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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편지강정평화행진에 함께하는 한 목사 이야기
송영섭 목사 | 승인 2012.08.03 13:41
본 글은 필자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본지에서 사전에 필자의 동의를 얻어 본지에 게재하게 됐음을 알립니다. -편집자주-

 

   
▲ 송영섭 목사(기장, 제주노회 정의평화위원장)ⓒ에큐메니안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비도 그닥 뿌린 것 없이
마른 바람, 흙먼지만 하늘 땅 가득 뿌린 채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처음 목회가 지나갔습니다.
진리와 사랑...무엇 하나 드러낸 것 없이
마른 바람, 흙먼지만 하늘 땅 가득 뿌린 채
처음 목회가 지나갔습니다.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는 잠언의 말씀처럼,
진리도 사랑도 없는 흙먼지만 하늘 땅 가득 뿌린 채
처음 목회 9년 2개월이 지나갔습니다.

지난 2003년 4월 15일.
설레는 마음, 떨리는 가슴을 안고 시작한
제주 서림마을에서의 저의 목회여행이
엊그제 6월 17일 - 9년 2개월의 날을 뒤로하고
시간의 뒤편으로 흘러갔습니다.

아쉬움도 많고 부족함도 많았지만
그런대로 후회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받은 은혜도 헤아릴 수 없고,
맛본 기쁨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부터인가
예감한 그날이 가까웠음을 알았고,
설익은 땡감이지만
떨어질 때가 다가왔음을 알았습니다.

“때가 차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그 때가 찬 것을 감사히 여기며
아쉬움도 많고 부족함도 많았던
제주서림목회 9년 2개월을 마감하였습니다.

이웃 마을에 집을 빌었습니다.
조막마한 텃밭이 있는
15평 남짓의 자그마한 집입니다.

마당 한 켠엔 사랑채도 있습니다.
저는 이름하여 『오래된 풍경』이라 불러봅니다.
여름엔 습기, 먼지, 더위 가득하지만
겨울엔 추위, 바람, 그늘 가득하지만

강정평화벗들이 세 들어 있는 0.75평 옥방에야 감히 비길 수 있겠습니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신 주님의 처소를 생각하면 황궁입니다.
하여《오래된 풍경》이라 이름 해 보는 거지요.
풍경하나 걸리지 않고, 풍경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그래도 ‘풍경’입니다. 이름 하여 ‘오래된 풍경’입니다.

우리가 살던 그 곳, 우리가 돌아갈 그 곳
춥고 배고파도 오순도순 사랑하며 살던
자유, 평화, 그리움이 있던 곳
이름 하여 「오래된 미래」의 ‘오래된 풍경!’.

“승용차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달아나야 한다.
30평짜리 아파트에서 달아나
이전에 우리가 버려두고 떠나왔던 시골로 다시 돌아가서
15평짜리 작은 집을 짓고 살아야 한다.
가까운 데는 걸어 다니고 먼 곳은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달에 백만 원 들던 생활비는 50만 원으로 줄어들 것이다.
텃밭을 가꾸고 묵혀둔 논에 쌀농사를 지어
자기 먹을 것은 자기 손으로 농사짓고,
그리고 남는 시간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뜨개질, 바느질 예쁘게 하면서 살면 된다."
(권정생선생님의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 할 수 있다』중에서)

턱없는 소리인 줄 압니다.
조금 작은 집으로 이사 한 번 했다고
그런 턱 없는 꿈이 이루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턱없는 꿈을 꿉니다.
나도 그런 집에서
그렇게 일하고 어우러지며
그런 세상《오래된 미래》를 살아가는
그런 턱없는 꿈을 꿉니다.

   
 
지금 ‘강정마을평화대행진’을 함께 걷고 있는
제천 <간디학교 >아이들이 날마다 부르는 노래처럼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가네”

그래요, 그 아이들의 노래처럼
(주의 말씀을)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말씀을)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배운다는 건 그 분의 꿈을 꾸는 것
말씀을 가르친다는 건 오늘 이 땅에서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무슨 대책이 있는 것도
무슨 묘책이 있는 것도
무슨 뚜렷한 길이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어처구니없지만,
교회 같지 않은 교회, 목사 같지 않은 목사, 예수쟁이 같지 않은 예수쟁이를
그저 꿈꾸는 것뿐입니다.
무엇이 교회 같은 교회인지, 어떤 것이 목사 같은 목사의 모양인지,
도대체 오늘 이 땅에서 예수쟁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면서도
“그래도 이건 아니지...그래도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아,... 그래도 이건 정말 예수쟁이의 사는 모양이 아니지...” 싶은
그런 고민과 지울 수 없는 꿈 때문에
그런 꿈을 핑계로 9년2개월을 접었습니다.

자,… … 이제 모든 시간이 제 앞에 열려 있습니다.
무엇을 의지하여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물음 앞에
지난 1998년 무렵, 제 신학수업의 끝자락에서 드렸던
아니 제게 왔던 고백 한마디를 다시 새겨 붙듭니다.

“잠잠히 당신 소리에 귀 기울이며 따라가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이 주신 이 말씀도 가슴 깊이 꼬~옥 새겨봅니다.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태풍지난 뒤 곁에 또 다시 폭염’이라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러겠지요. 어디 가을이 태풍 한 번으로
거저 오겠습니까? 
또 다른 폭염과 또 다른 태풍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더 얻어맞으며
그렇게 가을은 시나브로
우리 곁에 드리우는 거겠지요.
그 길에서 어느 것은 낙과로 떨어지고
또 어느 놈은 실과로 자라나고
그리고 마침내 그 놈들 중 하나가
늦가을 홍시로
초겨울 마지막 남은 까치밥으로 남아
새 봄을 꿈꾸는 까아만 씨알하나 맺히는 거겠지요.

낙과면 어떻고 실과면 어떻고
또 늦가을 홍시와 까아만 씨알하나 맺히지 못한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어차피 그 모두가 하늘의 일이니
그 하늘 바라보며 한 생을 살아갔다면
그 자체로 행복하고,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 또한 그저 그럴 수 있기를 바랄뿐이지만요.

문득 
먼저 그 길 걸어가신 어느 선배님의 시 한 편이 떠오릅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도
 본디 제 맘이 아닌
 우주의 움직임!

 사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낙담하지 말라.
 그대 속에 그대보다 더 큰 숨이
 물결치고 있나니.
 그 숨결 속에 그대 삶을 묻으라! ”
 (허이[虛耳] 전생수님의 「순명(順命)」전문.)

언제나 그런 습관처럼,
저의 근황을 그래도 가까운 선후배 벗님들께는
알려드리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지...
싶어서 펜을 들은 것이
온갖 말들로 주저리주저리 말잔치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나마 한 달 반 만에
태풍을 핑계로 집에 들어앉아
태풍후의 게으름을 만끽하며 소식 전하여 봅니다.


부디, 모두들 계신 자리에서
“걸음마다 은총, 숨결마다 평화!”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 2012년 8월 2일, 제주 서녘 날외마을에서 지구별여행자 송영섭 두손모음 -

송영섭 목사  rivershea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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