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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의 친미 외교에 비추어 본 대한민국의 과제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권, 민주주의, 헌법에 충실한 정부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
정종훈 교수(연세대, 평화와통일을위한연대 공동대표) | 승인 2024.03.19 03:06
▲ 윤석열 정권의 굴욕적이고 종속적 친미 관계를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은 인권과 민주주의, 헌법 등에 충실한 정부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이 글은 《씨알의 소리》 2024년 3/4월호 105-119쪽의 “미국의 실체와 우리의 갈 길”을 인터넷 환경에 맞게 축소하고 제목과 일부 내용을 수정한 것이다. - 필자 주

한미관계의 과거 돌아보기

한국인들은 미국을 생각할 때, 초창기 한국교회와 관련해서는 알렌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해서 기독교 복음(福音)을 전파해 준 은혜의 나라로서, 한국전쟁과 관련해서는 빨갱이들로부터 우리나라를 구해준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로서, 한국전쟁 직후 가장 가난한 국가로 굶주리던 시절과 관련해서는 한국인들에게 온갖 구호물자를 보내어 잘 살 수 있게 도와준 천사와 같은 나라로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세계 경제력 13위(2020년, 2021년에는 10위)의 국가이자 미국 ‘Global Fire Power’가 최근 발표한 2024년 세계 군사력 5위(북한은 36위)의 국가로서 한류를 주도하는 선진 문화국의 시민이라는 자의식보다는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꿈꾸며 사대주의 속에서 미국을 선망(羨望)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과연 미국은 한국인들에게 절대 선의 긍정적인 영향만 끼쳐온 좋은 국가였을까.

1866년 12월 1일 평양 대동강변에서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을 거슬러 오다가 모래톱에 걸리자 평양 군민(軍民)들을 대상으로 대포를 쏘며 무고한 생명들을 살상했다. 평양 군민들은 열악한 무기로 대항하다가 결국 제너럴셔먼호에 불을 질렀고, 살아남은 선원들에 대해서는 남김없이 처형했다. 이 사건은 1871년 6월 미국과 한국 사이의 전쟁인 신미양요로 이어졌다. 미국의 무장 탐험대는 군함 5척에 500여 명의 수병과 150여 명의 해병을 승선시킨 채로 다시 통상을 요구하며 조선 강화도를 침범했다. 조선은 충돌을 막기 위해 항전하다가 피해를 크게 입었던 반면, 미국 탐험대는 작은 손상만을 입었을 뿐이다. 그러나 조선의 완강한 쇄국정책으로 미국 탐험대는 협상 없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이 전쟁을 전쟁과 소동의 의미로 ‘신미양요’라 했고, 미국은 한국원정(Korean Expedition) 또는 1871년 미한전쟁(United States-Korea War of 1871)이라고 했다. 우리는 한국과 미국 두 국가의 처음 관계가 폭력과 전쟁으로 출발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드디어 1882년 5월 조선과 미국은 조약을 체결함으로 상업적 관계와 상호 협력을 강화했다. 1883년 5월 미국은 조선의 수도인 한성(서울)에 영사관을 설치했고, 조선과의 상호 교류와 경제 활동을 촉진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1884년 9월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알렌 박사가 의료선교사로 입국했고, 1885년 4월 언더우드 선교사가 기독교 선교사의 신분을 감춘 채 광혜원(廣惠院)의 교사와 보조 의사로 입국했다. 19세기 말 조선은 일본, 중국, 러시아의 치열한 각축전으로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있었다. 하지만 고종 황제와 명성 황후의 깊은 신임을 받았던 알렌 박사, 언더우드 목사, 에비슨 박사 등 미국인 선교사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인해서 조선 내에서는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국가로서의 미국을 제대로 보려면, 1905년 7월 29일 미국 전쟁부 장관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 사이에서 협의된 ‘태프트-가쓰라 밀약’의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이 밀약은 미국과 일본 모두 극비(極祕)였기 때문에 1924년이 되어서야 그 내용이 알려졌다. 밀약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필리핀은 미국과 같은 친일(親日)적인 나라가 통치하는 것이 일본에 유리하며, 일본은 필리핀에 대해 어떠한 침략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다. 극동(極東)의 전반적 평화를 유지하는데 일본·미국·영국, 세 나라 정부의 상호 양해를 달성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며,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미국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고, 극동지역의 평화에 직접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

이처럼 국가로서의 미국은 개인으로서의 미국인 선교사들과 달리 필리핀 점령을 통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적 보호권을 인정했다. 이렇게 미국은 일본 제국주의 등장의 단초(端初)를 제공한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을 누가 초래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일본의 패망을 앞둔 1943년 11월 27일 미국과 소련과 중국 3개 연합국은 일본의 침략을 정지시키고, 자국들의 이익이나 영토 확장을 도모하지 않을 것을 이집트 카이로에서 선언했다. 그리고 일본에 의한 한국인의 노예 상태를 유의해서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주독립시키기로 결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5년 7월 26일 독일 베를린 근교 포츠담에서 개최된 연합국 회의 역시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는 동시에 한국과 관련해서는 ‘카이로 선언의 조항이 이행될 것’을 천명함으로 한국의 자주독립을 재확인했다. 일본이 패망했을 때, 한국민들은 김구 수반의 임시정부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등을 통해서 진정한 해방과 자주독립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은 패전국 일본을 분할 점령하는 대신에 한반도의 38선을 중심으로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점령한 후 군정(軍政)을 실행할 것을 결정했다. 이는 일제하 우리 애국선열들의 독립운동과 희생, 모든 열정과 희망을 외면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친일세력을 군인과 경찰, 공무원으로 그대로 기용함으로써 우리의 친일세력 청산의 기회를 말살했고,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반공(反共)의 논리로 묵인하거나 조장했다. 이로써 한국민들은 점령당한 국민으로서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경험해야 했고, 미국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사회주의 진영의 하수인으로서 냉전 이데올로기를 수용해야 했으며, 한국전쟁으로 인한 적대 의식 속에서 남북 분단을 고착시켜야 했다. 우리는 한반도의 분단과 고착이 38선을 긋고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국과 그들의 국가이익을 위한 노력에 실제 책임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미국은 한국에 군사쿠데타가 있을 때마다 방관했을 뿐 아니라 지지하고 지원했던 역사가 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안정적인 통치를 위해 박정희 장군을 지지했고,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경제적인 지원과 군사적인 협력을 통해 독재체제가 유지되는 것을 도왔다. 1979년 전두환 장군을 필두로 12.12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도, 미국은 한국과의 안보 협력과 지역 안정을 중시하며 군사쿠데타를 승인했다. 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고, 소련과의 대립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판단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국익에 일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우선적인 이유였다고 볼 수 있다.

1982년 3월 8일 문부식, 김현장을 비롯한 고신대학 학생들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한국 군대의 강경 진압이 미국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고,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99년 4월 8일 문부식은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은 영웅적 행위도, 좌경 불순세력의 무모한 반역 행위도 아닌, 5공 정권이 주도한 거짓의 역사를 지탱하는 부역의 대열에서 이탈하고자 한 당대 젊은이들의 움직임 중 하나였다. 미국을 싫어해서 저지른 게 아니라 군부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종속적 한미관계를 지속하려는 미국이 진정한 우방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제라도)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과 신군부의 공모행위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밝혀야 한다.” 이처럼 미국은 한국의 민주주의나 한국인의 고통보다, 또는 한미동맹의 대등한 관계보다, 언제나 자국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우선시했다. 

윤석열 정권의 미숙한 친미 외교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한 이래로 외교정책 1순위에 미국을 두고 있다. 그는 한미동맹 관계를 어떻게 더 강화할 수 있을지, 미국의 가치 외교에 어떻게 동반자가 될 수 있을지, 미국이 관심을 지닌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이루는 일에 어떻게 조력할 수 있을지를 적극적으로 주시하며 모든 권력을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2024년 대통령 신년사에서 “정부는 출범 이후, 우리 외교의 중심축인 한미동맹을 완전히 복원하여 글로벌 포괄 전략 동맹으로 확장시켰습니다.”라고 자평했을까.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복원했다는 한미동맹관계는 미국의 요구를 이행하기만 하는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가. 미국의 가치 외교는 미국 자신의 국익을 최고 가치로 삼는 외교가 아닌가.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동북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부담을 일본에 일정 부분 전가하겠다는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일본이 평화헌법을 포기하고 군국주의로 치닫고자 하는데도 묵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윤석열 정권이 미국에 대해 ‘올인’하는 것은 세계 무역에 비중이 큰 우리 한국으로서는 매우 불리한 방향이다. 얼마 전만 해도 중국은 한국에서 가장 큰 무역상대국이었다. 한국이 수출도 가장 많이 했고, 수입도 가장 많이 했으며, 무역수지 역시 흑자로써 매우 컸다. 중국은 한국이 무역흑자를 내는 주요 국가로서 2018년 1위로 556억 달러, 2019년 2위로 289억 달러, 2020년 3위로 237억 달러, 2021년 3위로 243억 달러, 2022년 22위로 12억 달러의 흑자를 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국이 중국을 주적(主敵)으로 설정한 미국의 돌격대 노릇을 자처하다 보니,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는 물론이고 경제적 관계도 꼬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23년 한국은 중국과의 수출 순위에서 5위로 내려앉았고, 무역수지는 100억 달러 적자로 돌변했다.

러시아와의 무역 관계 역시 중국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는 2021년 한국의 무역상대국 12위까지 차지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래로 점점 추락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의 수출입 총액은 2020년 175억 달러, 2021년 273억 달러로 증가하다가, 전쟁이 발발하며 2022년 211억 달러, 2023년 150억 달러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성격을 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를 공개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2024년 1월 27일 언론보도를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인도적 지원을 넘어 군사적 지원까지 하는 무모한 행동을 하면,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완전히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관계는 2023년 사상 최대인 2,401억 달러(약 316조 원)로 전년대비 26.3%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한국 미국 일본 사이의 안보 협력을 추동해 온 미국의 의지(意志)에 응하기 위해서 윤석열 정부는 한일 간의 새로운 미래를 연다는 명분 아래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와 독도 영유권 주장 문제, 핵 오염수 방류 문제와 일제하 위안부·징용자에 대한 사과와 배상 문제 등에 침묵하거나 모조리 간과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우리가 먼저 양보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면 일본도 진정성 있는 사과와 상응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일본이 우리가 기대하는 실질적인 변화를 보여준 것은 전혀 없다. 일본은 오히려 한미일 연합군사훈련과 한일 군사정보의 공유 등을 통해서 자신들의 군사적 약점을 보완하며 군사 대국화로 갈 최고의 기회를 얻었을 뿐이다.

한편,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이러한 양상으로 인해서 중국과 러시아,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더욱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직은 북한 중국 러시아가 연합군사훈련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안일하게 볼 수만은 없다. 현재 동해상에서 이루어지는 ‘러시아와 중국의 연합군사훈련’은 ‘북한과 러시아의 연합군사훈련’과 ‘북한과 중국의 연합군사훈련’으로 확장될 수 있고, 나아가 북중러 연합군사훈련으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군사적 대결 구도가 형성되고, 신냉전 체제가 정착한다면, 우리에게는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것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국가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이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며,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이 전쟁을 유인하는 것이 될 수 있어서 크게 우려된다.

오늘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출발한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폐기할 수 없을 만큼 매우 긴밀한 관계 속에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미관계가 주종(主從)관계를 지속해서는 안 되며, 당당한 호혜(互惠)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어 언제라도 북중러를 향해서 핵 선제공격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군사주권이 없는 한국은 북중러의 핵 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 대한민국이 국가 안보와 자주국방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와 주둔지 관련 사항을 규정한 한미행정협정(SOFA)은 미국을 마치 ‘슈퍼 갑’처럼 설정한 불평등성을 담고 있는데, 대등한 협정이 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중국과 적대적 관계를 견지하던 미국이 최근에는 중국과 다시 접촉하며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여전히 중국에 대해서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전쟁이 당장 발발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지경이 되었다. 1994년 전쟁 위기 때는 지미 카터 미국 전(前) 대통령의 중재가 있었고, 2000년대 초중반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중국이 한반도의 위기와 북미대화를 중재했다. 2010년 연평도 포사격으로 촉발된 전쟁 위기 때는 미국은 한국을, 중국은 북한을 자제하도록 중재했다. 그리고 2017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 사이의 말 폭탄으로 고조된 위기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중재했다. 2023년 12월 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북남관계는 더 이상 종족 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고, “핵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핵으로 보복하겠다.”는 입장을 공언했다. 2024년 새해 이래로 북한은 동해와 서해를 향해 포사격과 마사일 발사를 지속적으로 강행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극악해졌는데, 누구도 중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중재한다고 하더라도 설득되기 어려운 현실이 한반도 최악의 비극이 아닐까.

이제 극악해진 남북 상황과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를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남북이 주축이 되고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가 참가하는 6자회담의 재개가 필요하다. 이해관계를 지닌 당사자 국가들이 서로 만나야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협상하는 가운데 평화를 위한 신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 군 당국이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겠다고 하자 북한이 아예 파기를 선언한 9.19 군사합의의 복원도 필요하다. 9.19 군사합의가 남북 사이에 상호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효과가 분명히 작동했기 때문이다. 당장 남북한 핫라인 통신선의 복구 역시 절실하다. 핫라인 통신선은 군사적 오해를 즉시 해소할 수 있는 공식적인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최소화하고,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폐기할 필요도 있다. 연합군사훈련이란 상대의 긴장과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언제라도 전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위험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긴급한 과제들을 실행하기 위해서 한국은 미국에 대해서 대등한 외교를 수립하고,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 등거리 외교의 지혜를 발휘하며, 한반도의 실질적인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주체적이고 실력 있는 정부를 필요로 한다. 우리 민주시민들이 인권과 민주주의, 헌법 등에 충실한 정부를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서 앞장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종훈 교수(연세대, 평화와통일을위한연대 공동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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