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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전화’ vs ‘신뢰전화’
송상호 기자 | 승인 2008.05.13 00:00

“여보세요.”
“예, 여기는 서울 검찰청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당신은 지금 서울 검찰청에 형사소송이 진행 중이므로 자세한 상담을 원하시면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을 말하세요.”
“예? 뭐라고요.”

이렇게 시작된 전화에서 느낌이 좋지 않아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상대방에서 먼저 전화를 끊는다. 그래도 혹시 몰라 서울 검찰청에다가 전화를 넣었더니 서울 검찰청 담당자가 웃으며 말해준다.

“말도 마세요. 요즘 그런 전화가 우리 검찰청에도 걸려온다니까요.”

이렇게 해서 ‘사기전화, 불신전화’는 일단락되었지만, 혹시나 해서 놀랐던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요즘 들어서 이런 전화가 기승을 부린다. 휴대폰으로도 각종 이상한 전화들이 수없이 쏟아진다. 왜 이렇게 세상이 어지러워졌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요 며칠 전 휴대폰으로 흐뭇한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프레지오 15인승 차주 되시나요?”
“아, 예. 그런데요.”
“지금 차에 실내등이 켜져 있어요.”
“네. 그렇군요. 정말로 고맙습니다.”

전화를 받고 금방 주차한 곳에 나갔지만, 전화해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지 모르지만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그냥 지나쳐가도 누가 뭐랄 것도 없지만,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화를 해주고 간 게다. 그것도 행여나 사례의 말을 들을 새라 현장에서 부리나케 사라진 걸 보면서 그래도 이 세상 살맛나는구나 싶다. 이게 바로 ‘신뢰전화, 사랑전화’가 아닌가 싶다. 바로 우리 사회의 ‘희망의 등불 전화’라 말해도 손색이 없다 싶다.

우리 사회가 밝아지는 것,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뭐 그리 큰일에 기인하겠는가. 마찬가지로 어두워지는 것도 그리 큰일에만 기인하겠는가. 우리 스스로가 하는 조그만 행동 하나에 어두워지기도 하고 밝아지기도 하질 않겠는가.

모두에서 밝힌 그런 종류의 불신전화를 많이 받다 보면 우리의 내면에 ‘아, 이 세상은 정말 돈 밖에 모르는구나. 참 살기가 퍽퍽해. 무서운 세상이야. 눈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고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자리 잡기가 쉽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도 남에게 그런 식의 행동을 해서라도 살아남으려고 하질 않겠는가. 이런 것들이 조금씩 모여서 지금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두 번째의 경우처럼 그러한 ‘신뢰전화’를 받은 사람은 마음이 어떻겠는가. ‘야, 세상에 요즘도 이런 사람이 있네. 나는 사실 그냥 지나치기가 일쑤였는데. 조금 부끄럽구먼. 요즘 안 그래도 모든 게 안 되고 사람 때문에 실망이 커서 힘들었는데. 고마운 사람이다. 나도 할 수 있으면 그런 거 정도는 해야 되겠군.’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은 남의 차가 그런 경우를 보면 아무래도 그렇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을까. 그렇다. 이런 조그마한 행동 하나 하나가 모여 지금의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신뢰의 세상을 원하는가? 아니면 불신의 세상을 원하는가? 그것은 전화 한 통에서도 판가름 날 수 있는 것이다.

송상호 기자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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