건 지지하고 그의 정치적 불의와 부정부패에 대하여 비판하지 못했고 도리어 동조했다.

이승만 씨는 그의 정치적 경쟁자가 될만한 김구, 여운영, 장덕수, 조봉암 등의 암살에 직접 지시를 안 했더라도 일말의 도의적 책임도 느끼지 않았다. 자유당을 중심한 3.15 부정선거 기획이 은근히 전개되던 때도, 종신 집권 야욕을 가진 인간 이승만은 주위의 충성파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모른 척했다. 친일세력들의 정치적 활용과 제주 4.3사태를 미군정 치하에서 공산당 토벌 작전으로 몰고 간 정치적 최종 책임자도 이승만이다.

1960년 4.19 학생혁명이 일어나 2백여명 희생자 무덤이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4.19 국립 묘지’에 안장되어 봄이 되면 여당 야당 구별 없이 이 묘소에서 기념식을 거행하는데, 한쪽에선 이승만을 다시 내세우는 극우파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 예술인 무리들이 <건국전쟁> 영화를 만들고, 기념관을 짓는다면 이 현실적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국론은 분열되고 역사의식은 마비되어 국민은 커다란 가치 혼란 속에서 고통당하게 될 것이다. 역사적 과오는 용서할 수 있을지언정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서술도 신중해야 하지만 역사 해석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념 절대화와 상대적 이념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역사를 왜곡시키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씨앗이 된다.

김경재 명예교수(한신대)  soombat19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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