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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우리 모두의 노래<김서정의 하루 3분 글쓰기 교실>
김서정 | 승인 2016.11.16 10:47

우리는 개성적인 글쓰기에서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 넓히기를 시도했다. 이 넓어진 거리, 그 거리가 너무 넓어서 독자가 도무지 그 글이 뜻하는 바를 모른다면, 그 글은 실패한 글이다. 그 거리를 좁혀주는 것이 조직적으로 생각하기, 또는 유기적으로 연결하기이다.

유기적으로 연결한다는 것은 적절히 문장의 순서를 잡아서 산만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읽히게 하기와 관련이 있다.

조직적으로 생각하기는 의미의 거리를 좁혀주기이다. 그 거리를 좁힐 대로 좁혀서 더 이상의 설명 없이도 독자가 쉽게 그 글을 소화한다면 산문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독자가 해결해야 할 여백이 남았다면 시라고 할 수 있다.

-<콕 집어 알려주는 달인의 글쓰기>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위의 글을 옮기고 나니, 좀 전에 내가 한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기만 한다. 아마 ‘조직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젯밤 나는 서대문문화회관 글쓰기를 홍보했다. 홍보라고 해봐야 페이스북, 카페, 단톡방 등이 전부다. 그러고 나서 새롭게 정리된 글쓰기 강의안을 올렸다. 연달아 홍보하기이다. 내 딴에는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아침이 되었다. 어제 일이 떠올랐다. 자괴감이 들면서도 내 손은 다른 단톡방에 새로운 강의안을 올리고 있었다. 모두가 생존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위안을 삼으며 복사와 퍼나르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낯이 뜨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글쓰기 수업 첫 시간에 수치심과 그 수용에 대해 말한다. 그러면서 수치심을 극복해낸 사람은 예수님과 부처님밖에 없다고 말한다.(이는 융의 말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부끄러움 속에서 뻔뻔하게 글쓰기를 삶의 동반자로 만들자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부끄럽다. 나를 홍보하는 게 여전히 버겁다. 그래도 어쩌랴. 먹고살려면 다 해야 하는 것을. 너그럽게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드린다.

수업 시간에 공유하는 시 한 편 옮겨놓는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자기 자신의 노래1 - 정현종

거리를 걸어가다가 나는 느닷없이 부끄러웠다(방법이 없는 부끄러움은 물론 의심할 만하다) 나는 하여간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의 눈물의 양만큼 부끄러웠을 것이다. 나의 사랑의 양만큼 부끄러웠을 것이고 나의 파멸의 양만큼 부끄러웠을 것이다.

(이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은 나보다 더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다.)

김서정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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