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종교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개인이 삶의 의미를 스스로 구성해야 하는 실존적 부담입니다.”
김학철 교수(연세대)는 11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교내 성미가엘성당에서 열린 ‘2025 국내학술대회’ 기조강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또한 “과거 종교가 제공했던 거대 서사가 부재한 시대, 기독교교양학은 삶의 의미 문제에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주최로 ‘탈종교 시대, 신학의 얼굴들’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종교가 사회의 규범적 의미 체계로서 기능을 상실한 오늘, 신학이 어떻게 공적 책임을 새롭게 감당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탈종교 시대는 실존의 공백기” — 삶의 의미를 묻는 신학의 과제
김 교수는 탈종교 시대를 “종교가 사회의 중심에서 물러나고, 개인이 스스로 삶의 의미를 구성해야 하는 시대”로 정의했다. 그는 “의미를 찾는 일은 더 이상 신학의 내부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의 문제”라며, 기독교교양학이야말로 ‘의미 상실 시대의 신학적 응답’이라고 말했다.
그는 먼저 ‘삶의 의미’를 둘러싼 철학적 논의를 객관주의·주관주의·절충주의로 구분했다.
• 객관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 아퀴나스의 지복직관, 칸트의 최고선처럼 인간 밖의 보편적 목적에 의미의 근거를 둔다.
• 주관주의: 해리 프랑크푸르트의 ‘사랑’, 레이몬드 벨리오티의 ‘관심’처럼 개인의 내면적 열정에서 의미가 생성된다고 본다.
• 절충주의: 수전 울프가 말하듯, “강한 주관적 몰입이 객관적 가치를 가질 때” 진정한 의미가 생긴다.
김 교수는 “삶의 의미는 단순한 감정적 만족이 아니라, 타자와 세계 속에서 자신을 넘어서는 가치 참여로 완성된다”고 정리했다.
허무주의의 도전, 그리고 의미의 재발견
그는 의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허무주의를 탈종교 시대의 대표적 현상으로 꼽았다.
“신적 근거가 사라지면 인간은 무의미의 심연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며, 의미는 실천 속에서 다시 갱신된다.”
김 교수는 이 점에서 “허무주의를 반박하는 데 머물지 말고, 그 너머에서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신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기 초월의 욕구, 인간의 본능적 신학
김 교수는 삶의 의미를 “삶을 지속하게 하는 가치를 실제로 실행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는 현대 심리학의 욕구이론을 언급하며, 인간은 단순한 자기실현을 넘어 자아 초월(self-transcendence)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분석했다.
“자기 초월은 인간이 더 큰 가치에 응답하려는 본능이며, 그 지점에서 신앙과 인간학이 만난다.”
그는 이 ‘초월의 욕구’야말로 신학과 현대인의 대화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교차점이라고 말했다.
기독교 신앙, 의미의 언어를 회복시키는 네 가지 자원
김 교수는 기독교 신앙을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풍부한 문화적 상징 체계”로 제시했다. 그가 제안한 네 가지 신학적 자원은 다음과 같다.
• 삼위일체 – 우주의 근원에 사랑과 관계, 연대가 있음을 고백하며 의미를 공동체 속에서 발견하게 한다
• 창조 – 혼돈과 무의미를 질서와 가능성으로 바꾸는 창조적 참여의 신학
• 십자가와 부활 – 절망과 실패 속에서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여는 ‘의미의 부활’
• 임마누엘 신앙 –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개인의 삶에 질서와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 네 가지 신앙의 언어는 단순한 교리 해설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하는 상징적 언어이자 영적 자원”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기독교교양학, 신학의 공적 얼굴로
강연을 마무리하며 김 교수는 “기독교교양학은 종교적 교양 과목을 넘어, 인간 실존의 질문에 응답하는 공적 장(場)”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랑·연대·가치 실행·긍정의 구조는 비기독교인에게도 삶의 의미를 성찰할 수 있는 실질적 자원입니다. 대학 교양교육의 목표가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주체를 기르는 데 있다면, 기독교교양학은 그 중심에 서야 합니다.”
그는 기독교교양학을 “탈종교 시대 신학의 공적 얼굴”로 규정하며, 신학이 다시금 삶의 현장에서 의미를 창조하는 실천적 지식으로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