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 가지고 많이들 놀고 있다. 어떤 이는 민중신학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별로 하는 일없고, 어떤 이는 민중신학을 까부수는 일로 소일하며, 어떤 이는 민중신학을 붙들고 거기에 기대어 살고 있고, 어떤 이는 민중신학은 더 이상 필요 없어졌으니 얼른 떨쳐버리고 나오라고 손짓한다. 어떤 이는 관망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기회를 엿보고 있다. 어떤 인사는 민중신학이 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어허, 아직 살아있었네 하고, 어떤 인사는 그간 조용히 있다가 옆친구가 민중신학한다고 하니 함께 기웃거리다가, 사회적, 교회적 호응도 없고, 별볼일도 없다고 떠나 버린다.
   
대세는 역시 민중신학의 퇴조인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물러나고 있는 낡아빠진 신학을 그래도 아직까지 잡고 있는 (나와 같은) 얼빠진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어떤 자들인가?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는 얼간이거나, 옛날의 향수에 젖어 있는 장탄식하는 ‘우국지사’이거나, 아니면 다른 걸 할 줄 몰라서 어쩔 줄 모르고 남아 있는 무능력자일 것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민중신학을 붙들고 있으면 또라이로 오해받기 딱 알맞다. 그런데 그저 민중신학을 하겠다고 나서는 자(또라이)를 만나면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소위 민중신학자들은 민중해방이 어떻고, 민중이 누구일거라고 선언하며, 주객도식은 나쁜 거고, 민중은 고통당하고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고 한탄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민중신학이 석박사 논문 쓰기에 적합하긴 하다. 왜냐면 독창적인 주장들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열심히들 써서 학위라고 하는 계급장을 하나씩을 달고 다니고 있다. 그런 계급장이 있건 없건 너도나도 자기가 하는 민중신학이 최고이고 본질이라고 우겨대는 등 거의 신흥종교창시자들처럼 행세하는 자들도 없지 않다. 그러다가는 어느 새 그런 행적을 잊고 민중신학을 내팽개치고 언제 그랬었냐는 듯 행세한다.
 
죽재 서남동 목사 기념사업회와 안병무 기념사업회에서 보듯이 왜 이렇게 나뉘어저야 하는지 지금 지하세계에서 유리 방황하고 있는 이 두 분들에게 얼굴들 자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중 대다수가 마치 서, 안 두 어른의 직계요, 살아있는 대변자인 것처럼 처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민중신학으로 밥벌이 하고 있다. 
   
우리도 우리지만 바깥을 보면 더 가관이다. ‘민중신학이란 것이 있기는 한데, 그게 뭔가 부족한 것 같애’ 하면서 고개만 까딱거리면서 자기는 아무 것도 안 하거나, 결국 보수 신학, 서양신학을 반복하는 자들이 있다. 민중신학을 내리쳐야 유식한 것처럼 보인다고 착각하는 자들도 있다. 공부는 안 하면서 왜 그리 고개만 까딱 거리고 있는지. 민중은 이제 말하지 말고 시민을 말하자고 하면서 자신은 민중주의자들보다 합리적 개혁주의적인 것처럼 처신하는 자가 있다.

그런데, 예전에 민중신학으로 박사학위 한 사람들이 이제와서 민중신학을 외면하고 비판하고 있는 거는 또 뭔가? 소위 진보적 인사들은 자기가 민중신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신학은 끝난 거라고 강단에서 외쳐대는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한다. 민중신학을 쳐야만 자신이 높아지는가? 민중신학은 과거이고 자기가 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이고 동시대적이란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민중신학의 발상지인 데에서 이미 민중신학을 버렸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겠지? 대형 교회의 단맛이 그리워서인가? 아니면 그것에 이미 취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시류를 따르면 그리 좋다는 얘긴가? 서양의 것은 더 좋게 보이는가? 

이렇게 넋두리 하고 있는 난 뭐지? 너도 민중신학으로 박사받고, 돈벌어먹고, 이름내고(책도 내고), 까불고, 폼잡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와 당신들 모두에게 말할 수 있는 거 하나 있다. 민중신학을 그냥 놔두고 좀 작작 이용해 먹어라다. 그리고 민중신학을 그만 가만히 놔둬라다. 민중신학을 가지고 지멋대로 놀지 말자는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 민중신학을 떠나자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중신학이 더 이상 별 볼일 없다고 떠나갔다. 그리곤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버리고 간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각자 좀 양심껏 자기 분량을 해내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흩어지기도 하지만 모이기도 했으면 좋겠다. 각자 자기의 신학의 깃발을 올리는 거 좋은 일이지 나쁜 일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 안에 끊임없는 비판이 들어갈 수 있는 열린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열린 자세가 아니라 닫혀 있고 편협되어 있고, 그리고, 자기의 철학적, 형이상학적 기반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으면, 어디 민중의 숨소리가 그 속에 들리기나 하겠는가? 

사실, 외국에서보다 국내에서 민중신학을 먼저 용도폐기해 버렸다. 그러니 외국에서도 민중신학은 당연히 찬밥되지 않겠나? 그리고 민중신학을 너무나 자기 방식대로 들이대고 있어서 민중신학인지, 철학인지, 민중학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요즘 외국에서도 민중신학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면 더 이상 민중신학으로부터 듣고 배울 게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중신학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너무나 작은 것도 큰 문제다. 이 정도의 노력 가지고 어떻게 해외에 나갈 수 있겠는가? 이정도의 깊이 가지고 어떻게 국내에서 사회적 담론으로 설 수 있겠나? 집단적인 노력도 부족하다. 한국 교회도 이러한 노력을 도와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민중신학 전문 출판사도 없고, 연구소도 없다. 모여도 몇 사람 안 모인다.

우리는 많은 반성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땅에 민중운동과 민중신학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전통이 있고 우리에게 아직도 이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축하할 일이다. 우리의 선배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 놓은 전통이 있다는 것 축하할 일이다. 그 은덕으로 우리가 살아왔다. 이제 우리도 후배들에게 그러한 것을 남겨주어야 할 때이다. 민중신학을 놓고 갈라서지 말자. 서로 자기주장을 너무 많이 하지 말자. 그리구 열심히 살자. 열심히 민중 곁에서 고민하자. 살아있는 민중을 계속해서 살피고 함께 하자. 그리고 우리는 낮아지고 민중이 높아지도록 노력해 보자. 외로움을 느끼는 어느 날에 이런 넋두리를 해 보았다.

(이 글은 2009년 6월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있었던 민중신학대회에서 발표한 것을 약간 고친 것이다)    

권진관(한국민중신학회, 성공회대학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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