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이야기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구순 맞은 박용길 장로.. “소원해 진 남북관계에 가슴 아파”
통일뉴스 | 승인 2008.09.09 12:48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박현범 기자의 기사입니다.

   
▲ '통일의 어머니' 박용길 장로가 구순을 맞았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나도 남편의 11년 3개월 동안의 옥살이를 체험해 보고 싶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감옥살이를 각오하고 일본에 있는 정경모 선생과 방북 길에 올랐다. 김주석의 추모행사에 참석하고 50년 만에 대유동 어머니 산소를 성묘할 수 있었다. 판문점을 넘어 돌아와 몇 달 감옥생활을 하였으나 곧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나는 문 목사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통일운동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곳에나 달려갔다."(박용길 장로 자서전 中)

'통일의 어머니' 박용길 장로가 구순을 맞았다.

1919년 9월 1일 황해도 수안군 수안 금광에서 부친 박두환 선생과 모친 현문경 여사의 넷째 딸로 태어나 남편 故문익환 목사를 만나 일생을 통일운동과 민주화에 매진해 온 박 장로. 그는 구순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기억력과 명석함 그리고 '풋풋함'을 머금고 있다. 박 장로를 알아온 지인들이 지금까지도 그를 소개할 때 "소녀 같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유다.

"맑은 얼굴로 구순을 맞으시는 표정과 명석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보니, 이렇게 뜻을 가지고 강인하게 살아오면 세월도 늙음을 막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오충일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지난 세월은 험하고 무서운 세월이었다. 그럼에도 지금도 예쁘고, 예쁜 것을 좋아하신다."(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 8일 구순잔치에는 종교.시민사회.정당의 인사들 300여명이 대거 자리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박 장로.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8일 서울 수유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열린 박 장로의 구순잔치에 모인 인사들의 면면은 문 목사와 박 장로의 삶을 짐작케 한다.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와 아들 장호근, 윤이상 선생의 딸 윤 정, 고은 시인, 이해동.김상근 목사, 함세웅 신부, 백기완 통일민족연구소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추모연대 박중기 의장, 전농 한도숙 의장, 한국진보연대 정광훈 공동대표,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자와 박영숙.손학규.이부영.이해찬.장영달.이인영.이영순 등 정치인들도 대거 자리했다.

문 목사와 박 장로를 그리는 사람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태일 열사의 모친 이소선 여사와 임기란 전 민가협 상임의장 등 민주화 운동에 직접 몸담았던 이들도 나란히 자리했다.

이소선 여사는 "독재 시절, 문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의지하고 그랬는데, 그때는 우리끼리 못 살 것 같더만..."이라고 문 목사를 그리며 "박 장로님이 구순까지 살아계시는게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오래 오래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통일과 민주화를 위한 가시밭길을 걸어 온 사람은 모두 문 목사와 박 장로를 한 몸과 같이 떠올린다. 박 장로의 구순을 축하하며 이날 아침 '늦봄길'이란 글을 써왔다는 고은 시인의 말이다.

"9월 8일 선언을 하나 하겠다. 박용길은 문익환이다. 문익환은 박용길이다. 마침, 두 분의 아호가 있지만, 문 목사님은 늦봄이시고, 또 박 장로님은 봄길이다. 해서 오늘 아침에 제가 글을 써왔다. '늦봄길'"

   
▲ 고은 시인이 이날 아침 직접 쓴 '늦봄길'을 펼쳐 보이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이마가 넓고 잘 생긴 얼굴이여서 눈에 띄었다"

박 장로는 문 목사와의 첫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 박 장로에게는 구순이 되어서도 '소녀 같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1938년 동경지역 한국 신학생들의 모임인 관동조선신학생회에서 문익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마가 넓고 잘 생긴 얼굴이여서 눈에 띄었다...(중략)...1944년 6월 17일 서울 안동교회에서 신학생 문익환과 결혼식을 올렸다. 처음에는 문익환이 건강이 나쁘다고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으나 6개월만 같이 살아도 좋다고, 문익환과 결혼할 수 없다면 평생을 전도사 일을 하며 독신으로 살겠다는 말에 아버지가 그럼 한번 다녀가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문익환의 건강진단서를 받아보고야 결혼을 승낙하시고 너무 기뻐서 결혼을 사흘 앞두고 약혼식을 치러주시고 결혼 후 만주 용정까지 동행하셨다."

1994년 1월 18일 문 목사가 세상을 떠난 뒤, 박 장로는 수유리 자택을 '통일의 집'이라 이름을 붙이고 문 목사의 유품과 사진, 자료들을 보관해 전시해 놓고 있다. '통일의 집'에는 故김일성 주석이 문 목사에게 주었다는 병풍과 북측에서 직접 수를 놓아 보낸 '최후의 만찬', 위문품 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물들과 문 목사가 처음 옥살이를 하게 됐던 1976년 3월 1일 민주구국선언, 89년 평양방문시 4.2공동성명 등 역사적 사건들이 액자로 고이 보관돼 있다.

1995년 방북해 故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기도 했던 박 장로는 2005년 6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마주하기도 했다. 문 목사와 박 장로에 대한 북측의 존경심을 가늠케 하는 대목. '통일맞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전하는 가장 최근의 일화이다.

"제가 장로님 모시고 금강산에 갔을 때 일인데, 그때 극장에 평양교예단이 공연을 하게 됐어요. 원래는 그날 공연을 못한다고 하다가 장로님이 오셔서 특별히 공연을 했는데, 끝나자마자 단원들 전체가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어머니'하고 부르는데, 언제 북에 딸을 만드셨나 했습니다.(웃음) 박 장로님, 민족의 어머님이십니다. 북이나 남이나 통일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로서 헌신으로 끌어주시길 바랍니다."

"눈만 감으면 그곳이 다 보인다"

   
▲ 박 장로가 문 목사의 시를 글로 옮겼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박 장로를 "쪼꼬망이"라 불렀다는 부친으로부터 서예를 배운 그는 문 목사가 생전에 남긴 시들을 미려한 필체로 옮겨 놓을 만큼 세월을 무색케 한다. '가야 할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간다'는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남북관계가 소원해 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통일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눈만 감으면 그곳이 다 보여요. 정말 통일이 다 된 기분이에요."

그는 현재 90년 생애를 고스란히 옮겨 놓는 자서전을 집필중이다. 구순에 90년 생애를 기록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을 터.

"대강 아웃라인은 해 놨지만, 90년 역사가 어디 쉽나?" 방대한 '역사'가 언제쯤 완성될 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 지인들과의 기념촬영.[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대안학교인 ‘늦봄 문익환 학교’ 학생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박용길 장로 구순 축하 한마디>
○ 이종린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제가 남쪽땅에서 살아오면서 제일로 부러운 사람이 바로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입니다. 왜냐 부부로 오로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평생을 바쳤고, 또한 그 자녀들이 현재 통일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마음 깊이 존경한다”

○ 이소선 여사 “구순까지 살아 계시는게 너무 감사하고, 문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독재 때 의지하고 그랬는데, 그때는 우리끼리 못 살 것 같더만... 앞으로 오래 오래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 임기란 전 민가협 상임의장 “박 장로님은 20년 동안 민가협 의장님을 하셨다. 대들보 노릇을 하셨다. 별 말씀이 없으셔도 늘 한 자리에 앉아계셨다. 요새 같은 뒤죽박죽 나라가 아니라 통일된 나라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사세요”

○ 함세웅 신부 “가톨릭 사제이기 때문에 나이가 어릴 때, 자식처럼 사랑해 주셨다. 함께 하신 모든 분들의 마음을 보아서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교회에서 여성으로 활동하시는 분들께 가장 아름다운 칭호가 교회 어머니이다. 박 장로님이 교회 어머니시고 민족의 어머니시라는 칭호를 드리고 싶다. 어머니로서 가장 아픈 마음, 큰 아드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다. 가슴 아파하는 어머니의 모습, 성모마리아와 같은 모습에서 박 장로님을 통해서 많은 간증을 얻었다.”

○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제가 장로님 모시고 금강산에 갔을 때 일인데, 그때 극장에 평양교예단이 공연을 하게 됐다. 그날 공연을 못한다고 하다가 장로님이 오셔서 특별히 공연을 했는데, 끝나자 마자 단원들 전체가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어머니'하고 부르는데, 언제 북에 딸을 만드셨나 했다. 박 장로님 민족의 어머님이시다. 북이나 남이나 통일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로서 헌신으로 끌어주시길 바란다. 장관이 되고 문 목사님 덕을 많이 봤다. 초창기 기념사업회 회장을 하고, 통일맞이 만들면서, 북쪽에 가서 기념사업회 회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단한 평가를 받았다. 박 장로님과 함께 평화통일의 날이 올 때까지 손 잡고 전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지난 세월은 험하고 무서운 세월이었다. 그럼에도 지금도 예쁘고 이쁜 것을 좋아하신다. 그런데 역사가 후퇴하고 있어서 상처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눈 한번 크게 뜨고 큰 걸음을 걸으면 다시 역사는 전진한다. 그 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란다.”

○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죽은 문호근이 친구다. 젊어서 같은 동네에 사셨고, 두 분이 함께 손 잡고 정답게 거닐던 모습이 기억난다. 문 목사님과 더불어서 박 장로님은 민족의 정신을 보여주는 분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 어렵게 사는 분들을 사랑하는 마음, 남북이 갈라진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온 몸으로 사랑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지금도 건강하시고, 사랑의 정신이 통일로 꽃 피어지리라고 기대한다.”

○ 오충일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이 시대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민주화의 길을 걸어 오신 분이 건강히 맑게 계시고, 자서전을 쓰는 것처럼 미래계획을 가지고 건강하게 용기를 가지고 있기에 더더욱 축하의 마음이 있다. 맑은 얼굴로 구순을 맞으시는 표정과 명석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보니, 이렇게 뜻을 가지고 강인하게 살아오면 세월도 늙음을 막지 못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경에 사람이 120살 까지 산다고 돼 있다. 120살까지 장수하시리라고 기대한다.”

통일뉴스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통일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