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에 살다보면 사람들만이 그리운 것이 아니다. 변함없이 사철 푸른 나무를 보고 있으면 단풍 곱게 물든 한국의 가을 산이 그리울 때가 있다. 게다가 올해는 46년 만에 설악산 만경대를 개방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분명  한국에 있었다면 나는 기필코 설악산 만경대를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단풍에 취해 가장 여유로운 걸음으로 둘레길을 꿈을 꾸듯 걸었을 것이다.

매일 같이 뜨거운 날씨에 사철 푸른 나무가 가끔은 지겨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더욱 우리나라의 가을 산이 그리워진다. 이럴 때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동티모르의 아름다운 나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소소한 기쁨으로 대신하며 마음을 달랜다.

딜리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나는 그 나무를 볼 때 마다 어쩌면 저렇게 잘 자랐을까 감탄을 한다. 그런데 이 나무는 잘생긴 모습과 다르게 이름이 ‘아이 마딴 두꾸르’ (ai matan -dukur)다. 테툼어로 ‘ai’는 ‘tree’ 이고 ‘matan –dukur’는 sleepy 라는 뜻이니‘아이 마딴두꾸르’는 즉‘졸리운 나무’라고 할 수 있다. 

마딴두꾸르 나무 ⓒ임정훈

저토록 근사하게 생긴 나무 이름이 ‘졸리운 나무’가 뭔가 싶었는데 누군가 말하기를“사람들이 지나가다 나무아래에서 잠시 졸리운 눈을 감고 쉬어 가라고 그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고 말했다.

꿈보다 좋은 해몽이다. 그러나 커다란 나무답게 그늘도 넓게 드리운 ‘마딴 두꾸르 나무’는 ‘졸리운 나무’가 아니라 ‘졸리운 사람을 위한 나무’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나무인 것은 확실하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동티모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 중에‘부부르 나무’가 있다. 딜리는 산으로 둘러 싸여있는데 산마다‘부부르 나무’는 일제히 봉기를 들고 일어선 민중처럼 함께 서 있다.

부브르 나무 ⓒ임정훈

부부르 나뭇단 ⓒ임정훈

기름을 짜기도 하고, 맛사지 도구를 만들기도 한다는 ‘부부르 나무’는 땔감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 같다. 이곳은 아직도 음식점 뿐 만이 아니고 가정집에서도 나무를 때서 음식을 만드는 집이 많다. 

땔감으로 이용 될‘부부르 나무’는 예전의 우리나라처럼 직접 어깨에 메고 이곳 저곳 다니면서 팔기도 하고, 옷가게나 야채가게 앞에 나뭇단을 쌓아 놓고 팔기도 한다. 나무가 가늘어도 단단해 보이는 것처럼 화력도 좋고 불기가 오래가기 때문에 딜리의 길거리 음식인 닭고치 구이도‘부부르나무’로 화덕에 구워 판다. 한국의 소나무와 같이 친근하고 유용한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나무 ⓒ임정훈

커피 열매 ⓒ임정훈

커피를 따는 청년 ⓒ임정훈

동티모르의 주요 작물은 커피다. 나는 커피가 많이 생산되는‘에르메라’에 커피나무를 보러 간적이 있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인만큼 산 넘고 산 넘어 찾아간 ‘에르메라’ 에서는 커피나무에 매달려 있는 열매를 농부들이 따고 있었다. 동티모르에서 나오는 커피는 대부분 야생이고 유기농커피이다. 이 커피는 주요 수출품목으로 가난한 농민들에게 소득원이 되어 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귀한 커피를 지켜주는 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커피나무에 열매가 잘 맺을 수 있도록 곁에서 돌봐주는 나무란다. 그 나무의 이름은 ‘삼두꾸나무’라니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자작나무’처럼 쭉 쭉 위로 뻗은 이 ‘삼뚜꾸 나무’는 커피나무 옆에 서서 건기 철에는 강한 햇볕을 막아 주고, 우기 철에는 게릴라성 폭우로부터 보호한다. 누구는 커피나무를 지켜주는 이 나무가 “삼두꾸 남자 나무”라고 하였고 누구는“삼두꾸 여자 나무”라고 했다. 커피나무를 지켜주는 ‘삼두꾸 나무’가 여자 나무이든 남자나무이든 그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커피열매를 튼실하게 잘 맺을 수 있도록 든든히 지켜주면 되는 것이지.

아따우로 섬에 있는 나무 ⓒ임정훈

아따우로맹글로브 ⓒ임정훈

내가 좋아하는 나무 중에 이름을 모르는 나무도 있다. 딜리 앞바다의‘아따우로 섬’에 가면 산 중턱쯤에 나란히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서있다. 나는 그 나무의 이름이 궁금하여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묻고 학생들에게도 사진을 보여 주며 물었지만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한 학생이“아이따시”즉‘바다나무’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반가움에‘바다나무’를 찾아보니 동티모르에서 불리는 ‘mangrove’나무였다. 그렇다면 학생이 ‘바다나무’라고 알려 준 그 나무는 ‘mangrove’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이름도 예쁜 ‘바다나무’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나는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나무 이름을 물으며 한가지 씩 알아 가고 있다. 한국의 나무처럼 고운 단풍은 없어도 사철 푸른 나무의 매력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곳을 떠나기 전 꼭 한번은 ‘아따우로’ 섬에 다녀올 예정이다. 산 중턱에 나란히 서있는 나무도 보고 싶고,  무엇보다 좋아한다면 이름정도는 정확히 불러주고 싶다.

동티모르의 나무들을 고맙고 친근하고 재미있는 이름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들도 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한곳에 뿌리를 내리면 변함이 없는 나무처럼 내 마음도 그러하리라.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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