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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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계셔요?>
따뜻한 봄 햇살이 명주실처럼 내 창살을 파고드는 오전시간인 듯 싶다. 어디에선가 많이 들었던 듯 싶은 목소리 하나가 한가로운 일상을 깨웠다. 창문을 열어보니 면보건소 간호사 선생이다.
<어? 간호사님 오랜만입니다.>
그는 환히 웃는 나의 얼굴 앞에 급박한 목소리로 반가움 마저 애써 감춘다.
<목사님,도와 주셔야 될일이 생겼어요.>
나는 그래도 애써웃었다.
<아따, 따뜻한 봄날, 차나 한잔 하시면서 천천히 하셔요, 숨 넘어 갈라.>
그날 간호사가 내게 전하는 말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취학 전 아동 두 명을 데리고 사는 홀애비가 있는데 아이들을 방안에만 가두고 사는데 아무리 찾아가 문을 두들겨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단다. 이웃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여도 아이들을 바깥에서 본적이 한 번도 없단다.
이 간호사는 관내 소외가정이 있으면 찾아내어 구원을 손길을 뻗혀 주는 그야말로 움직이는 구호소 역할을 하는 귀한 사람이다. 나는 다소충격적인 소식 이지만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그 참, 답답한 친구로 구만>
하고 한숨만 푹 쉬고 간호사 선생을 멍히 바라만 보았다.
<목사님, 그러지 마시고 빨리 한번 가보셔요.>
내가 가도 문 열어 주라는 보장이 있나 속으로 고민을 하면서도 간호사 선생의 채근에 의하여
마지못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민통선 검문소를 거쳐 차는 금방 아이들이 갇혀 있다는 포내리 마을에 도착 했다. 간호사 선생이 가리키는 그 집 방문이 보였다. 방은 작은 점포 안에 자리 잡고 있었고 점포는 낚시가계를 하다가 그만둔 듯 간판이 녹이 슨 채 걸려 있었다. 간호사 선생이 먼저 방문가로 다가가 <계세요? 용해아빠 계세요?> 하고 문을 두들겼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다시 간호사선생이 외쳤다.
<용해아빠. 용해아빠>
간호사 선생이 몇 번이나 반복 행위를 했지만 방안에서 전혀 기척이 없다. 안될 것 같았다. 내가 나섰다. 그리고 조용하고도 엄숙하게 혼자 말했다.
<용해 아빠, 나 ,민통선에 있는 교회 목산데..애들 보고 싶어 왔어요. 애들 얼굴만 한번 보여 줘요. 아무리 애 아빠라도 애들을 이렇게 가둬 키우면 신고 들어가요, 애들 얼굴 한번 안보여 주면 나 하루 종일 여기 있을거에요. 그래도 안보여 주면 경찰에 신고 할 테니 마음대로 하세요.>
그때였다. 내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며 문이 스르륵 열렸다.
<애들 많이 보세요. 귀찮게스리…….>
방문이 갑자기 열리자 어두컴컴한 방안이 눈 안을 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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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사람은 방안 풍경을 바라보고 소스라치고 말았다.
방안은 마치 안개가 자욱이 끼여 있는 듯 한 담배연기로 가득 했고 방바닥에는 냄새나는 이불이 깔려 있었는데 그 위로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방안은 원시 이방인 나라의 폐허를 방불케 했다. 오,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이런 집이 있다니…….나는 침착 하려 했지만 충격을 받아 간호사선생의 얼굴을 멍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간호사 선생이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꼬마 둘을 발견 하곤
<얘들아 이리 오렴,> 하고 재빨리 아이들을 챙기고 있었다. 나도 멍해진 정신을 수습 하곤 <용해 아빠 잠시 얘기 좀 합시다.>하고 그와의 대화를 유도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는 내말을 듣는 척 하며 허리춤을 잡고 바깥으로 스물 스물 기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는 눈에 안대를 한 애꾸눈 아빠였다. 나이는 30대 초반, 아이들은 한살 터울의 형제로 6살 7살. 이제 학교나 유치원에 다녀야 할 아이들 이었다. 나는 아이 아빠에게 경계심을 늦추게 하기 위하여 최대한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와, 바깥에서 보니 아주 미남이시네…….총각 땐 아가씨들이 주변에 많이 끓었겠어요?>
그는 나의 이 농담에 머리를 긁으며 <그렇지도 못 했어요> 하며 홍조를 머금는다.
순간, 그의 옷매나 용모를 간파했다. 와이셔츠는 한 달은 빨지 않았을법하게 깃에 때 국물로 가득 하고 검은 바지는 빨지 않아 기름기로 윤기가 번쩍 거렸다. 냄새가 훅 끼쳐 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람은 순박해 보였고 말은 통할 것 같은 착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만약 이 사람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면 공갈이라도 쳐서 아이들을 구출해야 될 것 같다는 순간 판단이 세워졌다.
나는 그에게 본론을 얘기해야 될 차례였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얘기도 들어줄 심산 이었다. 나는 먼저 그의 처지에 대하여 물었더니 예상보다 더 자세하게 자신을 노출 시키는데 간호사 선생이 놀라워하는 표정 같았다.
<애들 엄마유, ㅇㅇ진리교에 빠져서 도망갔어유…….>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체념 투로 허공을 응시 하며 말했다.
<ㅇㅇ진리교에 나가기 시작 하더니 차츰 빠졌어유. 결국엔 돈 갖고 집을 나가버리고…….>
<그럼 찾지도 않았나요?>
<웬걸요, 찾아 보았쥬, 찾다가 돈만 날려버렸쥬, ㅇㅇ진리교에 들어간걸 알고 누군가가 찾아 줄 테니 4백만 원만 달라고 해서 줬더니 먹고 줄행랑 쳐버렸어유. 몇 차례 더 시도 하다가 포기 해버렸시유. 그 안에 들어가면 본인이 나가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만날 길이 없다는 걸 알았쥬. 여잔 아예 얼굴조차 내밀지 않구…….거기엔 재산 갖고 들어 가버리는 경우도 있구 몸만 들어가서 공장 노동도 하는 경우도 있대유. 이 여자는 돈은 없었으니께 아마 봉사라는 명목으로 공장노동을 한 것 같아유.>
나는 이정도의 자기고백을 들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이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 듯싶었다. 나는 조금 더 대화로 뜸을 들이다가 아이들 문제를 꺼냈다. 나는 아이들을 가두고 있지 말고 내게 맡겨주면 매일 매일 밥 먹이고 학교도 보내주고 깨끗하게 키우겠다고 했다. 적어도 엄마가 올 때까지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말에 그도 수긍을 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나는 당시 고아원을 운영 하지 않았고, 동네아이들 몇을 모아 논술공부방을 운영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나는 예상외의 답변을 그에게서 얻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을 데려가도 좋다는 말을 선뜻 내뱉는데, 전혀 고민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간호사 선생이 도리어 고맙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처음 찾아간 사람에게 아이들을 맡기겠노라고 대답했는지는 몰라도 아이들 때문에 무척 지쳐 있었던 것도 사실인 것 같았다.
나는 무책임한 엄마를 찾을 때까지라도 이 아이를 예쁘게 키우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있어 다행히도 돌아온다면 예쁘게 키운 아이들을 선물로 주겠노라고 마음의 상상을 해야만 했다. 실제 그때 가졌던 내 생각은 후일 상상으로 끝난 게 아니라 그 생각이 현실로 이루어졌지만 그때부터 용해와 은해와 나와의 생활은 긴 -회고담으로 기록되기 시작 한다.
아이들을 민통선 교회로 데려왔다. 아이들의 표정은 어리둥절한 표정 이었다. 아빠가 목사님 따라가서 생활 잘 해라 하는데도 전혀 울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몸에서 지독히 냄새가 나는 새끼 망둥이처럼 어른들이 하자는 대로 자신을 내맡기며 어떤 현실도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 이었다.
먼저 아이들부터 씻겨야 되겠다싶어 목욕부터 시키는데 <아뿔싸..> 아이들의 몸에서 21세기에는 사라져버린 <이>가 스물 스물 기어 다니고 있었다.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내 자신 또한 어릴 때나 보았던 이를 40여년 만에 처음 구경해보는 셈이었다. 씻기는 도중에 <이>의 출처를 찾았다. 바로 머리칼 속에 이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속에 무수하게 알을 까놓고 있었다.
<내 이놈들 전멸을 시키리라..> 아이들 머리에 바리캉부터 들이댔다. 용해에게 이를 잡기 위해서는 머리를 빡빡 밀어야 한다고 설명을 한 직후였다. 다행히도 용해는 내 말을 잘 따라 주는가싶었는데 은해는 머리 깎는걸 온몸으로 저항 했다.
난감 했다. 그러나 목적의 반은 달성 했다. 용해 녀석의 머리통을 시원하게 밀어버렸고 용해의 몸에서는 <이>를 일망타진 한 셈이 되었다. 용해 머리칼을 태워 이를 화장까지 시켜 버렸다. <잘 가라. 야, 이, 놈들아.> 그러나 은해에게는 공갈까지 쳤지만 먹혀들지가 않았다. 이를 한 마리 지 머리에서 잡아내어 이게 네 몸에 붙어있으면 얼마 후 네 몸도 썩는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녀석은 끝끝내 울음으로 저항하며 <이>의 집을 사수 시키는데 성공을 했다. 같은 형제라도 용해는 약간 유순한 반면 은해는 반항심이 세고 고집이 강한 녀석 이었다. 나는 은해의 저항에 일단 한발 물러섰다. 정책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기존에 공부방에 잇던 아이들이 용해의 빡빡 머리를 보고 우스워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녀석들은 용해를 빡빡머리라고 놀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들이었지만 나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 칼을 빼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한 녀석이 빡빡머리라고 했다가 나에게서 꾸중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형제가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할까봐 노심초사 했고 최대한 낯선 풍경으로 부터 빨리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 하여야만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갈 무렵 이었다. 웃음기가 없던 은해 녀석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기 시작 하더니 <목사님, 나 머리 깎을래>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킥킥> 거리며 <왜?> 하고 물었더니 녀석은 울상을 지으며 <몸이 썩잖아요. 하는 것이다. 역시 나의 간교한 정책이 먹혀든 셈이 되었다. 나는 얼씨구 하고 녀석의 머리를 밀어 은해 몸에 기생 해 있던 <이>들조차 일망타진을 하고 화장을 깨끗이 시켜 버렸다. 나는 이들을 태워 죽이면서 21세기의 변이종인 <이>의 출현과 이별을 겪으며 <에구 시원해…….>를 연발 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태우면서 이놈의 사회도 태워버릴 것들이 있으면 이렇게 깨끗하게 태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 했다. <썩은 정치모리배, 구조적 모순, 착취자들... 등 >
용해, 은해는 그렇게 하여 엄마가 나타나는 시기까지 합하여 약 5년간을 나와함께 지내기 시작 했다. 그때부터 나는 용해, 은해 엄마를 막연하게 기다리기 시작 했다. 그것은 긴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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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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