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1월 6일, 미국 의사당 앞에서 ‘JESUS SAVES’(예수는 구원하신다) 피켓을 든 참가자가 트럼프 지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 날의 폭력 사태는 ‘기독교 민족주의’와 정치적 극단주의가 결합한 대표적 장면으로 기록된다. ⓒNPR
▲ 2021년 1월 6일, 미국 의사당 앞에서 ‘JESUS SAVES’(예수는 구원하신다) 피켓을 든 참가자가 트럼프 지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 날의 폭력 사태는 ‘기독교 민족주의’와 정치적 극단주의가 결합한 대표적 장면으로 기록된다. ⓒNPR

지난 글에서는 미국 복음주의 극우 담론이 ‘가정·학교·신앙의 자유’라는 일상 언어로 재포장되며, 신앙이 정치적 정체성의 표현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살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연장선에서, ‘신앙의 정치화’가 어떻게 ‘정치의 신성화’로 전환되었는지를 다룬다. 특히 트럼프 시대 이후 복음주의 내부에서 등장한 종말론적 민족주의와 ‘거룩한 전쟁’의 언어를 중심으로, 신앙이 음모론과 결합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오늘날 미국 복음주의 극우는 단순한 정치 집단이 아니라 ‘신학적 정체성 운동’이다. 그들은 국가와 구원을 동일시하고, 신앙을 정치적 예언으로 대체한다. 이는 신앙이 현실 비판의 언어를 잃고, ‘하나님의 뜻’을 명분으로 세속 권력을 정당화하는 지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이후, 신앙의 정치화가 ‘성전’이 되다

2016년 트럼프의 등장은 단순한 정치적 돌풍이 아니었다. 복음주의 진영 내부에서는 그를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로 호명했다. 그의 당선은 “악으로부터 미국을 구하기 위한 신적 개입”이라는 해석이 퍼졌다. 특히 2020년 대선에서 패배가 확정된 이후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설교가 전국 교회에서 울려 퍼졌다.

그 중심에는 ‘도미니언주의(Dominion Theology)’가 있었다. 창세기 1장의 “땅을 정복하라”는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해, 신자가 정치·경제·교육 등 사회 모든 영역을 지배해야 한다는 신학이다. 이 사상은 미국 복음주의 극우의 정치 참여를 신성한 사명으로 바꾸었다. 선거는 더 이상 시민의 행위가 아니라 ‘영적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도미니언주의는 또한 ‘기독교 민족주의(Christian Nationalism)’의 핵심을 형성했다. 그들은 미국을 “하나님이 세운 마지막 성전 국가”로 상정했고, 세속적 정부는 사탄의 도구로 간주했다. 따라서 정치적 충돌조차 신앙의 전투로 번역되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의 다원성은 타협의 언어가 아니라 ‘배교의 언어’로 전락했다.

트럼프 집권 이후 백악관 기도 모임과 복음주의 자문위원단은 신앙과 국가 권력이 공식적으로 결합하는 공간이 되었다. 성서 구절은 행정 명령의 수사로, 기도회는 정치 집회의 서막으로 쓰였다. 신앙의 상징이 권력의 상징으로 변모하면서, 복음주의는 ‘도덕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적 군대’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신앙은 도덕적 성찰의 장이 아니라, 정치적 동원과 정체성 결집의 장으로 전환되었다.

QAnon과 음모론의 신학화

트럼프 이후 복음주의 극우가 보여준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음모론의 신학화’이다. 이를 이끄는 중심 동력이 바로 QAnon(Q Anonymous) 운동이다. QAnon은 2017년 미국 인터넷 포럼 ‘4chan’에서 시작된 익명 음모론 네트워크로, 이후 8chan(현 8kun)으로 이동하며 급속히 확산되었다.

QAnon에서 Q는 ‘Q Clearance’(큐 인가 등급)에서 따온 말로 보인다. 이는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DOE)가 핵무기·핵물질 관련 최고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인물에게 부여하는 보안 등급이다. CIA나 NSA의 Top Secret과 범위는 다르지만, 핵무기 관련 자료에 접근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민감한 인가 중 하나이다.

QAnon을 처음 시작한 익명의 게시자는 자신을 “정부 핵무기 기밀에 접근 가능한 고급 공무원”이라 주장하며 ‘Q’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Q Clearance 보유자를 자처함으로써 ‘내부자 정보’라는 신뢰성을 가장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Anon은 Anonymous(익명자)의 줄임말이다.

QAnon의 핵심 주장은 ‘정부 내 비밀 엘리트 집단이 아동 인신매매와 악마 숭배를 통해 세계를 지배한다’는 음모론적 서사다. 2018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 직전부터 팬데믹 초기 사이에 절정에 달했는데, 이 서사는 복음주의권으로 빠르게 유입되었고, 종말론적 신앙과 결합해 종교적 정당성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여러 교회 집회에서 QAnon식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 담론을 선포하면서, 음모론은 복음주의 내부에서 사실상 신앙의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음모론적 신앙은 곧 ‘예언운동(Prophetic Movement)’을 통해 구조화되었다. 스스로를 “하나님이 부른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등장해,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트럼프의 재선을 ‘하나님의 뜻’으로 선포했다. 예언이 틀렸음이 드러난 이후에도 많은 신자들은 “하나님의 시간표는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고 답했다. 이 단계에서 신앙은 사실 검증의 언어가 아니라, 확신의 회로로 닫힌다.

그 결과 QAnon은 단순한 인터넷 음모론을 넘어 ‘정치적 신앙운동’으로 성장했다. 교회 안에서 음모론은 더 이상 세속적 허위가 아니라 ‘영적 분별’의 문제로 간주되었고, CNN이나 뉴욕타임스의 보도보다 텔레그램 채널과 유튜브 설교가 ‘진리의 통로’처럼 받아들여졌다. 진리의 개념 자체가 탈진실(post-truth)의 신학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ReAwaken America 집회에서 참가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플린은 QAnon식 ‘영적 전쟁’ 담론을 교회 집회에 적극 도입하며, 음모론의 신학화를 이끈 대표적 인물로 평가된다. ⓒAP
▲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ReAwaken America 집회에서 참가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플린은 QAnon식 ‘영적 전쟁’ 담론을 교회 집회에 적극 도입하며, 음모론의 신학화를 이끈 대표적 인물로 평가된다. ⓒAP

종말론과 민족주의의 융합

이 신앙 구조의 또 다른 축은 ‘Dispensationalism(디스펜세이셔널리즘, 세대주의)’이다. 성서의 시대 구분을 종말의 시간표로 해석하는 이 사조는 20세기 초부터 미국 복음주의에 깊게 뿌리내렸지만, 트럼프 시대 들어 정치적 형태로 부활했다.

이 신학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미국의 부흥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맞물려 있다”는 신념을 낳았다. 그래서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을 이전했을 때,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졌다”고 선언했다. 그 순간 정치 행위는 곧 신학적 사건이 되었다.

문제는 이 종말론이 정치적 배타성과 쉽게 결합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윤리적 공동체가 아니라, “악으로부터 보호받는 선택된 민족의 영토”로 상상되었다. 종말의 두려움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신학적 정당화로 기능했다.

이 종말론적 민족주의는 ‘백인 복음주의’의 중심 서사로 작동했다. 이민자와 소수자, 젠더 평등 운동을 “말세의 징조”로 규정하고, 이들을 배제하는 행위 자체를 ‘하나님의 질서 수호’로 해석했다. 신앙은 포용의 언어에서 구획의 언어로 퇴행했다.

미디어, 교회를 대체하다

복음주의 극우의 확산을 가능케 한 또 다른 축은 ‘미디어 교회화’다. 1990년대 이후 케이블 방송을 통해 성장한 텔레방송 설교(tele-evangelism)가 유튜브, 팟캐스트, SNS로 이동하면서 신앙은 완전히 개인화·알고리즘화되었다.

이 새로운 매체 환경에서 신앙은 더 이상 ‘공동체의 해석 행위’가 아니라 ‘개인적 소비 행위’가 되었다. ‘좋아요’와 ‘구독’은 곧 신앙의 표지가 되었고, 클릭 수는 신적 권위의 지표로 기능했다. 유튜브 설교자는 교단의 검증을 받지 않아도 수십만 명의 추종자를 모을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정치적 선동은 곧 영적 각성으로 포장되었다.

‘디지털 교회’는 교리적 토대보다 감정적 공명을 중심으로 작동했다. 그 결과, 신앙의 내용보다 신앙의 감정이 우선시되었다. “나는 분노한다, 그러므로 나는 믿는다”는 정서가 신앙의 동력이 되었다. 정치적 분노는 신학적 정열로 변모했고, 알고리즘은 그 확신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복음은 더 이상 ‘기쁜 소식’이 아니라, ‘적에 대한 선전’의 언어로 변했다. 온라인에서 퍼지는 영상 설교와 음모론적 뉴스, 그리고 종말론적 예언이 하나의 종합된 내러티브로 결합했다. 미디어는 설교의 확성기이자 신학의 편집자가 되었다.

▲ 2022년 ‘ReAwaken America’ 집회에 참여한 신자들이 두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 이 집회는 복음주의 예배 형식을 차용한 정치 집회로, 종교적 열광과 정치적 선동이 결합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AP
▲ 2022년 ‘ReAwaken America’ 집회에 참여한 신자들이 두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 이 집회는 복음주의 예배 형식을 차용한 정치 집회로, 종교적 열광과 정치적 선동이 결합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AP

한국 교회의 그림자

이러한 흐름은 한국에서도 빠르게 수용되었다. 일부 대형교회와 유튜브 설교자는 ‘종말의 징조’, ‘동성애 독재’, ‘하나님 나라의 적’이라는 수사를 차용하며, 미국 복음주의 극우의 담론을 그대로 모사했다. 정치적 갈등은 영적 전쟁으로 번역되고, 국가 정체성은 신앙의 순수성으로 동일시되었다.

유튜브 중심의 종교 생태계는 특히 그 확산력을 높였다. 특정 목사들의 설교가 실시간으로 수십만 조회수를 넘기며, “이 시대의 선지자”로 추앙받는 현상이 반복된다. 그 언어는 대개 미국 복음주의의 문장을 번역한 것이며, 트럼프식 음모론과 ‘한국적 민족주의 신앙’이 결합된 형태다.

한국의 극우 개신교가 미국 복음주의 극우를 단순히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만의 ‘신정정치적 복음주의’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특정 정치 세력을 하나님의 뜻으로 동일시하고, 사회 변화를 신앙의 위협으로 간주하는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진리를 수호하는 전쟁’이 아니라, ‘진리를 해석하는 용기’다. 신앙이 정치의 무기가 되지 않기 위해, 교회는 먼저 자기 언어를 성찰해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음모론적 신앙의 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공적 신학의 언어’, 즉 민주주의와 신앙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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