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990년 말 IMF사태라는 것을 겪었다. 당시 위기가 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 각국에 다가 왔으나.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우월감과 쇄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중에 우리 경제력을 우리와 생각과는 달리 높이 평가하지 않던 외국자본이 우리나라에서 빠져나갔다. 정부는 IMF 돈을 더 이상 빌리지 않겠다는 1986년 IMF졸업증서를 되돌려주고 돈을 얻으러 갔다.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외국인들이 지배하는 다대수 국내은행들의 모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우리의 돈 지갑을 부자인 외국인들에게 맡긴 것이다.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얼굴을 맨 먼저 드러내는 곳은 언제나 미국 증권거래소였다. 2008년 미국 부동산대부(서브라임 모기지)시장 붕괴에 이은 위기도 당시 세계적인 미국 금융회사인 러만 브라드즈의 파산으로 시작되었다. 앞으로도 그런 사태가 발생할까? 어떤 영역에 있는 사람이든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쿠즈네츠 50~60년 주기장기파동이 그런 것이고, 1920년대 오스왈드 슈펭글러의 <서양의 몰락>이나, 최근에 나오는 2016년 금융위기설이 그런 것이다. 

 

겉모습만으로 보아 역사는 일정한 주기로 되풀이 된다는 주장이 근거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힘으로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시작이요 끝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 모두가 알파에서 오메가를 향하여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그리스-러시아 정교회 신학이 주장하는 인간의 신화(deification)가 종말론으로 더 적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 서양의 물질지상주의 내지 물신주의 문화가 세계화되고 있으니, “영성의 상품화”(commodification of spirituality)란 말까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예수의 재림을 상품화하여 돈과 명성을 얻는 것도 이런 현상의 연장된 것이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만약 우리가 10초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모든 사건사고에서 피해를 보지 않게 될 것이라 했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10초 앞이 아니라 5초 앞만 내다볼 수 있어도 지금까지 경험한 대다수 불쾌하거나 어려웠던 일을 피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로 지금과 같이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한 시대에는 시장의 흐름을 1초 앞만 내다볼 수 있어도 모두 부자가 되거나 반대로 아무도 돈을 벌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나쁜 일들의 원인은 이미 알려질 대로 다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들이 한 결 같이 지적하는 것이 있다. 인간은 3가지 최소한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해야 하는데, 그것은 안전과 생존, 힘과 통제력, 애정과 존중이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명성과 권력과 부, 그리고 특권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이웃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고 극단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금융위기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재림을 주장하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대개는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계시를 알게 된 특별한 사람들이란 의식이 강하다니, 이웃을 배제하기는 마찬가지라 하겠다.  

 

각 사람의 마음에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명성과 권력과 부, 그리고 특권을 추구하는 부정적인 것일 때, 애써 마련한 사회개혁 프로그램이 파괴되거나 활동가들 스스로 좌절하여 이즘 말로 탈진상태(burnout)에 들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대개 사회적 행동에서 좌절을 하면 모든 탓을 환경과 여건 또는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내 탓이라거나 최소한 내 탓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고 지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사회운동가들에게만 나타나는가? 생계를 걱정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모습은 다르지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장소와 시기에 대해 고민하거나, 경제위기가 언제 올지 예측하려 귀중한 시간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경제위기나 종교적 위기나 모두 근본 원인은 유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구환경을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 파괴한다면 인류의 종말을 재촉하는 것이고, 먼저 나타나게 될 것은 국가적 또는 세계적 경제위기의 모습으로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위기의 징조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우리들 중에 한 사람 즉 사람의 아들(Son of Man)이 어느 날 군중들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하늘과 땅의 징조를 알면서도 이 시대의 뜻은 왜 알지 못하느냐?”(루가 12:56 공동번역) 그런데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기에 예수께서 이 시대의 뜻을 알 수 있다고 여기셨을까 하고 질문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연히 알면서도 눈을 감고 있다고 질책하는 말씀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말씀이 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마태 25: 15-16 공동번역)

 

나는 이렇게 항변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열심히 일하지 않고 낭비하여 지금 굶주리고, 헐벗게 되었으며,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또 자기 나라에서도 살 수 있는데 우리니라에 밀입국하여 불법으로 체류하려고 하며, 몸을 함부로 굴리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진 병에 걸렸고, 감옥에 갇힌 것도 인권이나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억울하게 갇힌 것이 아니라 온갖 나쁜 죄를 다 짓다가 갇혔습니다. 천벌을 받은 것이고, 정의가 승리하고 사법질서가 확립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마땅히 받아야 할 죄 값을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답변에 대해 그분은 어떻게 대답하실까?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공동번역) 어안이 벙벙하여 정말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하는 질문이 절로 나온다. 정말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하신 말씀이라면 주위를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아니 먼저 나 자신이 의인인지 죄인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그분께서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시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천사들을 대동하고 “영광에 싸여” 오실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의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하신 역설적인 말씀이었던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금융위기보다 더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 이미 발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라도 우리가 그분이 말씀하신 “시대의 징표”를 두 눈을 감고 보지 않으려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마리아 릴케의 <신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하느님이 지상을 내려다 보셨을 때 그분은 깜짝 놀라셨지요. 그 수많은 합장한 손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고딕양식의 교회가 세워져서, 그 첨탑들과 합장한 손들은 다 같이 흡사 예리한 적군의 무기와도 같이 하느님께로 마구 치솟고 있었으니까요. ‧‧‧‧‧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하늘나라로 되돌아 가버렸습니다.  ‧‧‧‧‧‧ 그런데 당신을 묵묵히 맞아주는 하나의 암흑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하시고 하느님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흡사 인간의 심장을 연상케 하는 그 어둠 속으로 계속 가 보았습니다. 그러자 문득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두뇌는 밝지만, 그 심장은 이와 비슷한 어둠으로 푹 싸여 있지,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고는 이 명석하고 차가운 인간 이성 속에서 방황하지 말고 인간의 심장 속에서 살고 싶다는 강렬한 그리움에 사로잡히셨지요.(정양모 지음, <로마서 풀이>, 지금여기, 103쪽 인용문을 다시 받아 적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