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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은 되어감 속에 있다암미로 사는 길(호세아 2,14-23; 고린도후서 6,14-18)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4.05.03 14:32
▲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는 것으로 되어감 속에 있었다. ⓒGetty Images

‘암미’는 백성을 뜻하는 ‘암’이라는 말에 1인칭 소유대명사 어미 ‘이’가 붙은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가리켜 “하나님은 암미” 곧 “나의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는 말이었습니다(출 3,7.10). 아직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기 이전입니다. 강제 노역에 지친 이스라엘이 고통가운데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함께 아파하시며 모세 앞에서 그들을 그렇게 지칭하십니다. 애정이 듬뿍 담긴 말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후 이렇게 그 말로 그의 후예들을 부르시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집트로 그들이 내려간 것은 요셉의 고백대로 하나님이 그들을 살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장하고 이제는 이집트를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을 법한 때에 강제노역이 시작됩니다. 고통스럽고 힘든 시기였지만, 다른 한편 이집트에서 더 이상 살기 어렵다고 느낌으로 하나님의 해방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 이 또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근을 피하려 야곱이 독촉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심으로 갔던 이집트, 재앙을 피하려 바로와 이집트 사람들이 독촉하고 하나님이 이끄심으로 떠나는 이집트입니다. 앞에는 요셉이 있고 뒤에는 모세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달라진 것은 소수의 이스라엘이 큰 민족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를 때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암미, 하나님이 이렇게 이스라엘을 부른 것은 그 약속이 지켜졌다는 의식의 표현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해방은 하나님께서 그의 또 다른 약속을 지키시는 행동이라고 해야 됩니다. 약속된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됩니다(출 3,8.17).

암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한편으로는 닮았지만,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에 근거하기 때문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출애굽기 6,6-7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속량하고 이스라엘을 내 백성(암)으로 삼고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암미는 완성되고 고정된 관계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관계입니다. 지금 암미라고 불리지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관계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시려고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그의 계약을 지키는 것이 암미로서의 미래를 향해 가는 길입니다. 해방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의 말을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 십계명으로 총괄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암미라는 말과 십계명이 관련된다는 점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다루는 1-4계명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루는 5-10계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을 포함한 모든 법은 이 두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자연/세계와의 관계는 그 두 관계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암미 역시 이 두 관계를 담고 있습니다. 1인칭 대명사 어미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암은 ‘함께’를 뜻하는 전치사 ‘임’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마틴 부버). 물론 정확한 어원학적 관계는 아닙니다.

백성이란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함께는 혈연적 관계로 인식하지 않고 사회적 존재 형식으로 규정됩니다. 그렇다면 그 관계는 열린 관계이고, 함께 사는 것은 큰 틀에서 평화로운 공존을 바탕으로 합니다. 공감과 배려 없이 지속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는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마지막 계명이 가르쳐줍니다. 이웃은, 타자는, 하나님은 탐심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관련해서는 탐심의 제어가 관건입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지극히 어려운 문제이지만, 완전히는 아니어도 상당한 수준에서 그것을 제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모든 법은 하나님 사랑과 타자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계약을 지키는 것은 따라서 사랑하고 절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암미는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동시에 나타내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 안에 십계명과 나머지 모든 법들의 내용이 다 들어있다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아닙니다. 암미라는 말에 응답하는 말은 엘로헤이누(우리 하나님)입니다. 양자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각자의 자리에서 나타내며 서로를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사람, 그리스도인이 곧 그입니다.

고린도후서 본문에서 바울은 저 관계를 다시 언급하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보충합니다. 그는 함께 사는 것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함께 살아선 안 되는 것에 주목합니다. 믿지 않는 자가 그입니나. 그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고 그를 배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과 멍에를 함께 메는 것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벗어버리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지 않는 자들은 단순히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믿음에 적대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멍에를 메고 저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임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의와 불법,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함께 할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을 양립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유혹입니다. 달콤하기도 하고 강력하기도 한 유혹입니다. 유혹이 자극하는 것은 우리의 탐심입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요? 앞에서 이와 관련하여 사랑을 언급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일으키는 사랑의 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사랑이 탐심을 이기고 사랑이 분노를 이기고 사랑이 어리석음을 이깁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정의를 선택하게 하고 빛을 따르며 빛이 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암미라고 부르십니다. 그의 백성으로 사는 길을 그의 말씀과 그의 사랑에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이 시대의 거센 유혹을 이길 수 있기를 빕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통합되고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우리 시대가 되기를 빕니다. 그 길이 악과 불의와 불평등 때문에 비록 힘들고 우리의 약함 때문에 버거울지라도 함께 가는 이들이 있고 그리스도가 우리 앞서 가고 계심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을 인내하고 이끌어가시듯 우리 시대의 광야를 지나도록 우리를 이끌어가실 것입니다. 저편에서 달려오는 함께의 시대를 하나님 안에서 맞이할 수 있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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