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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바탕에 인식자의 구조가 깔려있다<김서정의 하루 3분 글쓰기 교실>
김서정 | 승인 2016.12.07 10:41

우리의 출발점은 인식이 인식자의 행위라는 사실, 나아가 인식의 바탕에 인식자의 구조가 깔려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데 있었다. 이 출발점은 이 책이 앞으로 어떤 개념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어야 하는지를 시사하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인식이 행위를 통해 세계를 산출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 인식의 이런 작업방식을 가능케 하는 뿌리와 기제(Mechanismus)는 무엇인가?

이런 물음과 관련하여 우리의 개념적 전개의 첫 단계는 다음과 같다. 인식자의 행위인 인식은 인식자의 생물학적 본성, 곧 생명체의 조직(Organisation)에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의 견해에 따르면 그저 신경계의 여러 과정들을 연구하는 것으로는 인식의 생물학적 뿌리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신경계의 이런 과정들이 생명체의 전체 과정 속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생명체의 조직과 관련된 전후맥락을 살피는 것으로 이 장을 시작하겠다.

-<앎의 나무>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인식의 바탕에 인식자의 구조가 깔려있다.” 이 말을 알아듣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내가 이 말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나의 인식으로 대략 정리해보면 이런 것 같다. 우리가 살기 위해 작동되는 몸의 원리로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의미부여를 한다는 것이다. 즉 세상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느낌부터 언어체계까지 말이다. 여기에는 분명 의문이 있다. 우리가 우리 몸의 작동 원리를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이다. 몸이 몸을 안다는 것인지, 아니면 몸에서 나온 생각이라는 것이 그것이 알아내는 것인지, 그 경계는 분명치 않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도 알려고 애쓰는 것, 그게 현재 인간이 하는 행위들이라는 것이다.(물론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해낸 책들도 있다. 하지만 아직 나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원론은 이렇게 되는데, 그 작동 원리를 풀어서 이해하는 게 만만치 않다. 먼저, 나의 몸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것이다. 굳이 구분해서 말하자면, 그게 다 이과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구별해서 가르치는 학교교육이 참으로 못마땅하지만, 이미 그것을 겪었으니 그것을 탓하기는 어렵고, 이제부터라도 분발해서 공부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몸을 잘 아는 것과 그것을 우리가 만들어낸 인식의 체계와 연계시키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몸을 잘 아는 의사가 세상을 잘 설명해낸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그것이 아직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식의 바탕에 인식자의 구조가 깔려있다”는 말을 나는 이렇게 받아들인다. 우리가 외부 신호에서 영향을 받아 움직이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정리하고 나아가게 하는 인식 체계는 내 안에 다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나를 들여다보는 글쓰기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나를 잘 안다는 것은 나의 작동 원리를 잘 안다는 것, 그것은 개별이지만 보편적 사고체계가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김서정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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