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9일 토요일, 맑음
사제 1
얼마 전 서울에서 지례로 내려가신 신부님을 만나러 아침 일찍 서울집을 나섰다. 내 다리가 영 시원치 않아 그분에게서 ‘카이로테락픽’을 받으려는 욕심이었다. 이번에는 추풍령을 넘는 길이어서 보스코가 오랜만에 기사에게 ‘추풍령고개’를 불러주었다.
면사무소 앞에서 ‘도리뱅뱅이’(빙어를 튀겨 고추장 양념에 바른 요리)를 시켜 놓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어탕국수를 함께 들면서 당신이 살아오신 영화 같은 줄거리를 들려주셨다. 보스코의 혜화동 2년 후배인 그분은 15년 사목을 하다 어느 날 문득 본당을 떠나 노숙자로 반년을 살아보았단다. 미국으로 건너가 5년을 살면서 카이로테락픽을 배우셨단다. 귀국해서 을지로에 ‘건강신학’을 차리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오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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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집을 새로 지은, 부항저수지 물가의 그림 같은 집에서 그분의 시술을 받았는데 누구에게나 무료로 베풀어주시는 인술(仁術)이었다. 다리가 아픈 나보다 건강해 보이는 보스코에게 문제가 있다며 뒷머리부터 발바닥까지 골고루 만져주셨다. 을지로에서 많은 수녀님들에게 그 의료사목을 베푸신 것 같다. 내 다리를 두고도 북가좌동 (돌아가신)이집사님에게 받던 시술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 열성과 신념에 절반은 나은 듯하다.
사제 2.
오늘 박신부님과 점심을 먹다 거창 산골에서 대목(大木)으로 한옥을 짓는다는 신부님 얘기가 나왔고 보스코가 바로 연락을 드려 저녁에 식사나 함께 하자며 찾아가겠다고 했다. 부항에서 산길로 한 시간 못 걸리는 거리였고 북상면 맨 끝자락에 정말 한옥 학교를 차려놓고 있었다. 산청, 구미, 대구에서 온 젊은 부부들이 자녀를 데리고 방문해 있어 주변사람들을 포근히 껴앉는 분임을 알만했다. 우리가 온다고 초봄에 알에서 깨어 자식들처럼 당신이 키워온 오골계 장닭 두 마리를 잡아 삶아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갖가지 약초를 넣어 가마솥에 삶은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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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3.
오늘 아침 남해 형부가 멀리서 전활 하셨다, 내가 먼저 새해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축하 드리려고 전화했어요.” “무슨 축하를요?” “그곳 본당신부님이 떠나신다고 공지가 나왔던데....” 내가 얼마나 엄살을 했으면 이런 일로 축하까지 받아야 하나 참 씁쓸했다.
거창에서 밤길을 달려 집에 들어와(보름만이다) 지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본당 주임이 엊그제 떠났고 마지막 강론에서 고별사를 하더란다. 그 동안 주교를 찾아가서 자기 얘기를 고한 교우들을 노려보며 “내 평생 당신들 잊지 않겠다”, “이런 본당 난생 첨 본다”, "여자문제, 금전문제 깨끗한 사람에게 이러는 거 교구장 잘못이다." 라는 말로 당신다운 고별사, 이 ’자비의 해‘에 걸맞는(?) 인사를 남기고 가더란다.
누구든 사람과 작별을 할 즈음에는 “혹시 내가 여러분을 맘 상하게 했으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오.”라는 말을 남기는 법인데.... 지난 번 어느 모임에서 이 사제를 두고 “내게 세례를 준 사제 말고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사제”라던 짖궂은 평도 나왔지만... 그곳 교우들에게서 '복음의 기쁨'을 앗아가는 3년이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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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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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징계 사건에 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