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구박(驅迫). 못 견디게 괴롭히는 것을 말하며 위의 노래처럼 가족 구성원 중에 누군가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때 주로 어울려 사용된다. 비슷한 류의 단어로는 ‘학대’, ‘혹사’ 등이있는데 가족보다는 직장 같은 이익사회에 더욱 잘 어울린다. 그런데 가족 구성원이 아닌 데도 ‘구박’이 어울리는 사람, 또는 직업이 있다. 바로 식모(食母)다.

‘식모’는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엌일을 해주는 여자를 말하며 유사어로는 식비(食婢)가 있다. ‘식비’는 한자 그대로 부엌일을 하는 여자 종이다. 식모는 1960년대까지는 ‘하녀’라 불리기도 했고 현대에 와서는 ‘가정부(家政婦)’라고도 하는데 모두 노비제도에 연원을 두고 있다.

여기서 여러 직업 중에 왜 유독 식모가 ‘구박’당하는 게 어울리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산업사회의 고용관계가 아니라 봉건제의 주종관계에 바탕을 둔 직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산업사회에 들어와 직업으로 분류되기는 하되 그 처지는 봉건시대에 주인집에 딸린 노비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인구의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 먹고살던 시절, 농촌의 어린 여자아이들은 먹는 입 하나 덜기 위해 또는 혼인하기 전까지 가계를 돕기 위해 친척집이나 이웃마을에 식모살이를 갔다. 이때도 식모살이는 종살이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 처지가 더욱 기구하게 된 것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농촌사회가 붕괴하면서부터다.

농촌에서는 남의 집 식모살이를 가도 어느 마을 누구 집 몇째 딸일 수 있었다. 즉 여전히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 그러나 도시로 식모살이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뉘집 자식인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집 식모아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집 식모아이’는 이중적인 존재다. 몸은 도시에 있되 존재의 뿌리는 농촌에 있다. 매일 마주하는 얼굴은 도시에 있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농촌에 있다. 가족처럼 가까이 있지만 가족이 아니다. 언제든 관둘 수 있는 자유로운 일자리이기도 하지만 주인이 거둬주지 않으면 갈 데 없는 종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집 식모아이’는 한 가족처럼 살며 구박을 당하지만 전혀 남인 것처럼 착취당하고 혹사당하고 학대당한다. 그렇게 당하고 당하다 죽음에 이를 때도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은 죽임을 당하거나 스스로 죽었을 때나 마찬가지다.

1960년대 초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닮은꼴의 살인사건 4건이 있다. 익선동식모살해사건, 신당동식모살해사건, 흥인동창녀살해사건, 인현동창녀살해사건이 그것인데 모두 피살자가 20대의 여인이고, 교살당했으며, 시체는 반나체였고, 하복부에 피자국이 있는 등 강간의 흔적이 발견됐다.

네 건 중 두 건이 식모고 나머지 두 건도 식모와 무관하지 않다. 흥인동과 인현동에서 살해된 두 창녀의 전직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간 어린 여자들이 식모살이를 거쳐 얻고자 하는 직업은 여공(女工)이었고, 여공이 되지 못한 식모가 종국에 이르는 직업이 창녀(娼女)였기 때문이다.

1963년 3월 익선동에서 19세 식모가 목이 졸린 채 반라의 시체로 발견됐다. 범인은 집주인의 사위가 경영하는 운수회사에 다니던 운전사였다. 6월에는 신당동의 16세 식모가 살해됐는데 범인은 집주인의 이종사촌이었다. 도둑질하러 들어갔다가 식모에게 들키자 식모가 훔친 것으로 위장한 뒤 시체를 벽장마루 밑에 숨기고 달아났다.

이처럼 식모가 도둑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집주인이 없을 때 집을 보는 게 식모의 소임인 데다가 대개의 식모들이 나이가 어린 여자아이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식모들이 죽임당하는 것은 도둑이나 강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많은 경우가 집주인에 의한 죽임이었고, 그 가운데 또 많은 경우가 자살로 위장됐다.

1956년 7월 24일 45세의 식당 주인과 34세의 무면허의사가 지명수배됐는데 임신한 식모를 강제로 낙태시키려다 죽게 한 혐의다. 시체를 유기한 뒤 경찰에는 신세를 비관한 자살로 허위신고했다. 1961년 말에는 식모가 도둑질이 발각되자 음독자살했다고 신고됐는데 “매를 맞고 사망했다”는 투서가 들어와 시체를 해부해 진실이 밝혀진 일이 있다.

그밖에 엽기적인 살해도 여럿 있다. 처녀를 강물에 던져죽이면 아들의 병이 낫는다는 점괘를 믿고 17세 식모를 강가로 유인해 죽이고(1963년 5월 13일), 대학 나온 인텔리 주부가 15세 식모를 “일을 잘못하고 도벽이 심하다”고 송곳과 칼로 전신을 찌르고 부젓가락으로 온몸을 지져 죽게 하거나(1965년 11월 17일), 고작 12세 밖에 안 된 식모를 산으로 유인해 추행하고 살해해 연못에 버리고(1968년 7월 28일), 역시 12세의 식모가 “아기를 잘 돌보지 않는다”고 골방에 가두고 장작개비로 때려 숨지자 암매장한 일(1972년 1월 27일) 등이 있다.

죽음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인권유린과 학대는 비일비재했다. 남편과 가깝다고 닷새 동안 감금폭행하고(1961년 4월 9일), 11세 식모를 가두고 몰매를 놓는가 하면(1960년 1월 7일), 말 안 듣는다고 방망이로 때리고 (1962년 6월 14일), 9세 된 식모가 밥을 훔쳐 먹었다고 7시간 린치했다.

식모에 대한 폭행은 도둑 누명과 관련한 게 많다.  파출소서 옷 벗기고 고문(1962년 11월 7일), 순경이 6시간 고문(1964년 1월 5일), 경찰가족이 인두로 지지고(1965년 10월 29일), 반치 골방에 가두고 화상 입히는 일(1965년 12월 3일) 등이 있었다.

이렇다 보니 식모의 인권이 사회 문제로 대두해 “식모의 불평과 요구, 첫째 사람대접을 하라”(조선일보 1960.01.13), “식모도 가족이다. 자존심 꺾지 말고 타이르고 보살피자”(조선일보 1960.01.13), “<소묘> 개는 식모보다 소중해?” 등 식모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신문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식모의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도 공평했다. 다시 말해 식모를 약자에 놓고 고용주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책임을 양쪽 모두에 지웠다.

“식모란 직업으로 해서 부당한 천시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간혹 순간의 부주의와 허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이가 있어 식모란 직업을 더욱 천하게 만드는 경우가 없지 않다. … 식모를 옛날 종살이로 잘못 생각하는 주인도 주인이려니와 남의 집 식모 된 사람도 자기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맑은 마음과 몸가짐을 잃지 않도록 같은 길을 걷는 여성에게 부탁하고 싶어진다.”(동아일보 1961.12.14. “식모와 인권”)

이 같은 시각처럼 식모는 억울하게 매를 맞고 죽임당하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순간의 부주의”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허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일간지에 식모가 저지른 범행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절도와 유괴다. 절도는 손버릇이나 빈곤의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유괴는 문제가 좀 더 복잡하다. 주인집 아이를 유괴한 뒤 인질로 삼아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원한이나 다른 감정들이 섞인 경우가 많았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를 리메이크한 임상수 감독의 2010년작 <하녀>에는 태아를 강제로 낙태한 뒤 주인집에서 불타죽는 하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아이에 대한 집착과 주인에 대한 복수를 내포한 것처럼 보이는 유괴 사건들이 당시 일간지에는 제법 눈에 띈다.

식모가 주인집 아이를 자기 아이로 삼으려고 데리고 가거나(1960년 1월 21일), 갓난애에 극약을 먹이고 절도하려다 도주하거나(1962년 7월 14일), 17세 식모가 주인 아들을 유괴했다가 하루 만에 돌려주거나(1962년 7월 23일, 1963년 9월 15일), 집주인 남자와 불륜관계에 있던 식모가 주인 아들을 업고 달아난 일(1972년 1월 20일) 등이 있다.

식모가 주인집 아이를 유괴한 사건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1955년 9월 서울지검 검사 집의 식모가 검사의 장남과 함께 실종된 뒤 한강 하류에서 두 구의 시체로 발견됐다. 결국 자살로 결론이 났는데 결정적인 동기나 이유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과는 관계없는 사실 하나가 곁들여 보도되면서 미묘한 뉘앙스를 줬다. 내용은 죽은 식모의 고향이 지리산 공비 출몰지인 함양이었고, 그 오빠가 빨치산으로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모가 왜 아이와 함께 자살했는지, 경찰에서는 왜 사건을 빨치산과 연결하려 했는지, 정확한 진실은 당사자만 알 것이다. 그러나 기시감이 드는 일들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억울함을 말로 풀지 못하는 죽음과 그 같은 억울함을 호도하려는 시도는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임미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문위원)  ecumenian@webmast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