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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아모르 문디] 주체는 무엇으로 사는가? ‘행위’로! 그리고 주시자들의 ‘협력’에 힘입어!<민중신학의 사랑법과 한나 아렌트의 아모르 문디> ④
이인미 | 승인 2016.08.23 15:33

파리아가 할 거다! 민중이 할 거다!  

본 연구자의 연재원고 2회에서 공적영역과 ‘틈새(in-between)’에 관한 설명을 기독교의 비유에 버금가는 아렌트의 ‘탁자의 비유’를 통해 살펴보았음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 틈새에 관련한 하나의 사실에서부터 이번 연재원고를 시작하기로 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틈새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틈새의 한 영역을 차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파리아(pariah)들이다. 공적영역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다. 공적영역 안에서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아, 헤아려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파리아는, 소수자들(minorities), 아웃사이더(outsider), 주변인들(marginalities), ‘배제된 자(the excluded)’들을 가리킨다. 

파리아는 공적인 삶,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간주된다. 파리아는 현체제에서 인간이 아닌 것으로 배제되어있는 상황과, 타인에게 다만 숨쉬는 생물체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을 온 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파리아는 인간이 아닌 것으로 취급받지만, 그건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아니라 ‘불가촉천민(untouchable)’으로 간주되어온 인도의 ‘달리트(dalit)’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파리아, 달리트, 아웃사이더 등 현체제로부터 배제된, 그 같은 인간부류(체제불순분자 혹은 반체제인물?)를 한데 묶어 민중신학은 ‘민중’으로, ‘역사의 주체’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민중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뭔가 해낼 거라는 믿음을 용감하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파리아가 곧 ‘주체’니까!  

그런데 민중신학과 마찬가지로, 아렌트는 파리아, 즉 ‘역사의 아웃사이더(history’s outsider)’를 인간다운 인간 곧 정치적 행위자(political actor)로 파악하여 다루었다(Jennifer Ring 1991: 433). 공적영역에 들어와있지 않기 때문에 파리아의 말과 행위가 공적영역에서 전혀 현상·접수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렌트는 파리아를 정치적 행위자로 취급한다. 이는 아렌트가 파리아를, 현체제의 고정성(stillness)에 자극을 주어 새로운 시작을 감당할 수 있는 의미의 주체로 보고 있음을 반증한다(Andrew Brennan & Jeff Malpas 2011: 39-52). 

로자 룩셈부르크

아렌트는,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에 필적할 만한 맑스주의 여성혁명가이자 정치사상가 로자 룩셈부르크(Róża Luxemburg, 1871-1919)를 언급하며 파리아의 변혁적·정치적 의미를 분석적으로 논의하였다(Arendt 1968: 44). 파리아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자기 위치(place) 때문에 안과 밖을 의식적·비판적으로 사유하며 ‘경계상황(border situation)’을 인식할 수 있다. 이 경계상황에서 변혁이 일어난다. 경계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파리아는 세계를 바꿀 상상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실제로 세계를 변화시켜가는 주체로 존재·현상할 수 있다(Maria Tamboukou 2013: 50). 그러나 모든 파리아가 자동으로 그러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  

아렌트는 룩셈부르크와 대조적으로 살아간, 룩셈부르크보다 약 한 세기 이전에 살았던 또 한 명의 여성 파리아 ‘라헬 파른하겐(Rahel Varnhagen, 1771-1833)’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아렌트는 상대적으로 유명한 룩셈부르크보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유대인 여성 라헬 파른하겐에 자신을 좀더 가까이 위치시킨다. 파리아로서 라헬의 인생역정은 ‘아렌트가 구성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 글은, 파리아의 정치적·개념적 의미는 다음 연재분에서 다루기로 하고, 실제 한 파리아의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기로 한다.  

라헬의 이야기 

라헬은 “게토(ghetto)와 동화(assimilation) 사이에서” 흔들리며 한 평생을 고단하게 살았다. 똑똑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 여성 라헬에게 인생은 “우산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폭풍우”와 같은 것이었다. 라헬은 당대 위대한 지성인(괴테, 슐라이어마허, 훔볼트, 하이네, 헤겔, 랑케 등)들과 교류하였고 그들이 드나들던 살롱을 주관하는 여주인이었지만 “가장 위대한 무식쟁이(the greatest ignoramus)”로 통했다. 바로 그 라헬에게 아렌트는 자신을 동일시하였다. 아렌트는 라헬과 운명을 공유한다고까지 생각하였다. 라헬 자신이 “직접 말했을 법한” 인생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to narrate)”이 오직 자신의 관심사라고 밝혔을 정도이다(Arendt 1957: xi-3). 아렌트가 라헬에게서 본 것은, 라헬이 마치 입신출세주의자(social climber)처럼 “파브뉴(parvenu)의 역할을 하려고 애쓰는 동시에 국외자(outsider)로서 자신의 파리아 상태를 포기하지 않고 반항하는, 모순적이고 상반되는 충동들로 가득차있었”던(리처드 J. 번스타인 2009: 29-30, 42-43), 바로 그 지점이었다

한 사회가 배제된 자 ‘파리아’에게 주는 가장 큰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그 스스로 “자신의 실존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 때(리처드 J. 번스타인 2009: 74), 라헬의 반항적 행위(사회에 동화·진입하려 함과 동시에 파리아로서 자신의 실존을 포기하지 않는 모순적 행위)는, 자신의 실존 및 인간됨을 확인하려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환언하면, 당대 유럽 지성인들의 토론집단인 살롱을 열고 괴테숭배모임을 창시하고 나아가 독일낭만주의운동의 전개과정에서 한몫을 감당하는 등, 평생토록 도모하고 추구했던 라헬의 행위라는 것은, 아렌트의 해석에 의하면, 단순히 적극적 여성의 훌륭하고 혁혁한 사회활동 정도가 아니다.

라펠 파른하겐

라헬의 행위는, 유대인 아닌 사람이 되어야만 유대인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주겠다고 압력을 가하는(리처드 J. 번스타인 2009: 52), 즉 “일종의 유대인 자살”을 감행하도록 하는 ‘동화’정책을 강요하는(리처드 J. 번스타인 2009: 72), 당대 독일사회(지성인사회)의 불의함에 대한 저항적 행위인 까닭이다. 아렌트는 라헬의 행위를 파리아가 취하는 저항적 행위로 보았다. 그런 점에서 라헬의 행위는, 억눌리고 짓밟혀 실존조차 의심하게 만드는 사회가 아무리 인간이하의 삶을 강요할지라도 끝내 자신의 실존과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고 저항하는 민중의 행위와 통하는 점이 있다. 

라헬을 이야기하는 아렌트, 행위자와 주시자의 관계 

그와 같은 라헬의 행위를 ‘이야기함’으로써, 아렌트는 행위자와 주시자의 관계를 통해 주체가 나타나게 되는 절차적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어 보여주게 된다. 마틴 레이보비치의 분석에 의하면, ‘라헬’이라는 여성은 당대는 물론 그 다음세대에서도 공적영역에 전연 드러날 수 없었던 여성인데, 아렌트가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유대인이 존재하는 방식’의 한 의미있는 사례로 공적영역에 나타나게 하였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라헬에게, 주체로 현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무대를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Martine Leibovici 2007: 915). 이는 라헬의 살롱에 드나들었던, 괴테, 하이네, 슐라이어마허를 비롯한 위대한 지성인들 중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들이 모두 저명한 사람들(big names)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중 단 한 사람도 라헬을 주체로 알아보는, 정치적 의미의 주시자가 되지는 못했다. 

파리아의 이야기가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등극하고, 무명의 무식한 파리아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절차적 현상 속에서, 주시자의 존재는 굉장히 중요하다. 파리아가 역사의 주체가 되는 (엄밀히 말하면, 역사의 주체로 판단되는) 과정에는 주시자가 파리아의 행위의 이야기를 공적영역에서 공개적으로 진술하고 언급하며 역사의 주체로 판단·해석·평가하는 절차가 개입되어있기 때문이다. 라헬이라는 파리아에 대하여 아렌트가 바로 그렇게 하였다. 이 같은 현상은, ‘이름없는(?)’ 아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수히 많은 저항적 행위자인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부각시키며 성찰해온 민중신학적 활동과 일란성쌍둥이처럼 닮아있다고 하겠다. 

라펠 파른하겐

주시자의 존재·현상은, 행위에 관한 한, 주체의 존재·현상만큼이나 중요하다. ‘주시자’라는 개념은 본 연구가 정립하고자 하는 정치신학적 주체이론에서 중요한 핵심어 중 하나로 취급된다. 본 연구는, 주시자 아렌트가 주체 라헬의 인생을 이야기할 때, 이야기하기를 통해 거울효과를 발생시킴으로써(Donald J. Goldstein 2009: 4), 변혁의 가능성을 지닌 주체로서 파리아를 ‘공적영역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역사가’의 역할을 감당하였다고 본다(Magdalena Zolkos 2011: 198; Jennifer Ring 1991: 443).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라헬의 말과 행위는 아렌트에 이르러 이야기가 되었고, 아렌트의 라헬 이야기(story)는 마침내 역사(history)로, 유대인여성의 역사로 검토되고 있다. 그 역사의 주인공, 즉 주체는 라헬이다. 이십대 중반에 박사학위를 받은 총명한 엘리트 아렌트가 아니라, 평생 위대한 무식쟁이로 살았던 평범한 여인 혹은 평범 이하로 안팎으로 자타공인받던 여인 라헬이 역사의 주체로 판명난 것이다. 

행위자(주체)가 무능력해서? 아니 주시자(협력자)가 무능력해서! 

파리아·아웃사이더·배제된 자는 주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들이다. 그들은 그동안 주체로서의 능력이나 영향력이 없어서 공적영역에 들어설 수 없었던 게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체제의 안팎을 경직되게 구획하고 있는 현체제의 조직적 방해 때문에, 그리고 주시자가 무능·무력했기 때문에, 즉 주시자의 협력이 없거나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에(Donald J. Goldstein 2009: 1), 공적영역에 무탈하게 들어서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적영역의 협소함 때문에 그들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만일 그들의 존재(곧 의견)가 공적영역에서 드러나게 된다면 현존하는 체제는 변화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때 그 변화의 주체는 당연히 그들이다. 

그런데, 현체제를 변화시키는 파리아의 운동들은  때로는 성공하거나 때로는 실패한다. 왜 파리아의 운동은 100% 성공할 수는 없었던 걸까? 주체로서 파리아는 왜 자주 좌절하게 되는 걸까? 여기서 나는, 파리아들의 변혁행위 요인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 즉 ‘협력자로서의 주시자 요인’을 지적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보겠다. 미국에서 오랜 세월 노예생활을 해온 흑인들은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참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다. 그건 그들에게 투표할 만한 자격이 객관적으로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정(approve)의 문제였다. 오랜 세월 흑인들의 투표가 인정되지 않다가, 법률적·공식적으로 투표가 허락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여러 주에서 실제로 흑인들이 직접 투표하기까지는 난관이 많았다. 법률적·공식적 허락은 실질적·실천적 허락을 자동으로 불러오지 않았다. 투표자로 등록하는 것부터 흑인들에겐 어려운 관문이었다. 흑인들에겐, 스스로를 주체로 드러낼 공간(공적영역) 자체가 원천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봉쇄되어있었다. 그들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공적영역이 조성되어있었다.

영화 <셀마> 스틸 컷
영화 <셀마> 스틸 컷

물론 흑인들은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1960년대 그때 당시 흑인민권운동 지도부가 셀마에서부터 몽고메리까지 86킬로미터를 굳이 걸어서 가겠다는 ‘행진(1차, 2차, 3차까지 진행되었다)’이라는 방식을 선택하고 선언하고 끝내 관철한 것은, 공적영역(공간)으로 들어서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흑인들의 행진이 텔레비전에 공개되어 수많은 주시자들을 낳고, 마침내 그들의 행진에 협력자들이 발생했다. 백인들이 먼 길 마다않고 찾아와 참여하는 사건이 생겼고, 결국 백인협력자가 살해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때서야 흑인들의 행진과 흑인들의 참정권 요구사항이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참정권을 확고히 보장받을 수 있었다. 흑인과 흑인집단이 단독으로 투쟁하여 공적영역에의 접근권한을 폭력적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었다. 흑인 행위자 곁에 수많은 다른 주시자들의 협력이 있었다. 

우리의 6.10항쟁은 저항적 행위자들과 주시자들의 협력을 명료히 보여주는 또다른 좋은 예가 된다. 4.13호헌 조치이후 대학생들이 항쟁을 시작하였고, 노동자들이 그 대열에 힘을 보탰다. 그들이 거리로 나와서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면, 택시기사들은 경적으로 화답했고, 이른바 ‘넥타이부대’로 불리우는 직장인들도 합세했다. 최루탄가스로 힘들어하는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주위 건물들에서부터 휴지가 무더기로 떨어져 사용할 수 있었고, 치약을 공짜로 건네는 손길이 자주 있었으며, 종로거리에 즐비한 약국의 약사들은 전투경찰들이 대학생들을 검거하기 직전, 얼른 그들을 받아들이고 셔터를 내림으로써 그들을 숨겨주곤 했다.

6월 항쟁

거리를 내달리며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돕는 주시자들의 손길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시위참가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을 무료로 탑승하도록 배려하는 버스기사들이 속출했다. 달리다가 넘어진 대학생들을 전투경찰들보다 먼저 발견해 일으켜주는 손길들도 많았다. 결국 항쟁시작 후 20일도 채 되지 않아 ‘6.29선언’이 발표된다. 여기서 이른바 ‘직선개헌’이 선언된다.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김대중 사면복권 등도 약속된다. 이 일은 행위자와 주시자의 협력으로 일어났다고 말해야 한다. 이후, 다양한 사안을 주제로 삼아 개최되는 여러 촛불집회에서도 행위자와 주시자의 협력은 이어졌다. ‘주최측’이라는 것이 따로 없이 느껴질 정도이다. 

협력자(주시자)의 존재와 현상은, 행위자(주체)의 존재와 현상과 짝이 되어 ‘정치적 주체형성과정’에 개입되어있다. 그런 주시자들은 때로 민중사건의 전환에 있어 결정적인 계기로 작동할 수도 있다. 단적으로 말해보면 이렇게 될 것 같다. “주체는 잘하고 있으니 이제 주시자들만 ‘잘하면’ 된다”고. 

그렇다. 주시자들이 정신차려야 한다. 변혁은 파리아 혼자 이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변혁은 저항적 행위자로서의 주체 혼자 이룩하는 게 아니다. 저항적 행위자는 군림하는 독재자가 아니며, 유아독존 식의 단순한 체제파괴자가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같은 시대, 저항적 행위자가 행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주시자들이 충분히 제대로 주시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도움받은 글>

Hannah Arendt(1957), Rahel Varnhagen: The Life of a Jewess (London: the East & West Library)

Hannah Arendt(1968), Men in Dark Times (New York: A Harvest Book)

Andrew Brennan and Jeff Malpas(2011), “The Space of Appearance and the Space of Truth,” Anna Yeatman, Phillip Hansen, Magdalena Zolkos, Charles Barbour(2011), Ed., Action and Appearance: Ethics and the Politics of Writing in Hannah Arendt (New York: Continuum)

Magdalena Zolkos(2011), “Arendt’s Metamorphic Figurations in ‘The Jew as Pariah’,” Anna Yeatman, Phillip Hansen, Magdalena Zolkos, Charles Barbour(2011), Ed., Action and Appearance: Ethics and the Politics of Writing in Hannah Arendt (New York: Continuum) 

Jennifer Ring(1991), “The Pariah as Hero: Hannah Arendt’s Political Actor,” Political Theory, Vol.19, No.3, Aug.

Maria Tamboukou(2013), “Love, Narratives, Politics: Encounters between Hannah Arendt and Rosa Luxemburg,” Theory, Culture & Society, 30(I)

Martine Leibovici(2007), “Arendt’s Rahel Varnhagen: A New Kind of Narration in the Impasses of German-Jewish Assimilation and Existenzphilosophie,” Social Research, Fall

Donald J. Goldstein(2009), “Hannah Arendt’s Shared Destiny with Rahel Varnhagen,” Women in Judaism: A Mulidisciplinary Journal, Vol. 6, No. 1(Spring)

리처드 J. 번스타인(2009), 김선욱 옮김, 󰡔한나 아렌트와 유대인 문제󰡕(서울: 아모르문디)

 

<필자 소개>

글쓴이 이인미는 2016년 2월 성공회대 신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Th.D). 여성단체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에서 오래도록 활동해왔으며(간사 혹은 자원활동가로), 현재는 1953년 설립된 새가정사에서 제15대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였고, 공교육·사교육·출판사·신문사·방송사 등 다채로운 분야에서 두루 활동하다 뒤늦게 대학원에 입학하여 비로소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사람의 말(언어), 사람의 행위, 말과 행위를 통한 상호작용에 깊은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나 아렌트 정치이론과 신학이론의 대화를 계속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인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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