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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경작본능평화를 짓는 농부이야기 9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 승인 2024.03.16 03:11
▲ 교차로 도로 변에서 김매시는 아짐 ⓒ정아롬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길이자 논에 가는 길, 면이나 인근 다른 군에 갈 때면 꼭 이용해야 하는 큰 교차로가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일을 마치고 가는 길에 그곳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건너편 인도도 없는 방음벽 아래 아짐 한 분께서 호미질을 하고 계셨다.

저기에 사람이 설 수 있는 공간 있었나 할 정도로 좁은 땅덩이에 쌩쌩 다니는 차들 사이로 여기저기 초록빛이 눈에 보였다. 세상에나 분명 완두콩이었다. 풀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시기에 김을 매고 계셨다. 옆에 자전거도 있는걸 보니 주변 마을에서 오시는 것 같았다.

순간 여러 생각이 지나쳤다. 일단 신호가 바뀌기 전 핸드폰 사진기를 얼른 들이댔다. 농지의 정의는 뭘까. 도로변 거친 돌짝밭에 거름기 하나 없는 흙에서도 농사가 가능하다니. 아니 누가 저런 곳에서 콩을 심을 생각을 할까. 어떤 마음으로 저곳까지 오게 되신 걸까. 주변에 농지가 없었나. 농민이란 뭐지. 온갖 질문들이 머릿속에 쏟아졌다.

그 뒤로 아짐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그 자리의 변화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완두콩이 끝나고 들깨를 심으셨고 갈무리 후에는 다시 완두콩을 심으셨다. 다음 해는 콩이 자라고 있었다. 논에 가는 길, 매번 농사에 대해 자문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 되었다. 그 아짐은 어떤 마음으로 그 땅에서 농사를 짓게 되셨을까.

짜투리 땅에서 농사를 짓는 모습은 눈을 돌려 보면 어디서든 보인다. 도로변 버려진 땅, 비워진 공공용지, 산비탈 아래 조그마한 땅 등에서 매우 알차게 농사짓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본다. 누군가에겐 쓸모없는 땅일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소소하게 먹을 것을 키우신다. 아주 정갈하게 작물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딱 농사꾼이 지은 손길이다. 왠지 모를 동지애도 느껴진다.

그런 땅을 보고 있으면 사람에겐 경작 본능이 있다는 게 분명해 보인다. 직접 길러 먹을 수 있다는 자급의 관점은 차치하고 빈 땅을 보면 무엇이라도 키워 먹어야겠다는 게 몸에 새겨져 있는 것 같다.

가만히 살펴보면 경작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우리 윗세대 이상의 나이 때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집안의 농삿일을 도우셨을 것이고 배고파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먹거리가 흔해진 지금과는 다르게 먹는다는 게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작은 빈 땅을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가는 거라 감히 추측해 본다.

▲ 도심 바로 옆 한새봉두레 개구리논, 밭 ⓒ정아롬

지금은 어떨까. 마트에 가면 손쉽게 농산물을 만날 수 있다. 제철이 무색하게 언제든지 신선한 과일, 채소를 살 수 있고 심지어 외국 농산물도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의 근간이 되면서 손에 흙 한번 묻지 않고도 먹거리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이의 유통망은 농지에서 식탁까지 더욱 멀리 분리 시켜 놓았다. 농촌의 농사는 자급을 위한 것에서 도시를 먹이는 ‘돌봄농사’가 되었다. 돈만 있으면 잘 포장되어 깨끗한 먹거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편리함은 인간의 경작 본능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만큼 먹거리가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만나는 게 굉장히 중요해졌다.

특히 농사 짓는 것을 직접 보기 어려운 도시민에게 인간의 경작 본능을 일깨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도시 텃밭이다. 텃밭에서 흙을 만지고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사람은 평안함을 느낀다.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지 않는가.

텃밭은 씨앗에서 밥상까지의 거리를 매우 짧게 하고 탄소발자국도 줄어준다. 뿌리지 않아도 자라는 이름 모를 풀들을 뽑다보면 힘들기도 하지만 자연이 살아 있음도 느끼게 된다. 직접 기른 식물을 손질해 바로 식탁에서 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큰 복인가. 당연히 농사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몸소 배우게 되고 제철을 알게 된다. ‘도시 농부’라니 듣기 만해도 들썩이지 않는가.

도시에 아직 남아 있는 농지들를 보존하고 함께 농사짓는 것도 중요하다. 예로, 광주에는 ‘한새봉 개구리논’이 있다. 천여평의 다랭이논과 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파트와 주택가에 바로 붙어 있어 이런 곳에 농지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농사짓던 노부부가 연세로 인해 못 짓게 될 때 광주전남녹색연합과 인연이 되어 ’한새봉두레‘라는 이름을 조직하였고 여러 사람들이 농사짓게 되었다. 덕분에 수백명의 도시텃논 농부들이 생기게 되었다. 가족단위로 와서 많이 짓는데 자연에서 뛰며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아이가 있는 부모들이 많이 참여 한다고 한다.

벼농사에 실제로 참여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을 직접 경험하기도 한다. 다양한 생물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사람과 생물이 공존하는 법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프리마켓도 열려 주민들의 소통공간이 되기도 한다. 도시에서 만나는 농지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어 본 아이들은 분명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는 다른 눈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도시와 자연, 두 경계의 물리적인 완충지대이기도 하지만 자연에서 멀어진 인간의 삶을 다시 끌어들이는 심리적, 영적 완충지대라고 생각한다.

▲ 사전 예고 없이 포크레인으로 무참히 밟아버린 광주의 공원텃밭 ⓒ광주전남귀농운동본부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온다. 일명 도시공원 일몰제로 인해 공원 한켠에 조성된 도시텃밭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실제로 작년, 광주에서는 10년 동안 무농약방식으로 토종씨앗을 키우며 농부학교가 진행되었던 한 텃밭이 일몰제와 개발특례사업 명목으로 무참히 사라졌다. 멀리 파주 탄현면에서는 시에서 캠핑장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던 부지의 운영을 종료하고 캠핑장 용지로 변경을 했다. 자본과 개발의 논리는 인간의 감각을 더욱 무뎌지게 만든다.

도시를 피해 생태적인 삶을 살기 위해 종종 젊은 청년들이 귀농한다. 도시에서 느끼는 경제적, 사회적인 고립감에서 벗어나 물질중심보다는 자연에 기대어 살고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바람이 그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심지어 도시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살았던 청년들 안에도 본능이 꿈틀대는 것을 본다. 어쩌면 인간의 유전자 안에 이미 경작 본능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무뎌지고 익숙해짐 속에서 과감히 벗어날 용기가 때로는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안에 꿈틀대는 경작 본능을 일깨우기 위한 방법은 많이 있다. 옥상에 텃밭을 조성하는 것도 좋다. 화분이나 버려진 스티로폼 박스에 흙을 담아 상추, 깻잎 같은 잎채소를 키우는 것도 좋다. 가까운 곳에 도시텃밭이 있다면 도시농부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주변에 어머니 나무라 불리는 큰 나무가 있다면 꼭 안아보면 어떨까. 숲과 산이 있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한발자국 더 나간다면 자연에 가까운 삶으로 전환해 보는 것도 좋다. 이미 내재해 있는 우리의 경작 본능을 깨워보자. 내 식탁에 길러 올린 상추잎 한 장이 시대의 저항정신이다.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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