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죽으란 말이오?”

*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공약에서 제외한 것은 운하 공약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총선이후 병원영리법인화, 당연지정제 폐지 등 이른바 의료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의료 공공성을 부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우려를 안고 보건의료단체들은 지난 3월말 국회에서 영화 <식코>시사회를 연 바 있습니다. (편집부)



미국 민영의료보험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

길을 걷다 퐁퐁 터져있는 연분홍 꽃잎을 보며 황홀해짐을 느낀다.봄바람은 마음속에 묻어둔 그리움의 몽우리에 너 역시 지금 터져야 한다고 속삭인다. 불을 지핀다.

때마침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친구는 벙개(번개)를 때렸고 나는 그 벙개를 기분 좋게 맞는다.

두리번 두리번.. ‘샤방~’(눈부심, 화려해서 반짝임) 친구가 왔다. 늘 범생이 스타일의 녀석이 샤기컷에 강동원처럼 하고 나타났다. 내 마음에 불을 지핀다.

영화를 보기 위해 걷는다. 걸으며 나는 묻는다. 총선에서 누굴 찍을 거냐고. 마땅히 찍을 사람도 없고 정치에 관심도 없다는 친구는, 기독당을 찍는단다. 오 지쟈스.

나의 움찔한 모습을 본 친구가 ‘그래도 통일가정당 보다는 낫지 않냐?’는 말로 나를 위로하려 든다. 잠시지만 살인충동이 일었다.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기에 시 쓰기와 마이클 런즈 투 락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아주 좋은 영화가 있다고 하여 우리는 ‘식코’를 보게 됐다.

생명 보다 자본논리가 우선인 미국 민영의료제도

영화는 한 남성이 찢어진 무릎 부위 상처를 직접 꿰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음 컷은 중지와 약지 손가락 한마디가 잘려나간 목수의 사연이다. 손가락 접합 수술비로 중지는 약 7천만원, 약지는 약 2천만원 정도가 필요하지만 돈이 없는 그는 결국 약지만을 택해야했다. 사람의 몸에 값이 매겨진다. 하지만 그 가격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 의료보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미국은 의료제도가 민영화 되어 있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엄격한 자격조건을 통과해야 의료보험회사에 가입이 가능하다. 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병에 걸려도 보험회사는 과학수사대 CSI를 능가하는 수사능력으로 환자의 병력을 찾아내 치료비 지급을 거부하거나 지급 후에 되돌려 받는다.

미국의 보험회사는 의사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있는데 이 위원회에 소속된 의사들은 지급거부판결을 많이 내릴수록 보너스와 승진을 보장받는다.

한 엄마는 갓난아이 열이 40도가 넘어 근처 병원에 갔지만, 그 병원이 자신이 가입한 보험회사와 계약하지 않은 곳이라는 이유로 거절당고 아이를 잃는다.

미국은 그 어디에도 인간의 생명이 자본의 논리보다 우선일 수 없는 현실을 마이클 무어는 덤덤히 보여준다.

무상의료, 저소득층에 차비까지 주는 영국

그리고 화면은 프랑스와 영국으로 옮겨간다.

영국과 프랑스는 나라가 의료제도를 보장한다. 어떠한 병이라도 무료로 치료 받는다. 어느 병원이나 갈 수 있다. 정말 돈을 받지 않을까? 마이클 무어는 병원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CASH'라는 수납창구를 결국 발견한다. 그리고 묻는다. 여기가 돈을 내는 곳이냐고. 안에서 들려오는 말. “돈 주는 곳인데요.” 그렇다. 저소득층에게 병원까지 오는 차비를 다시 돌려준단다.

뿐만 아니다. 전화 한 통화면 의사내방이 가능한데, 그 역시 무료다. 어떤 병이든, 어떤 상황이든.

프랑스와 영국인에게 묻는다. 이 제도를 유지하려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할 텐데, 불만은 없냐고.

그들 왈.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혜택을 누려야 해요. 돈이 있는 사람이 더 내서 이러한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을 당연히 도와야죠.”

그들은 ‘나’가 아닌 ‘우리’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이미 터득한 것이다. 진정 ‘우리’ 속에 살 때, ‘나’ 역시 행복하다는 것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돈이 없어 남편을 떠난 보낸 미국여성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고 눈물지을 때, 함께 울 수 있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그 눈물이 머지않아 나의 눈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미국 민영의료 현실과 한국 의료계 미래는?

이 썩는 게 두려워 병적으로 이 닦는 것에 집착하는 나에게 영국과 프랑스의 의료제도는 그야말로 복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하나 썩으면 최소 3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드는 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 몇 퍼센트나 될까.

아픈 것이 죄가 되는 세상. 미국의 얘기지만 왜 이토록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걸까. 아마 미국의 제도면 토시 하나 빼지 않고 따라 하기 급급한 한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신 때문이겠지.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그 길은 아니라고 외치며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찾든지, 아니면 프랑스로 떠나든지.

허어. 근데 큰일이다. 프랑스로 가고 싶으니.

백수민 avi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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