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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된 은행나무 이야기
박철 | 승인 2006.03.26 00:00

   
어젯밤 꿈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나타나더니 나를 꾸짖듯이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신학교 동문회에 참석하여 일행과 함께 경기도 용문에 있는 용문사에 간 적이 있지요. 산행 길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또 경사도 완만했습니다. 또 우거진 숲 속에는 엊그제 내린 눈이 아직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찰 건물이 보일 즈음에 갑자기 내 눈앞에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가 나타났습니다. 나무가 어찌나 크고 우람한지 나는 그 나무쪽으로 걸어가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력을 설명하는 현판에는 그 나무가 1100살이나 된 은행나무라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너무 늙은 탓에 가지들이 자꾸만 땅으로 향하기도 하고 벌어지기도 해서 가지들끼리 쇠사슬로 묶인 채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 나무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내려왔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자연의 위대함을 만나서 그런지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고,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었지요. 그 때는 그저 좋은 구경을 했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나무의 모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눈으로 나무를 본 것은 채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그 나무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더욱더 이상한 것은 내 맘 속에 그려진 그 나무가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넌 왜 그렇게도 정신 못 차리고 있나? 내가 너라면…."


아무 생각 없이 실실 웃고 다니다가도 조용히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들려옵니다. 우연히 만난 노목(老木) 한 그루가 이토록 절실히 와 닿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깨어 살아가지 못하는 내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한밤중에 가로등이 꺼져 있으면 더 이상 가로등이 아니듯이, 나 자신에 대해서 깨어 있지 않으면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내 자신은 뛰고 있는지, 아니면 걷거나 기어가고 있는지…. 깨어 있지 않으면 나는 그저 껍데기 그리스도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예수라는 사나이는 그 나무처럼 계속 말씀하십니다.

"늘 깨어 있어라.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또한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무와는 달리 한 가지 잊기 쉬운 부연 설명을 붙여 놓으셨습니다. 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뇌물의 유혹을 늘 가지고 살아가는 이에게,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는 우리에게, 혼자 힘으로는 도대체 살기 힘든 우리에게, 적당히 타협하면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끈질기게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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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3월 23일(금) 부산일보 '나의 신앙, 나의 종교'라는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박철  pakcho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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