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성인 덕분에 점심을 잘 얻어먹었다. 우리 상에는 임봉재 섐과 미루네 부부, 우리 부부 그리고 우이성당의 아녜스섐과 우리들의 영도자 말하자면 오늘의 호스트로서 우리를 식탁에 초대해 주신 오상선 원장신부님이 자리하셨다. 오신부님 모친께서 돌아가셨지만 서울에서 일보느라 우리 부부가 미처 문상을 못한 터여서 성심원 미사에 간 길이었다.

 

오늘 아침 카톡 밴드에 오른, 오신부님 모친 삼우제의 사진은 “이제 다 이루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자식들이 속 썩여 노심초사 한평생 마음 놓지 못하고 살아오셨을 어머니의 사랑이 지상에서 소임을 다하신 모습이다. 정말 어머니는 다 내주신다. 그리고 어머니 사랑에는 어디 발끝에라도 미치랴만, 자녀들이 부모님을 직접 모시지 못하고 양로원으로, 병원으로 모실 적의 마음고생에서도 풀려나는 모습이다. 정말 어머니는 다 용서하신다.

 

 

“이번에 상주가 되어 보니 자식인 우리는 죄인이라는 생각이 절절합디다. 옛적에 삼년상을 치루며 무덤을 지켰다는 뜻을 알겠더라구요.” 오신부님의 짧고도 절제된 효심이 드러난 한 마디에 ‘유무상통’에 엄마를 모셔다 놓고 지내는 내 목젖에도 울컥하는 아픔이 올라왔다. 장로로 평생을 살아오셨고 교회 하나 바라보며 살아오신 분이 오늘이 주일인지도, 주일이면 교회 가셔야 한다는 생각마저 지워진 채로 나날을 보내신다. 양로원도 도우미도 엄마를 교회로 모셔가는 신앙생활까지는 못 챙긴다.

 

성심원 미사에 오면 성당에 오신 한 분 한 분 얼굴이 그 삶의 자취가 남아있는 자서전이다. 점심 후 미루네 부부가 산티아고를 막 다녀오신 임봉재 선생님과 우리 부부에게 새로 성심원에 설치된 십자가의 길을 보여주고, 유신부님 기념 동산, 그리고 글라라 피정의 집을 차례로 구경시켜 주었다.

 

 

 

임선생님이 산티아고에서 하느님께 받은 푸지고 푸진 은혜를 얼굴에 가득 담아 들려주시는 바람에 우리도 산티아고의 순례를 가고 싶게 만들고, 미루는 이주교님 모시고 한번 다녀오자고 보스코를 꾀고 꾀어 절반의 승낙을 받아놓았다. 내가 읽는 작가 코엘료의 회심도 산티아고 순례에서 이루어져 나도 은근히 마음이 동하던 참이었다.

 

유신부님 기념동산에 이곳에 살고계시는 어르신들의 시문들이 액자에 담겨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 가장 짧은시 한편이 가슴이 뭉클하게 한다. 

 

 

 

두 손이 문드러져 꽃 한 송이 꺾을 손가락도, 그것을 들고 갈 손가락도 없는 몽당손이어서 이빨로 물어서 꺾고 입에다 물고서 남편의 산소를 찾아가는 한 여인이 그려진 시다. 천형(天刑)이라 불리는 나병의 서러움을 일평생 남편과 함께 짊어져온 한 여인의 사랑이 절절하다.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병들어도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아마도 우리 인생을 지어내시는 하느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리라. 오늘 복음서에 나온대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는 말씀에서 우러나 이런 이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프란치스칸들과 우리 오신부님에게 참으로 고맙다는 존경이 간다.

 

오후 2시, 미루가 예약해준 차표를 들고 보스코 혼자서 산청 터미널에서 서울로 떠났다. 내일 아침 곽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아 빠진 앞니의 후속치료를 받아야 한다. 내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챙기는데 처음으로 혼자 하는 병원나들이이니 제대로 해낼까 걱정이 앞선다.

 

나 혼자 휴천재로 돌아와 약간 철이 지났을 수세미들을 테라스에서 따 담고 줄기들을 잘라서 걷어내 페트병에 꺾어 넣어 수세미물 받을 준비를 해놓고서 성삼위의 딸들 수녀님들에게 효소 담으시라고 수세미를 가져다 드리러 장성에 다녀왔더니 밤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