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테 콜비츠(1867~1945),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 (1924, 분필과 붓 석판화로 만든 포스터, 94×68.5cm). 콜비츠는 라이치히의 사회주의 노동자 청년단의 의뢰를 받아 이 포스터를 제작하였다.
▲ 케테 콜비츠(1867~1945),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 (1924, 분필과 붓 석판화로 만든 포스터, 94×68.5cm). 콜비츠는 라이치히의 사회주의 노동자 청년단의 의뢰를 받아 이 포스터를 제작하였다.

예술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 예술에 이르는 행위에는 예술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책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자신이 참관한 오페라 리허설 이야기를 소개한다. 출연하는 가수와 무용수와 관현악단, 그리고 제작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감독이 지휘 아래 같은 장면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거친 언사를 사용하였고, 사람들은 모욕을 감내하여야 했다. ‘예술을 위해서’이다. 감독의 거친 지휘와 모욕적인 언사가 그렇고, 모멸감을 참아가면서 오페라의 완성도를 높이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묻는다. “이것이 예술이고, 예술은 그런 희생을 치를 만큼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가?”

그렇다면 예술이 다른 목적성을 갖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예술의 일차적 목적 이외에 특정한 가치나 이념, 또는 사회적이거나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는 ‘예술의 타율화’의 경우도 과연 예술의 순수함은 유지될 수 있을까? 예술이 어떤 목적성을 갖는 일은 예술사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 등장한 다다이즘(미주 1)만 해도 반예술적 태도로 사회 체제를 비판하였다. ‘다다’(프, dada, 장난감 목마)는 소아적 언어로 무의미를 표방하여 기존 예술을 부정하는 반이성, 반도덕, 반예술의 방향성을 갖는다. 이를 아방가르드(프, avant-garde, 전위대)라고 하는데 예술 ․ 문화 ․ 사회 전반에서 규범의 경계를 허무는 일체의 작업과 그렇게 활동하는 작가를 말한다. 다다이즘에서 시작하여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의 순으로 이어지며 모호성과 역설, 그리고 비인간화라는 특성을 갖는다.

노동자 입장에서 예술을 보는 1920년대의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 역시 그렇다. 일제의 식민 지배 아래 있던 시절에 계급 타파의식은 민족 해방과 더불어 지식인과 청년층에 확산되었다. 이는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사회주의 사상의 한반도 유입을 의미하기도 한다. 1925년 8월에 박영희, 임화, 정지용, 최서해 등이 중심되어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가 결성되었다. 문학을 통한 계급 해방 운동은 김동인 등으로 대표되는 순수문학과 대립하며 노동자와 농민의 각박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카프는 1935년에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 해산되었지만 문학을 예술로서가 아니라 사회 변혁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긍정, 또는 부정의 논란 여지가 있다. 특히 사회주의 리얼리즘(미주 2)은 예술을 혁명의 도구로 삼아 노동자 계급의 의식을 고양 시키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예술은 예술 자체로서의 목적이 있다. 이를 ‘예술 자율론’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편에는 ‘예술 타율론’, 또는 ‘예술 수단론’이 있다. 전자는 형식과 조화와 기법 등 예술 자체의 가치를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주제와 내용과 사회․윤리적 기능을 우선한다. 인상파처럼 자율성에 터한 예술 꼴이 있고, 계몽주의에 경도된 러시아 이동파 미술의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단념한 아방가르드가 있고, 권위주의 사회에서 호황을 누리는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미술)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가 어릴 때 경험한 반공이나 불조심 포스터도 프로파간다에 해당한다. 독일 화가 케테 콜비츠(1867~1945)처럼 전쟁을 반대하고 그 참상에 저항하면서 평화의 가치를 알리는 반전 미술 역시 이 범주에서 생각할 수 있다. 예술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순수 가치에 흠집을 내어 인간 소외를 부추기면서도 예술을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공감과 소통의 도구로 삼으며 치유의 힘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예술을 통하여 자신들의 교회를 보호하고 교리와 정통을 강조하려 하였다. 그런 시도가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는 차치물론하고 그 효과에 대하여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혁명과 정치로만 사회를 혁신하지 않고 예술도 사회 발전의 수단이라는 점은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동시에 예술의 자율성을 상실한다거나 복잡한 인간 현실을 단순화한다는 점, 감동보다 교훈적 설교에 머무른다는 점, 예술을 진리 탐구의 수단이 아니라 특정 이념의 테두리에 가둔다는 점에서는 우려도 있다. 수단화된 예술은 미학적 깊이를 잃고 자유로운 감성과 상상력을 상실케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로마가톨릭교회가 트렌트공의회를 통하여 시도하려는 바로크 미술의 전도가 궁금하다.

미주

(1)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중에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문명, 반합리성에 바탕을 둔 허무주의 예술운동이다. 이 운동은 전쟁의 파괴와 허무함에 대한 증오와 냉소를 바탕으로, 기존의 모든 예술, 문화, 이성적 가치를 부정한다. 비합리성, 우연성, 일회성, 도발성을 강조하며, 기존의 예술 형식에 도전하고 예술의 파괴를 주장했다. 마르셀 뒤상의 <샘>(1917)이 대표적이다.
(2) 사회 현실을 사회주의 관점에서 인식하여 인민성과 계급성, 그리고 당파성과 혁명적 낭만주의에 터한 창작 활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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