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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감의 진원지는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김서정의 하루 3분 글쓰기 교실>
김서정 | 승인 2016.11.23 09:14

글은 융합의 결과이다. 경험의 융합과 확대가 하나의 느낌으로 찾아오면, 우리는 문장을 쓸 준비를 마치게 된다. 이러한 융합, 무엇과 무엇이 만나서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 나의 경험과 또 다른 경험이 펼쳐지는 일, 나의 이 느낌과 또 다른 느낌이 만나 합쳐지는 일, 그것이 융합이다.

이를테면 지금 무언가를 보고 느낀 점이 있다. 이 느낌이 즉각 글이 되었다면 내면에서 이미 다른 느낌과 융합이 된 결과다. 기존에 가진 정보와 새로운 정보가 제 짝을 이루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글은 이렇게 융합의 과정을 통해 생겨난 산물이다. 우연인 것 같지만 내 성격이 만들어낸, 내 독특한 사고가 만들어낸 인연의 산물이다.

-<콕 집어 알려주는 달인의 글쓰기>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위의 글 마지막 부분, 즉 “글은 … 우연인 것 같지만 내 성격이 만들어낸, 내 독특한 사고가 만들어낸 인연의 산물이다”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 우리가 독특한 사고를 잘 해내지 못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획일화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양은 기독교 질서에 동양은 성리학 질서에 짓눌려 개인의 개성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 가운데 한국은 정조의 문체반정에서 타격을 입고,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등을 거치며 진짜 독특한 개인을 표현해낼 수 없었다.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그 틀에서 짜 맞추고 평가를 하며 글에 서열을 매겼다. 그러는 가운데 서양은 지속적으로 개인의 표현을 극대화하였고, 그 결과 현재의 사회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런 사회의 소비자로만 전락하고 있다.

획일화된 사회를 만드는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개성을 어떻게 표출할까? 자신들이 만든 획일화된 틀에 자신들을 가둘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획일화된 틀은 그들이 내린 명령이자 개입이다. 그들은 그 위에서 그것을 보며 자신들의 개성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도덕을 요구하며 비도덕을 행하고, 선함을 요구하며 악함을 행하고 등등 그런 자리가 그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굴러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힘겹고도 어렵지만 나만의 독특한 사고, 즉 나를 들여다보는 일에 더욱더 힘을 써야 할 것이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면서 요즘 든 생각이다. 어느 날부터 내 입에서 ‘모욕감’이라는 단어가 계속 튀어 올랐다. 그것을 성찰해보니 나는 모욕을 느끼고 있었고, 그 모욕의 진원지는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이었다. 내 삶에 치욕을 안겨준 그들을 방관한 내 자신에 모욕을 느낀 것이었고, 그들이 여전히 비열한 생존을 도모하고 있는 것에 모욕을 느끼는 것이었다.

글이 왜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지만, 나 자신은 현재 모욕을 느끼고 있다. 이 모욕감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또 광장으로 가야겠지. 광장으로!

김서정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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