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하여”

(사무엘상 7장 2-14절)

신연식 목사

<잊어버림, 망각(忘却)>

2013년 새해를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거의 반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새해를 시작하시면서 세운 계획이나 다짐들 모두 잘 이루고 계신가요? 새해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한해를 어떻게 살지 계획하고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한해의 약속들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와 약속을 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바쁜 일상과 하루하루의 현실을 살다보면 한해의 다짐들은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간혹 시간이나 여유가 되지 않아서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잊어버리기’ 때문에 지키지 못합니다. 그만큼 마음에 담아두고 기억하여 꾸준히 지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작심삼일이 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한해의 다짐뿐만 아니라 잊어버리고 사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처럼 때로 자신의 어려웠던 시간들을 잊어버리고 자만하게 살기도 하고, 하나님과 주위 많은 사람들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온 정성을 다해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마저 잊어버리고 부모님께 함부로 대할 때도 많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직분과 직책을 맡을 때는 온 맘을 다해 헌신하겠다고 결단하지만 그 뜨거움은 어느새 잊혀져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서원하며 드렸던 그 기도도 어느새 금방 잊어버리고 내가 원하는 것대로, 내 고집대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을 ‘망각(忘却)의 동물’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구약성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잊어버리고 망각(忘却)하는’ 문제는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억압받는 이들을 구원하여 친히 자기 백성으로 삼아 보살피시려고 그와 계약(약속)을 맺고 끊임없이 다가가시는 하나님과 달리, 그 계약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린 채 끊임없이 다른 곳에 한눈을 팔 듯 왔다갔다를 반복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앙고백이 바로 구약성서 안에 나타나는 주요한 주제입니다. 구약성서의 큰 흐름을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로 본다면 그 안에 일렁이는 작은 물결들은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잊어버리고 망각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이스라엘의 범죄, 이를 바로 잡으시려는 하나님의 심판, 잘못을 뉘우치고 부르짖는 회개, 그리고 다시금 구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이러한 주제와 구도는 구약성서 전체를 통해 나타나지만 구원→범죄→심판→회개→구원이라는 구도를 아주 뚜렷하게 살펴볼 수 있는 본문은 바로 사사기입니다. 여러 사사들의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큰 주제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를 범하는 이스라엘이 심판-회개-구원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죄와 심판 - 하나님을 떠나>

오늘 함께 읽은 사무엘상의 본문은 사사시대에서 왕조시대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사사로 불리는 사무엘에 관한 본문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사사기와 마찬가지로 범죄-심판-회개-구원이라는 구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본문을 볼 때는 구절이나 부분만 떼어 읽기보다는 이러한 구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을 이루시는지,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 무엇을 말하는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말씀의 핵심은 본문의 구도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와 심판, 회개와 구원이라는 주제를 내 삶에 비추어 생생하게 느끼고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인 7장은 하나님을 향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앞서 이전 본문들을 보면 이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많은 사람들이 들판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역시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나는 언약궤도 빼앗겨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당했습니까? 사무엘상 2장 12절에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하나님을 무시했다(새번역)”고 말하고 있는데 실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가로채고 빼앗는 일들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가장 거룩하게 지키도록 해야 할 제사장 가문이 오히려 훼손하고 파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신앙을 왜곡하는 큰 죄를 지은 것이지요.

이스라엘의 범죄가 비단 엘리의 두 아들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인 7장 3절을 보면 “여러분이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 여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님께만 마음을 두고 그분만을 섬기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엘리와 두 아들들뿐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기 때문에 심판이 임했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종교에서 바알은 땅의 주인이자 비를 주는 존재로서 모든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신, 즉 만물을 소생케하는 풍요의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아스다롯은 젊은 여신으로 전쟁을 담당하는 신이었으며, 성적인 정열을 가진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은 늘 함께 등장하는데 바알이 남신으로 풍요를 상징한다면 아스다롯은 전쟁에서의 승리, 즉 안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풍요제의는 풍요와 안전을 상징하는 두 남녀 신을 대신해서 사람들이 성적인 결합을 하는 방법으로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성적 결합을 통한 풍요나 전쟁을 통한 안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 종교는 겉으로는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지만 실제로 풍요를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치거나 성을 도구화하여 생명을 파괴하고 전쟁을 통해 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거나 다른 이들의 안전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신앙은 어떻습니다. 온 생명을 만드시고 먹이시고 보살피시어 생명을 유지시키는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이며, 억압받고 노예 생활하는 보잘것없는 이들을 구원하시어 계약을 맺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는 그런 사랑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신앙과 바알신앙은 절대로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신앙이 바알신앙에 혼합되어 왜곡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셨고 이를 어기고 하나님을 떠날 때는 심판을 통해 깨닫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가나안 종교와 같이 샤머니즘의 가까운 유혹들이 없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풍요롭게 살고 싶고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하나님을 따르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면 주의하셔야 합니다. 나를 내어주는 사랑과 희생, 섬김과 나눔, 하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이 나의 풍요와 안전, 평안과 윤락한 삶으로 인해 망설여진다면 이미 바알신앙의 유혹이 여러분 앞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먹이시고 보살피시며 나를 구원하는 분이라는 믿음을 가져야지 나 스스로 풍요롭고 안전한 삶을 누리기 위해 애쓰다보면 하나님 신앙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맘몬의 욕망은 가랑비가 스며들 듯이 우리를 적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거부하고 나 혼자 풍요롭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유혹을 조심하십시오.

<회개와 구원 - “슈브”>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3절을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할 것을 요청합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오직 주님만을 섬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오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슈브”라고 하는데 구약성서에서 아주 중요하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돌아오다.’ ‘돌이키다.’ ‘돌아서다’라는 말이 바로 회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가 회개를 생각하면 고해성사와 같이 잘못을 고백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원래 성서에 나타난 정확한 의미를 살펴보면 회개는 하루하루의 일상의 잘못을 고백하는 정도가 아니라 바울의 회심과 같이 아예 돌아서서 가는 방향을 전환하는, 즉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네가(이스라엘) 슈브(돌아오면)하면, 내가(하나님) 슈브(심판을 돌이키겠다)하겠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오면, 하나님이 돌이켜 심판을 멈추고 구원하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스다롯 신상을 버리고 미스바를 향하여 모입니다(5절). 금식을 하고 물을 길어 제단에 쏟아 부으며 하나님께 간절히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6절) 그런데 많은 사람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이 공격해옵니다. 더 이상 전쟁의 여신 아스다롯을 향하여 안전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8절) 바로 그 때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납니다. 전쟁을 하기위해 무장을 하고 온 블레셋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비무장된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지만 오히려 패하여 쫓겨 갑니다. 이스라엘의 안전은 전쟁의 여신 아스다롯이나 강력한 무기나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며 보호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본문에서 드러납니다. 사무엘이 고백합니다.

“우리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그리고 그곳에 돌을 세워 에벤에셀이라고 지었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싸움에서 승리한 에벤에셀이 바로 예전에 블레셋에게 패배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고 언약궤를 뺏겼던 그곳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아스다롯과 자신의 힘으로 싸우다 패배한 그곳에서 무기를 내려놓고 예배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 한분임을 선포하는 사건이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범죄와 심판, 회개와 구원이라는 구도를 통해서 본문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사기에서 이러한 구도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다만 범죄의 유혹에 나약한 인간(이스라엘)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계약을 지키고 이행하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신명기 정신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6장 12-13절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개역개정)”는 말씀처럼 가장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구원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1993년 강남향린은 이 시대에 정말 교회다운 교회, 야훼신앙이 살아 숨 쉬는 교회, 예수의 얼굴을 제대로 그리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 쪽박 차는 길로 나섰습니다. 때때로 갈 길을 잃고 서성거리기도 했고 온갖 갈등으로 힘겨워하기도 했습니다. 살을 떼어내는 분가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예수의 얼굴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강남향린은 사춘기를 지나 20살의 성년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힘들고 어려운 나날들이 있었지만 돌이켜 보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다시금 새로운 기로에 서있습니다. 새로운 꿈을 향해 한걸음 내딛어야 하는 이 순간 우리는 야훼 하나님을 향해 서서 사랑의 공동체로 모이던 첫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늘 우리를 유혹하는 풍요와 성장, 안락과 평안의 유혹을 걷어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다시금 도약해야 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굴하지 말고 꿋꿋하게 강남향린의 새로운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

<기억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서라!>

시인 정채봉님의 시 중에 첫마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주로 새해를 시작하며 많이 읽게 되는 시인데 오늘 말씀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적어왔습니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던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 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하나님을 만난 첫 자리, 첫 마음이 기억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절절히 경험했던 첫 사랑이 기억나십니까? 교우 여러분! 하나님과 만남을 통해 경험했던 그 첫마음을 늘 가슴깊이 새겨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정채봉님의 시처럼 여러분의 신앙은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롭고 깊어지며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때때로 찾아오는 안전과 평안, 풍요와 안락한 삶의 유혹으로부터 늘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유혹은 금세 죄로 스며들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이시대의 바알과 아스다롯이 되어 여러분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이러한 유혹들이 여러분을 지배하려고 든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슈브’ 돌아서십시오.

교우 여러분!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만을 기억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매순간 우리의 생명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은혜와 감사가 여러분의 삶에서 넘쳐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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