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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6>『논어』옹야편(雍也篇) 28
이은선(세종대교수) | 승인 2015.03.03 15:06

<명구>
雍也篇 28 : 子貢曰 如有博施於民 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        
乎 堯舜 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옹야편 28 : 자공왈 여유박시어민 이능제중 하여. 가위인호. 자왈 하사어인. 필야성        
호 요순 기유병저 부인자 리욕립이립인 리욕달이달인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해석>
자공이 물었다.“만일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면 어떻습니까? 仁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함에 그치겠느냐? 반드시 聖人일 것이다. 요순임금조차도 그렇게 하지 못함을 괴로워했다. 대체로 인자는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서게 하고, 자기가 통달하고 싶으면 남도 통달하게 한다. 가까운 데서 취하여 미루어 이해할 수 있으면 바로 인을 행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성찰>
앞 편의 공야장편에 이어서 여기서도 공자는 주변의 인물과 당대의 여러 사람들에 대하여 평한다. 이 편의 이름이 된 ‘옹’(雍)은 공문십철 가운데 한 사람인 중궁(仲弓) 염옹(苒雍, B.C.522-?)을 가리키는데, 공자는 그를 비천한 출신이지만 매우 어질어서 군주가 될 만하다고 평하였다. 우리가 선택한 구절은 옹야편 마지막 구절로서 공자의 제자 자공의 질문인데, 그는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면 그 사람을 仁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 공자는 뜻밖의 대답을 하신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仁한 사람을 넘어서 “聖(人)”이라고 할 수 있고, 요순임금도 그렇게 되지 못해 괴로워했는데, 너의 처지로 그 일은 너무 과한 일이 아닌가 가볍게 힐책하시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늘의 도움으로라야 이룰 수 있는 일(聖)보다는 인간의 일(仁)에 몰두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신데, 仁의 일은 그렇게 누구나가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로서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짐작하여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를 도와주는 일이라고 보신 것이다.

공자는 20절에서도 번지가 ‘아는 것’(知)에 대해서 묻자 “사람들이 지켜야 할 義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知라고 할 수 있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라고 했다. 이 말을 들어서 일반적으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나는 오히려 여기서 공자의 초월의식은 저 위가 아니라 ‘가운데’, 인간 삶의 생생한 현실 속에서 이루려는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그의 ‘중용’을 말하는 것이고, ‘仁’을 말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 가운데서, 정치와 도덕과 문화와 예술의 현장에서 하늘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27절에서도 “중용의 덕은 지극하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진지 오래다.”(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라고 탄식했다. 큰 것, 절대적인 것(聖)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바로 여기/이곳의 삶의 자리에서 인간적인 도를 지키면서 덕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점 적어진다는 말이다. 공자는 ‘命’과 ‘(鬼)神’을 말하면서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경했지만, 우리가 힘을 쏟아야 할 것은 學과 禮와 樂의 仁인 것을 강조하였고, 이것이 동아시아의 유교 전통으로 내려온 것이다.

공자는 이 옹야편에서 궁극을 실현하는 인간적인 길인 仁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한다. 정치적으로 말하기를, “군자는 곤란한 사람은 도와주지만 부자에게 더 보태어주지 않는다.”(君子周急不繼富)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예수가 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할 때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라(눅14:12-14)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고, 부자들에게는 오히려 감세해주면서 서민들에게는 간접세를 더욱 늘려서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오늘의 한국 정치를 생각했다.

공자는 또 ‘直’에 대해서 말하며 “사람의 삶은 곧아야 한다. 곧음이 없이 사는 것은 요행히 화를 면한 것이다”(人之生也直 罔之生也 幸而免)라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최근에 온갖 거짓과 협박과 교언영색의 과장으로 나라의 재상이 된 한 정치인을 생각했다. 그가 오늘 나라의 제2인자가 되어서 큰 운을 얻었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상황이 요행히 화를 면한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공자의 仁은 배움(學)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많이 배울수록, 많이 알수록, 많이 사색할수록 그런 사람은 첫째,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청빈을 좋아하게 되고, 둘째,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범하지 않으며, 셋째, 항상 마음에 ‘기쁨’(樂)이 스며 있어서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 존재의 즐거움이 변치 않는다고 한다. 바로 공자의 유명한 애제자 안회(顔回, B.C.521-B.C.481)의 인격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참으로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好學) 다른 사람은 하루나 한 달 지속할 뿐이지만 그는 석 달 동안 仁의 실천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학력이 아무리 높아도 위의 세 가지 덕목을 체현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학문을 하지 않은 것이고, 앎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 된다는 가르침을 준다.

공자의 仁은 그렇게 일상에서 잔잔한 기쁨(樂)으로, 안빈낙도의 삶으로, 공로를 자랑하지 않는 겸허함과 ‘실질’과 ‘치장’이 잘 조화된(文質彬彬) 참된 禮의 삶으로 나타난다. 지금으로부터 2천5백여 년 전에 한 나라의 정치와 문화와 교육과 예술이 그렇게 인간적이고 평화로워지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었으며, 공자는 그런 자신의 소망을 “제나라가 일변하면 노나라와 같이 될 것이고, 노나라가 일변하면 道에 이르게 될 것이다.”(齊一變 至於魯 盧一變 至於道)라고 표현했다. 공리주의를 내세우면서 군사와 권모술수로 패자를 꿈꾸는 제나라가 변하여 인륜과 학문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노나라가 되기를 원했고, 그 노나라로부터 이 땅의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를 소망한 것이다.

하늘로부터의 도움 없이는 그 성취를 장담할 수 없는 경제적 유토피아를 자신들이 당장 이루어낸다고 국민들을 호도하면서 오히려 仁의 일에서는 패악을 저지르는 오늘의 한국 정치는 참된 호학자의 나라에서는 나올 수 없는 모습이다. 공자는 그런 가운데서 우리들에게 권고한다; “선비다운 학자가 되어야지 소인 같은 학자가 되지 마라.”(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2015년 새학기가 시작되는 첫날, 대한민국의 3.1절 날에 그 공자의 소망과 부탁을 되새긴다.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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