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3장 1∼9절
“덤으로 삽니다”
이종철 (목사, 빛과생명 교회, 신약학)

비유가 좀 이상하다. 포도원에는 포도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런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6). 그렇지만 사실 당시에는 이런 일이 흔했다. 포도원에 포도나무만 심지 않고 다른 과일 나무들도 섞어 심었다. 이 비유를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 하여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의 비유’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며 오히려 이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고 하심으로써 은연중 비유의 숨은 의도를 드러내고 계신다. 이 비유는 원래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선택받은 것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포도원에 심긴 무화과나무

포도원은 원래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겨져야 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정통 이스라엘이 아니라 버림받은 죄인과 세리들이 심겨졌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이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현상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감람나무에 비유하여 설명한 바 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롬11:17) 이스라엘은 참감람나무이다. 그런데 그 가지가 꺾이고 돌감람나무가 대신 접붙임되었다는 말씀이다. 돌감람나무는 이방인들을 의미한다.

이런 비유들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혜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졌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끝까지 싸워야 할 것은 바로 이 당연하다는 의식이다.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도, 내가 누리게 된 축복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망 또한 생긴다.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의 반대는 감사이다. 감사는 이 모든 것이 은혜로 주어졌다는 고백이다. 원래 내 자리가 아닌데 이 좋은 곳에 심겨졌다면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감사가 있어야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더욱이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보다 5-6배 정도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또한 양분도 더 많이 흡수한다. 7절에 주인이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한탄하는데 무화과나무가 다른 어떤 나무보다 많은 양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무들이 먹을 양식마저 빼앗아 먹는다. 이는 마치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라는 나무가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해야 했던가? 부모님들의 희생이 있었고, 주위 친구들과 이웃들의 보살핌이 있었고, 사회의 아낌없는 투자가 있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이 바로 ‘빚진 자’의 의식이다. 내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의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우리가 잘 아는 그림 중에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1508)이란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손 마다마디가 뒤틀리고 불거진 매우 거친 노동하는 손임을 알 수 있다. 이 손 그림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형제 중에 알버트 뒤러가 있었다. 이 형제 또한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그림을 배우길 원했다. 그러나 집안 형편상 함께 미술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먼저 알브레히트가 공부를 하고 그 뒤를 알버트가 돌봐주기로 하였다. 4년이 지난 후 알브레히트 뒤러는 미술학교를 마치고 작품이 팔리는 작가가 되었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알브레히트가 알버트에게 말했다.

“알버트, 이제는 네 차례야! 뉘렌베르크로 가서 네 꿈을 펼쳐! 내가 이제 밀어줄게!”
그러나 알버트는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냐, 아냐, 아냐! 난 이미 늦었어! 알브레히트, 나는 뉘렌베르크 미술학교에 갈 수 없어! 내 손가락을 봐! 광산에서 4년 동안 일하면서 손가락 마디는 이렇게 휘어졌고, 오른손은 관절염까지 생겼어. 이 손으로 어떻게 캔버스에 섬세한 선을 그릴 수 있겠어!”
알브레히트 뒤러는 형제 알버트의 가늘어지고 약해진 손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을 위해서 기도했던 그 손이었다. <기도하는 손>은 이렇게 탄생했다. 기도하는 손에는 한 사람을 위한 다른 사람의 희생이 담겨있다. 두 친구의 경우만이 아니고 우리의 삶이 그렇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우리를 위해 희생했던 수많은 손들이 있었다. 나는 흥한 대신 그들의 손은 뒤틀리고 거칠어졌다. 그런데 만약 이런 엄청난 희생과 사랑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살고 있다면 그것은 죄일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못박힌 손이 우리 눈앞에 역력하거늘 우리는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삼년을 구했지만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심었다. 무화과나무는 자라는 데 보통 3-4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 쯤 되면 사람들은 열매를 기대하게 된다. 주인도 열매를 기대하고 포도원에 갔지만 열매가 없었 다. 내년에는 열리겠지 하고 다음 해에 갔는데 역시 열매가 없었다. 이렇게 3년이 흘렀지만 변변한 열매하나 얻을 수 없었다. 그러자 주인이 과원지기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7)

주인이 원하는 것은 열매이다. 열매를 기다리며 오랜 시간을 참았고, 투자를 했고, 여러 희생을 감수했다. 우리가 오랜 시간 교육과 훈련을 받고, 시행착오와 실수를 참고 인내하는 이유도 열매를 맺기 위해서이다. 때가 되면 그에 맞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터 위에 심겨졌다. 그 후에 오랜 시간 말씀과 성령으로 훈련받았다면 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어린 묘목 단계이고 여전히 축복만 바라고 있다면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꽃에 취해 자기 영광만 자랑하고 열매의 단계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신앙의 연조가 깊으면 그만큼 뿌리도 깊고 열매도 풍성해야 한다.

한국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판이 심한 이유는 그에 합당한 열매를 잘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고, 그 역사가 130년을 넘어갔으면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도 조금이라도 변했어야 한다. 물질보다는 사람 사랑의 열매, 부패보다는 정직의 열매, 분열과 불화보다는 평화의 열매, 불평과 탄식보다는 감사의 열매, 이기적인 욕망보다는 나눔과 섬김의 열매가 맺혀 있어야 한다. 몇 십 년 전 이야기다. 어느 한국 크리스천과 일본 크리스천이 만나서 자가 나라의 신앙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한국 크리스천이 먼저 이렇게 자랑했다.

“우리는 선교 역사가 1백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 인구의 25%가 크리스천입니다. 당신네는 선교 역사가 5백 년이 넘어가는데 어째서 1%를 넘기지 못합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일본 크리스천이 이렇게 반문했다.
“그러면 한국은 이미 천국이 되었겠군요?”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바닷물에 들어 있는 소금은 채 3%밖에 되지 않지만 짠 맛을 내고 바다의 부패를 방지한다. 일제강점기에 한국교회는 채 1.5%밖에 되지 않았지만 민족사를 이끌고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지금 한국교회는 25%에 육박한다. 이 정도면 사해 바다보다 더 짠 수준이다. 한국 교회는 지금 한국 사회에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개 교회도 마찬가지다. 때가 되면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부흥의 열매든, 신앙 열심의 열매든, 봉사와 섬김의 열매든 어떤 식으로든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찍어내어 버리라’는 주님의 경고는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니까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지는 말라. 비유에서는 3년을 참았다고 한다. 아니 하나님은 더 많은 시간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끝내 열매가 없다면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올 것이다.

덤으로 사는 인생

이미 심판은 떨어졌다. 주인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내어 버리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과원지기가 이렇게 간청한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8-9) 금년 한 해만 더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땅을 파서 더 부드럽게 하고 거름을 더 많이 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터이니 그래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 가서 찍어버리라는 간청이다.

이는 바로 우리 인생의 처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인생의 뿌리에는 이미 도끼가 놓여 있다. 세례 요한은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외쳤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눅3:9) 우리들 현재의 삶은 집행유예 상태라 할 것이다. 형이 일시 면제 되고 보호 관찰 상태이다. 당신의 삶에는 이런 긴장감이 있는가?

집행유예의 삶은 덤으로 사는 삶이다. 이미 심판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한 번 더 참으시고 기회를 주신 것이다. 덤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심각하기도 하지만 신나기도 할 것이다. 물건을 살 때 덤으로 받는 것처럼 신나는 것도 없다. 우리는 과거에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죽음의 위기를 경험했던 적이 있다. 누구는 암이나 죽을병에서, 어떤 사람은 중대한 교통사고나 큰 사고로부터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당신은 마땅히 그때 죽었어야 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그러면 당신의 지금의 삶은 덤으로 사는 삶이다.

본 설교자도 큰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적이 있다. 호남고속도로 상에서 3중 추돌 사고가 있었다. 가운데 낀 차가 바로 내 차였다. 뒤에 달려들던 차가 소형차가 아니라 트럭이었다면 더 이상 살아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트럭을 소형차로 바꾸어놓으셨다. 내 생명을 연장시키셔서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살고 있는 삶은 덤으로 사는 삶이다. 덤이라고 생각한다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지금 이 모습으로 천국에 간다면 부끄러우니까 좀 더 열매를 맺고 오라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덤으로 산다고 해서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를 남기는 것은 아니다. 옛 습성을 끊어내지 못하면 우리 목숨이 1년 더 연장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열매 없는 삶을 살 것이다. 악한 나무의 습성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러므로 각고의 노력과 자기 부인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덤으로 사는 인생들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더 현명해졌는가? 더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찍어 버리라는 주인의 명령에 과원지기는 1년만 더 연장해 주면 무화과나무 주위를 파고 거름을 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 그 후에 가서 찍어내던지 살리던지 결정해 달라고 요청한다. 도끼가 나무 밑동에 놓인 상황에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만큼 비상상황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저) 란 책이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두 마리 생쥐와 두 명의 꼬마 아이(‘헴’과 ‘허’)가 어렵게 헤매다 치즈 창고를 발견한다. 그들은 그 치즈를 먹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그들에게 위기가 닥치기 시작했다. 치즈가 점점 없어져서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위기를 재빨리 알아차린 생쥐들은 다시 치즈를 찾아 나섰다. 문제는 인간들이었다. 인간들은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헴’이 이렇게 말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마침내 그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시뻘게진 얼굴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 치즈를 훔쳐갔다고 하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헴은 “나는 이곳이 좋아. 편해. 다른 곳은 몰라. 다른 곳은 위험해.” 하고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렇지만 나머지 한 사람 ‘허’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났다. 치즈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릴수록 새 치즈를 발견할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이 비상상황임을 알고 빨리 새로운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침몰하는 배와 함께 가라앉고 말 것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세례 요한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 위에 놓여 있다고 말이다. 우리에게는 단지 1년의 시간만 유예되어 있을 뿐이다. 3년 동안 열매 맺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열매가 맺혀지겠는가? 변화해야 한다. 비상수단을 써야 한다. 희망이 없는 가지는 잘라내고 땅을 파고 거름을 주어야 한다. 믿음의 성도들에게 세 가지 거름이 필요하다.

첫째는 말씀의 거름이다. 더욱 더 열심히 말씀을 읽어야 한다. 말씀은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힘이고 우리의 가야 할 바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지금까지 매일 2-3장씩 읽었다면 더 많은 말씀을 읽으라. 하박국과 같은 간절한 자세로 말씀을 읽으라.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성루의 높은 망대로 올라갔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합2:1) 하박국이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갔을 때 그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유명한 말씀을 응답으로 받았다.

둘째는 기도의 거름이다. 기도는 우리 마음을 바꾼다. 기도는 우리의 열정에 공급하는 기름과 같고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비상시의 기도는 달라야 한다. 금식기도가 필요하고 작정기도가 필요하다. 배수진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야곱이 얍복 강에서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다는 일사각오의 자세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던 그 간절함이 필요하다.

셋째는 헌신의 거름이다. 헌신한 만큼 열매가 나오게 되어 있다. 자기 옥합을 깨는 헌신이 필요하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한 여인이 순전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옥합을 깨뜨리고 주님의 머리에 부었다. 이처럼 누군가 희생하고 자기 땀과 눈물을 바치는 헌신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진다. 세상 모든 일은 헌신이 없이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기업하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우러날 때가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실패하면 전 재산을 날리거나 셋방살이 할 각오까지 한다. 이런 헌신의 바탕 위에서 하나의 기업이 탄생하는 것이다. 교회나 우리 인생이나 마찬가지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옥합을 깨는 헌신이 있을 때 열매가 나타난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딱 1년 남았다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모두가 지혜롭게 행동할 것이다. 그 인생에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지 않는 자 한 사람도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