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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고졸 출신 책을 출간하다안성 '더아모의집' 송상호가 '문명 패러독스' 출간하다
송상호 기자 | 승인 2009.01.06 18:51

한 때 거세게 휘몰아쳤던 우리사회의 ‘학력위조 파문’의 폭풍이 지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사회는 학력이 중요한 사회다. 사실 유명 인사들의 학력위조 파문이 우리 사회에 아주 크나큰 이슈가 된 것만으로도 우리사회가 얼마나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인지를 반증해주는 증거라 할 것이다.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졸 학력으로서 대통령까지 된 이력 때문에 한때는 고졸학력자들이 어깨를 펴기도 했지만, 그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경우이었기에 학력 때문에 고민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던 사람들로선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학력위조 파문이 잠잠한 편인데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분란을 일으키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수 있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 자신이 세상에 자랑하고 싶어서다. 시골 촌놈이 책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 시골집 마당 가난한 시골집 마당이지만, 마을 아이들이 '더아모의집'에 놀러와서 '달고나 축제'를 벌이고 있다. 가난했던 전적이 오히려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강한 열정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 송상호
더아모의집

 

 

가난한 시골 노동자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나 가난이 늘 일상이었던 나는 어렸을 적엔 끼니가 없어 밥을 굶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컸다. 시골에 살면서 경작할 땅 한 평 없으니 농사를 지으면서 커지도 못했다. 그나마 부친께서 마을 산 쪽에 생애 최초로 우리 집을 짓고 살았던 것은 우리 집의 전설이었다. 거기에 노는 땅이 좀 있어서 배추, 상추 등 텃밭을 가꾸어 본 것이 농사를 지어본 유일한 경험이었다.

 

‘우리 집’이라고 하니 꽤 잘나갔나보다 하겠지만, 사실은 그 집이 소위 ‘무허가 건물’이었다. 가난한 시절, 국가 공유지에다가 살길을 찾아 지은 집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으로는 나의 부친이 집 문제 때문에 동사무소로 불려갔던 일, 철거하라는 통보를 받고 나의 부친과 모친이 의논하며 한숨 쉬었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집이었다.

 

이런 집안 형편이었기에 학창시절 나는 한 번도 수학여행을 가보지 못했다. 졸업 앨범도 없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1학년 밖에 다니지 못했다.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물론 후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사실 내가 부모님들에게 조르고 조르면 수학여행과 졸업앨범,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집 사정을 번히 아는 나로선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소위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게 화근이었다. 동생들은 어떻게든 수학여행을 갔고, 어떻게든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잘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나보다도 나의 모친이 그 일로 인해 평생 내내 마음 아파하셨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철이 들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바보 같았던 것이다. 계속 졸라서라도 수학여행을 갔고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했더라면 모친의 마음에 대못을 박지는 않았으리라.

 

그래도 그렇게 가난한 시절이 좋았다. 비로 무허가 건물이었지만, 그 집에서 우리 3형제와 부모님과의 추억은 차곡차곡 쌓여 갔다. 어쨌든 부모님들의 생애 최초로 월세 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송상호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문명 패러독스'를 출간한 가난한 고졸 출신의 사람 말이다.
ⓒ 강명희
송상호

 

 

 

 

하지만 그런 행복도 잠시. 내가 군대에 간 1991년도에 모친이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것도 야간 노동을 하시고 집에서 주무시다가 집이 무너져서 돌아가셨다. 91년도 8월 23일에 태풍으로 인해 당신들이 손수 만드셨던 집에 모친이 깔려 돌아가신 것이다. 부친이 태풍 때문에 심상찮아서 시나브로 뒷산을 올라가 사태를 지켜보다가 ‘이제 마지막으로 다시 살펴보고 심상찮으면 아내를 깨워서 대피시켜야지’라는 마음으로 뒷산으로 올라가는 찰나에 산사태가 덮친 것이었다. 부친은 야간노동을 한 당신의 아내를 좀 더 자게 하려고 미련(?)을 떨다가 자신이 지은 집에 아내를 묻어 돌아가게 하셨으니 얼마나 평생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런 부친의 마음도 모르고 돌아가신 모친 때문에 제일 힘들었던 것이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살았으니. 그날의 상처로 인해 날마다 술을 드시며 하루하루를 보내시던 부친을 향해 속상하다고 늘 투덜거렸으니. 그러던 아버지도 2004년 8월에 돌아가셨으니. 부친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좀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채 식기도 전에 그렇게 부친은 이 세상을 떠나 가셨던 것이다.

 

지금 안성 금광면에 사는 우리 집도 시골 흙집이다. 남의 집에 월세로 살고 있다. 안성으로 이사 와서 ‘더아모의집’을 하면서 3번이나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다.(관련기사 : “사라졌지만, 끝나지 않았다.”) 모두다 우리의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든 아픔의 경험들이 이제 내 속에 녹아서 책이 나왔다. 평생 살면서 책 한 권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 시골에 살면서 고졸 학력(목사 자격증은 한국의 대형교단의 신학교와 대학원 코스를 졸업해서 얻었지만, 여전히 국가공인 학력은 고졸이다.)으로 책까지 출간했으니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가난한 나의 이웃들은 마치 자신이 그런 것처럼 뿌듯한 것이다.

 

아마도 하늘에서 두 분도 흐뭇해하실 것이다. 어렸을 적 가난했던 우리 집에서  어쩌면 집안을 일으킬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던 나였다. 가난한 형편에서도 학교에서 공부는 잘했던 나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소위 줄곤 우등생이었고 800명 전교생 중 전교 10위권 안에 든 적도 있으니 부모님들이 그런 희망을 품을 만도 했었다.

 

누구보다도 16년 동안 나의 옆에서 고생하며 함께 걸어왔던 나의 아내가 정말 기뻐해서 나는 행복하다. 아내는 출간된 나의 책을 들고 다니며 아내의 주위사람들에게 책을 홍보하며 자랑하고 다닌다.

  
▲ 문명 패러독스 가난했던 어린 시절때문에 세상에 대한 불평과 고민으로 살았던 것이 원동력이 되어 이러한 책이 출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지금의 현대문명에 대한 불만이 예리한 의심과 깊은 사유로 승화되었다고나 할까.
ⓒ 송상호
문명 패러독스

 

 

“고졸이지만, 해냈다”던지 “고졸임에도 불구하고 해냈다”던지 하는 상투적인 문구를 들이대지 않아도 가난한 우리 집안 내력에서 보면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물론 그 책 한 번 써서 무슨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관련기사 : “나도 학력위조 했습니다”, "송상호 목사, '문명 패러독스 ' 책 냈다."

 

 

 

덧붙이는 글 | '더아모의집'은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이라는 뜻으로 '문명 패러독스'의 저자 송상호가 열어가는 집의 이름이다. 현재 안성 금광면 시골 마을 흙집에서 마을 아이들과 오손도손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으며, 2008년 12월에 인물과사상사를 통해 '문명 패러독스'를 출간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송상호 기자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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