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115명. 어느 누구의 딸, 아들, 남편이었을 그들과 일방적인 국가의 통보로 생이별을 한지 25년이 흘렀다.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KAL858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의 희생자들 이야기이다. 당시 정부는 ‘폭파 용의자’ 하치야 마유미(김현희)를 바레인에서 검거해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 15일 한국으로 압송했고, 1988년 1월 안기부는 KAL858기 사건이 ‘88서울올림픽 참가 신청 방해를 위해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하라’는 김정일의 친필 지령을 받은 북한 공작원 김현희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도 2007년 “북한 공작원에 의해 벌어진 사건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KAL858기 가족회와 시민대책위원회는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 사회를 맡은 윤원일 사무총장(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에큐메니안

이런 가운데 KAL858기사건 25주기를 맞아 11월 29일(목) 오전 11시 정동 프란치스코작은형제회 1층 성당에서 KAL858기 가족회와 KAL858기사건 시민대책위원회가 주최하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과 통일뉴스가 후원하는 <KAL858기사건 25주기 추모제>가 '거짓은 무너지고 진실만 남으리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이날은 KAL기 사건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강성주 박사의 논문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행사 전 이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김현희와의 공개토론회를 제안해 참석을 요구했지만 김현희의 불참으로 토론회는 무산되기도 했다.

▲ 인사말을 하고 있는 김정대 신부(KAL858기사건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에큐메니안

KAL858기사건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인 김정대 신부는 인사말을 통해 “2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권위적 정권하에 살고 있고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유족들과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며 앞으로 권위적인 정권을 바꿔 새로운 정권하에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과보고 "25년을 걸어온 길과 성과"(동영상)ⓒ에큐메니안

▲ 추도사중인 신성국 신부(KAL858기사건 시민대책위원회 집행부위원장)ⓒ에큐메니안

KAL858기사건시민대책위원회 집행부위원장 신성국 신부는 추도사를 통해 “남북분단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을 당했고 많은 생명이 희생당했다. KAL기사건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건이 있어왔다.”며 ‘KAL기사건의 본질은 전두환’이라고 규정했다. 신성국 신부는 “가족 여러분들의 땀과 정성이 있었기에 25주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 부모, 자식에 대한 사랑의 힘과 진실이 갖는 힘으로 진상규명의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12월에 있을 대선을 잘 치러 차기정부에서 진상을 밝힐 것을 당부했다.

▲ 박강성주 박사의 논문발표 "KAL858기 사건에 대한 학문적 관점"ⓒ에큐메니안

이후 <여성주의국제관계학, 소설쓰기 국제관계학, KAL858 ― 115번 죽어야할 처녀 테러리스트>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스웨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국제관계학자 박강성주 박사의 논문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강성주 박사는 자신의 논문을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의 관점에서 KAL858기 사건을 소재로 쓴 논문’이라고 소개하며 네 가지 항목 즉 안보, 젠더(gender), 고통, 진실의 항목들이 이 사건 속에서 어떻게 얽혀져 있는가를 말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박강성주 박사는 ‘안보는 남북분단관계에서 이 사건이 갖는 의미를 말하고 젠더는 김현희씨가 미모여성이라는 점에서 고통은 115명의 실종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김현희씨의 고통의 관점에서 마지막으로 진실은 이사건의 대한 진실이 있고 논란이 있다는 과정을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 박강성주 박사는 논문소개를 하기에 앞서 작년 12월 14일 스웨덴에서 논문을 쓰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을 느껴 자살까지 생각했던 힘든 과거를 회고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다시금 논문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들의 아픔이었다고 고백하며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했다.ⓒ에큐메니안

그는 논문의 제목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설명하면서 ‘여성주의’라는 것은 더 넓은 문제를 이야기 하는데 ‘몸에 새겨져 있는 경험을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낼 것인가, 고통의 문제를 풀어낼 것인가.’라는 물음은 여성주의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관점중 하나인데 이런 여성주의 관점을 통해 KAL기 사건을 조망했고 ‘소설쓰기’라는 것은 미스터리 혹은 소설 같은 이 사건을 상상력을 동원해 풀어내는 방법인데 박강성주 박사는 실제로 본인의 논문에 실종자가족과 김현희가 등장하는 소설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KAL858은 말 그대로 이 사건을 말한다고 설명했고 부제인 ‘115번 죽어야할 처녀테러리스트’는 1990년 신상옥 감독이 안기부 수사내용을 바탕으로 ‘마유미’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영화의 영어제목이 ‘처녀테러리스트’였고 어느 실종자 가족중 한분이 ‘김현희가 죽어야한다면 115번 죽어야한다.’다고 말한데서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김현희 본인의 입장에서는 가혹할 수 있지만 그 만큼 실종자 가족드르이 마음에는 그 만큼의 응어리가 쌓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박강성주 박사는 논문을 통해 실종자들의 고통을 개념화한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존재’를 제안하면서 25년간 쌓여온 실종자들과 가족들의 한을 이야기 했다. 그는 “시신을 봤다면 죽음을 받아 드릴 수 있지만 실종이기 때문에 죽음의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아 오히려 더 큰 고통 속에서 가족들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논문 집필과정에서 한국을 비롯한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에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비밀문서 중 하나를 소개했다. 그 내용은 1988년 1월 12일 서울에 있는 호주대사와 한국외무부관리의 대화가 담긴 호주의 문서였는데 당시 한국외무부관리는 호주대사에게 ‘김현희는 사형을 면하고 한국에 정착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전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김현희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가 나기 3일전에 그리고 김현희에 대한 재판이 끝나기 전에 이런 사실을 알렸다는 점이다. 박강성주 박사는 이러한 내용을 밝히며 이 사건에 대해 철저하고 전면적인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25주기 성명서를 발표하는 KAL858기 가족회 회원인 임경희 선생ⓒ에큐메니안

▲ 실종자가족들과 추모제 참가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에큐메니안

▲ 가족대표인사말 차옥정 회장ⓒ에큐메니안

이후 김현희와의 공개토론을 예정했지만 예상대로 김현희의 불참으로 토론회는 무산됐고 KAL858기 가족회 회원인 임경희 선생의 성명서 발표 후 참가자들의 헌화와 가족회 차옥정 회장의 인사말로 행사를 마쳤다. 차옥정 회장은 “25년 전 KAL기가 실종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들은 숨을 쥐어짜는 기분이었지 단 한 번도 통쾌한 적이 없었다.”며 그래도 끝까지 싸워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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