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신문배달부 소년은 무엇이 그리도 억울하고 분했을까? 그가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분노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이전에 우리 사회에서 신문배달부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어떤 존재였기에 어두운 골방에서 조용한 죽음으로 슬픔과 외로움을 끝내는 대신 분신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분노를 표현하고자 했을까?
이청준이 1974년에 발표한 소설로 「건방진 신문팔이」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녀석을 알고 있었다. 녀석은 정말 이상한 신문팔이였다.”
소설에 나오는 건방진 신문팔이는 “신문을 파는 데는 정작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느릿느릿 판에 박힌 대사”를 외워나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즐기는 듯”해 보였다.
“동아일보요, 서울신문이요, 중앙일보요, 민국일보요, 내일 아침 한국이요, 내일 아침 조선이요, 경향신문 있습니다. 신아일보 있습니다.”
그러다 민국일보가 폐간되자 건방진 신문팔이는 신문 파는 일을 그만뒀다. 민국일보 네 글자가 빠지니 소리가 신이 나지 않아서다. 신문팔이는 못 먹고 못 배운 자다. 그런데 생계는 뒷전이고 놀이처럼 신문을 파니 건방져 보인다. 신문팔이가 신문팔이답지 않기에 건방져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신문팔이답다는 게 과연 뭘까? 신문팔이는 못 먹고 못 배웠기에 먹고사는 일 외에는 도무지 관심 없는 존재일까? 신문팔이는 이중적인 존재다. 신문을 봐야 식자인 체할 수 있던 시절, 식자도 아니고 여유도 없으면서 신문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직업이 신문팔이다. 신문팔이라는 ‘신분’과 ‘신문’은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다. 신분과 생계도구가 동떨어져 있다.
이 같은 이중성 때문에 신문팔이에 대한 이미지도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고학생이자 미래의 성공한 사장님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껌팔이, 구두닦이의 다른 말이자 미래의 소매치기나 펨푸(호객꾼)에 해당한다. 앞의 신문팔이가 ‘일하며 공부하는 성실한 학생’이라면 뒤는 ‘부랑아’다.
신문팔이에 대한 이미지는 1950년대까지 대체로 ‘부랑아’였다. 그랬던 것이 박정희 정권 들어 점차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모하면서 입신출세의 ‘신화’가 덧붙여졌다. 신문팔이 청소년의 대표적인 신화는 입신출세하여 자신 같은 청소년들을 돌보는 훌륭한 사업가가 된다는 것이다.
신문팔이와 관련한 신화는 미국에서 먼저 만들어졌다. 대공황 시기를 거치면서 미국에서는 ‘거리의 중산층 배달소년’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거리소매업법’의 아동 고용 규제 때문에 신문운송업자와 신문팔이, 즉 ‘뉴스보이(newsis)는 엄격히 구분됐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신문 발행인들은 뉴스보이들이 그들의 피고용인이 아니라 독립계약을 맺은 소상인이라는 입장을 명시화하면서 신문배달원에 대한 신화 만들기도 시작됐다.
미국에서 신문팔이에 대한 이미지 변화가 아동노동 착취의 일환으로 시도됐다면 한국에서는 신문업계와 정권 양쪽에서 신문팔이에 대한 규율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박정희 정부는 사회정화 시책의 일환으로 그때까지 ‘범죄의 온상’으로 여겨졌던 신문팔이 소년을 선도할 필요가 있었다.
신문업계에서 1962년 ‘경향직업소년단’이 발단식이 있었다면 정부 차원에서는 1963년 5월 내무부 치안국에 의해 ‘의형제맺기(BBS)운동’이 정식으로 발족했다. 신문팔이 소년들이 세종로 거리 청소에 동원되기도 했고, 1960년대 말에는 4월 7일 ‘신문의 날’을 신문팔이 고아소년의 생일로 삼는 전시성 행사가 선보이기도 했다.
신문팔이 소년들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가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정점에 이르렀던 긍정적 이미지는 1990년대 들어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여러 신문들이 창간되면서 신문배달원의 수요는 높아졌지만 더 이상 학생들이 일하는 것을 원치 않는 사회가 됐기 때문이었다. 학생은 공부만 해야 했고 고학생이라는 단어도 점차 사라져갔다.
미국에서 몇 해 전 『왜 부자들은 모두 신문배달을 했을까』라는 책이 나왔다. 워렌 버핏, 잭 웰치, 월트 디즈니, 샘 월튼 등 성공한 리더들이 신문배달부로 일하면서 익힌 비지니스 기술로 성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불행히도 바다 건너 먼 나라 얘기인 것 같다. 최근에 성완종 리스트로 유명한 고 성완종 국회의원이 신문배달원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매우 드문 일일 뿐만 아니라 그조차도 학력에 따른 차별과 소외를 겪어야 했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게 됐다. ‘가난’은 그 자체로 나태와 무능력의 상징이 됐으며 ‘엄친아’라는 단어의 유행이 의미하듯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것은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 성격도 좋을 것이라는 의미가 됐다. 매스컴에서는 연예인 엄친아의 조건으로 부모의 재력을 들고 있으며, 부모의 재력은 자식의 상품성을 보증하는 잣대가 됐다. 일하며 공부하는 고학생은 성실의 표본이 아니라 가난의 상징이 됐으며 가난은 곧 죄의 다른 말이 됐다.
1991년 또 한 명의 신문배달원이 분신자살을 했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야학(夜學)의 중등과정에 다니는 17세 소년이었다. 경찰은 신병을 비관한 자살로 발표했다. 왼쪽 팔이 불구인 데다 평소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1년 뒤, 소년의 기일에 그를 아는 사람이 신문에 투고를 했다. 소년의 자살은 신병을 비관해서가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차별 대우와 무관심, 그것을 낳게 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항의하는 일이라고 했다.
소년은 그가 평소 좋아했던 박노해 씨의 사형 구형 소식을 접한 이틀 뒤 “내 못 다한 한을 풀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야학건물 옥상에서 분신했다고 한다. 25년 전 쓰레기장 옆에서 분신한 소년도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또 우리 사회는 1966년이나 1991년 모두 신병 비관이나 생활고라는 말로 그들의 분노에 찬 항의를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이 여느 식자보다 극명하게 경험하고 이해한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그리고 죽음으로써 그 모순을 고발하려 한 일을 우리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것은 아닐까 한다.
★ 박정희 정권 시기 신문배달원의 이미지 변화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고했다.
윤상길, 2014, 「박정희 정권 시기 신문배달원 신화 창출의 사회적 맥락」, 『언론정보연구』 51권 2호.
임미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문위원) ecumenian@webmast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징계 사건에 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